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동구 한 아파트가 요 며칠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택배용 차량의 아파트 진입을 막았기 때문인데, 진입을 막은 이유는 간단하다. 입주민 안전을 위한 조치다. 자신의 생활공간 안전을 지키고 시설물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다. 그런데 택배노동자는 난감해진다. 도어 투 도어(door to door) 서비스가 일반화된 요즘이다. 아파트 단지 내 진입금지는 곧 반쪽 서비스 차원을 넘어 서비스 중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전국택배노조는 기자회견을 열고,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의 진입 금지 결정은 택배노동자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려는 갑질로 규정했다. 더해 택배노동자 노동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 아파트 입구까지만 배송하기로 결정했다. 첫날인 지난 14일 아파트 입구는 말 그대로 ‘택배산’을 방불케 하는 장면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택배노조는 택배노동자들에 대한 주민들의 항의 전화와 문자가 쏟아지고 있어, 아파트 단지 앞 배송을 일시 중단하기로 했다고 16일 밝혔다.

입주자대표회의는 아파트 단지 지상은 차량이 통행할 수 없도록 건축됐고, 지난해 3월부터 수차례 저상차량 배차를 통한 지하주차장 운행 및 배송에 대한 협조를 구했다고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택배노조는 저상택배차량은 그 비용을 택배노동자들이 부담해야 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를 이용한 택배노동이 심각한 근골격계 질환을 유발시키는 원인이 된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어 문제해결이 쉽지 않아 보인다.

시선을 잠시 돌려보자. 올해 초 용인시의 한 아파트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 아파트에서 경비일을 해온 9명의 노동자들이 설 연휴를 앞두고 해고됐다. 계약 종료 후 재계약이 이뤄지지 않았다. 부당해고란 주장이 먹히지 않는 이유다. 이들 중에는 10년 넘게 일을 해온 사람도 있다. 인정사정없는 결정이 내려진 것을 직감할 수 있다.

경비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갑질은 이제 사회적 문제로까지 확대됐다. 여러 안전망이 구축되고 있지만 아직은 두서없다. 사각지대도 공백도 곳곳에서 발견된다. 재계약하지 못한 그들은 하소연 할 곳도 마땅찮다. 고용문제는 경비 위탁업체 업무다. 위탁업체 선정은 입주자대표가 모인 단체에서 한다. 경비노동자들이 입주자에게 호소하고, 관리사무소를 찾아가고, 집회를 열어도 변하는 건 크게 없다. ‘갑’의 상대가 되는 ‘을’이 겪어야 하는 냉혹한 현실이다.

아파트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주거행태다. 1990년대 초만 해도 주소 곳곳에 스며들어 있던 마을이름은 아파트 브랜드가 꿰찼다. 아파트가 대규모화 될수록 입주자대표 단체의 권한도 커졌다.

택배노동자나 재계약을 맺지 못한 경비노동자 입장을 좀더 살펴보자. 저상택배차량은 성인이 허리조차 펴지 못할 정도로 좁은 공간에서 무거운 짐을 나르는 일을 할 것을 강요하는 셈이다. 계약 만료 이후 아무런 예고 없는 일방적 계약 해지 역시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불공정한 판단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권리가 강화된 사회에 살고 있다. 권리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이익이나 권한을 주장할 수 있는 자격을 말한다. 갑질과 권리는 종이 한 장 차이일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그 한 장의 종이가 얼마의 두께를 가지고 있을까. 거대한 아파트 단지에서 나만 피해보지 않고 우리끼리만 잘 살기 위해 ‘갑질’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함께 잘 살기 위해 서로 권리를 존중하고 있는지 한번쯤 곰곰이 반추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중기이코노미 채민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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