지난해 추석, 귀향을 포기했다. 결혼생활 십 수 년 만에 처음이다. 길게는 일주일 정도 쉴 수 있었으니 몸은 편했지만, 마음의 부담때문에 올해 설은 귀성길에 나섰다. 

연휴가 시작되기 전 출발해 설 전에 왔다. 가족이 모여 봐야 4명을 넘지 않으니, 코로나19 방역지침은 나름 지킨 셈이다. 예년 같았으면 연휴 내내 사람 기다리는 것이 일이었지만, 올해는 차례상은 고사하고 새배도 ‘번갯불에 콩구워 먹듯’ 시늉만 내고 돌아왔다. 누군가 온다는 소식은 곧 그만 이 자리에서 떠나란 말과 같았다. 스치듯 다녀온 짧은 고향길은 그렇게 끝이 났다.

예년 같으면 빼곡했을 기차 안은 명절답지 않게 한산했다. 평소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도 텅 빈 기차 한 쪽에 4시간 넘도록 홀로 앉아 있었다. 여행 가듯 오가는 즐거움은 고사하고 실내에서 물 한 모금 먹는 것조차 참아야했다. 집에 도착해서야 귀에 선명한 자국을 남긴 마스크를 벗을 수 있었다.

설 전, 한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회사에서 이번 설 귀향길에 올라 혹여 감염되면 책임을 묻겠다고 공개적으로 경고를 내렸단다. 그러니 추석에 이어 설에도 고향을 내려가지 못하게 돼 아쉬운 심정을 하소연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 지인은 1년 전부터 요양시설에 부모를 모시고 있어, 평소에도 쉽게 만나지 못하는 상황이니 오죽했을까 싶다. 안타까운 사연을 나열하면 이 뿐이겠는가.

17일, 코로나19 확진자가 한 달여 만에 600명을 넘었다. 정부가 15일부터 사회적 거리두기를 완화한지 불과 며칠 지나지 않아 확진자가 늘고 있자, 괜히 설 명절에 이동한 건 아닌지 후회와 미안함이 밀려온다.

외면하고 싶었다. 제 아무리 언론에서 “또 종교시설”이라는 내용의 보도가 이어져도 그들을 탓하고 싶지 않았다. 종교인에게 신앙이 가지는 의미는 만만치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명절을 보낸 직후 참을 수 없는 묘한 감정이 치밀고 올라왔다. 

그들이 추앙하는 신을 위해 매주 혹은 상습적으로 모일 때, 또 누군가는 방역규칙을 외면한 채 무리지어 다닐 때, 또 누군가는 ‘K-방역은 실패’라고 폄하할 때, 대다수 사람은 제자리에서 제 역할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하물며 천륜마저 송구스러운 마음으로 미뤄왔던 사람들도 적지 않다.

누군가의 희생과 죄책감이, 누군가에는 당연함이고 무시해도 되는 현실이 되는 사회가 고착화되는 건 아닌지 괜한 걱정이 앞선다. 중기이코노미 채민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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