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기 박사, 에스이임파워 사회적협동조합 대표

그러나 과연 대한민국은 선진국인가. 그 위상에 발목을 잡는 분야가 있다. 바로 산업재해 분야다. OECD 국가 중 여전히 산업재해 지표는 상위권에 있다. 

통계청이 올해 4월1일 발표한 ‘한국의 SDGs 이행보고서 2021’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근로자 10만 명당 사고 사망자 수는 5.09명이다. OECD 국가에서 터키(7.52명, 2016년), 멕시코(7.46명, 2017년), 미국(5.24명, 2016년) 다음으로 높다.

OECD 국가의 근로자 10만 명당 사고 사망자 수(단위:명)

<자료=통계청(2021.04.01.), 한국의 SDGs 이행보고서 2021> 주: 데이터 기준시점은 국가마다 다름. 2016년은 그리스, 리투아니아, 미국, 스웨덴, 스페인, 슬로바키아, 에스토니아, 오스트리아, 터키, 헝가리. 2017년은 멕시코, 호주. 2018년은 이스라엘, 일본, 칠레, 한국. 나머지 국가는 2015년 기준임.

‘디지털 포용’…안전관리와 생산성 모두 충족하는 해법 찾자

올해 잇따른 쿠팡 유통·물류 노동자의 사망 사건에서 확인되듯이 산업현장에서의 재해는 개선되고 있지 않고, 오히려 그 심각성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약칭)중대재해처벌법’을 제정하는 등의 제도 개선책을 마련했는데 그렇다면, 규제를 중심으로 한 법·제도적 노력으로 산업재해가 개선될 수 있을까?

그것만으로 최선인가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다. 산업현장 친화적인 방식으로 기업의 생산성과 근로자의 안전관리도 동시에 충족시키는 혁신적인 해법에 대한 도전이 필요하다.

이제 우리가 스마트폰 없는 삶을 생각할 수 없듯이, 기술의 긍정성과 확장성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다. 얼마 전까지 ICT로 통용되는 용어가 이제 D·N·A(Data, Network, AI)라는 차세대 신기술로 표현되고 있다. 정부도 ‘디지털 포용’ 정책을 통해 사회문제 해결형 기술·서비스에 대한 연구개발(R&D)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디지털 포용’이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취약계층 등의 소외·불평등을 해결하고, 노동자 및 소비자의 안전과 삶의 질을 개선하는 기술·서비스를 말한다.

작업장에서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관리에 D·N·A 기술을 적용하는 새로운 도전이 첫걸음을 내딛고 있다. 올해 산업통상자원부는 신규 바이오 핵심기술 개발사업을 선정하고, 산업직군별 특성에 맞는 맞춤형 건강관리 서비스 개발사업을 민간 연구기관 공모를 통해 추진하고 있다.

유럽연합 산업안전보건기구(EU OSHA) e-tool이 주는 시사점

유럽연합 산업안전보건기구(EU OSHA)는 우리로 치면, 산업재해 예방관리기관인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 해당한다. 최근 유럽연합은 ICT 기술을 활용한 산업재해 예방솔루션을 개발해 보급하고 있는데, 바로 ‘e-tool’이다. EU OSHA의 e-tool은 기업을 위한 산업재해 관리용 데이터 기반의 소프트웨어, 온라인 또는 모바일 기반의 서비스들이다.

유럽연합은 ICT 기술이 매우 일반적이고 다양한 사용자에게 적용이 가능하고, 훨씬 더 구체적으로 사용자에게 맞춤화될 수 있음에 주목했다. e-tool의 기술적 본질은 데이터를 원천으로 하는 상호작용성에 있다. 즉, D·N·A(Data, Network, AI)의 원리가 적용된다는 의미다.

대략의 시나리오는 이렇다. 산업현장에서 각종 위험(추락, 낙상, 유해가스 등)과 건강 요인(근골격계 질환, 스트레스 등)과 관련된 데이터가 수집되고 연결된다. 그런 후 수집된 데이터는 인공지능 기술로 학습돼, 산업현장과 근로자를 위한 맞춤형 서비스로 제공되어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관리하는 데 활용된다.

e-tool은 산재예방과 더불어 생산성 향상을 목적으로 한다. ①특히 중소기업의 산재예방 및 작업장 위험관리에 대한 역량강화(empower)를 위한 산업특성별 안전관리지표를 제공한다. 이 목표는 궁극적인 목표다.

②기업의 생산 및 관리 효율성을 높여 비즈니스 활동을 촉진하는데 기여한다. 전자형태로 제공되는 데이터는 문서자료보다 더 쉽게 분석되고, 시각화되어 다양한 콘텐츠의 안전·건강관리 서비스로 제공될 수 있다.

③사업장 내에 설치되고, 근로자가 사용하는 각종 안전관리 디바이스, 웨어러블 등은 위험과 건강을 식별하는 데 도움을 주고, 사전 예지기능으로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업장 출근 또는 출입 시 사용하는 키오스크에 음주 측정, 감염 측정 등의 기능이 부가될 수 있다.

④기업이 구축한 e-tool 기반의 위험관리 시스템은 사용 경험과 데이터가 축적됨에 따라 사업장 산업재해에 대한 예측 기능으로 진화해, 작업장에서 예방 조치의 구현을 지원할 수 있게 된다.

⑤무엇보다도 e-tool의 편익은 사용자 편의성이 높고, 광범위하다는 점이다. 젊은 층에 특히 매력적이며, 온라인 확산과 보급(인터넷·모바일과 소셜미디어)을 통해 매우 다양한 이해관계자에게 활용될 수 있다.

⑥공공기관이나 정책관계자의 경우, e-tools은 인식개선 도구로 사용할 수 있으며, 공공관리자(예를 들면, 공공의 노동안전지킴이, 산업안전보건 관련 시민단체 등)에게 증거 기반의 예방·관리 기능을 제공할 수 있다.

디지털 기반의 산재관리 서비스는 첨단기술 D·N·A(Data, Network, AI) 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해법을 찾는 중이다. 이러한 도전을 ‘Social Innovation(사회혁신)’이라 칭하고자 한다.<이미지=이미지투데이>

디지털 기반의 산업 안전·보건관리 솔루션 개발을 위한 과제

산업현장의 특성과 조건은 사업별로 다종·다양하다. 스마트 팩토리와 사업장 작업장이 모든 산업현장에 구현될 수 없다. 특히, 플랫폼 경제의 진화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서비스 산업이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콜센터 종사자, 택배·물류 종사자, 배달업 종사자, 노인 돌봄 등 헬스케어 종사자 등 새로운 기술은 새로운 형태의 노동을 일으키고 있다.

당연하게도 디지털 기반의 산업 안전보건관리 솔루션에 만능열쇠는 없을 것이다. 다양한 산업현장과 지역별로 실험과 실증에 대한 도전이 필요하며,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지속적인 투자와 실천이 필요하다.

가장 핵심적인 과제는 디지털 산업안전관리 솔루션을 개발하고, 적용하는 ‘현장 실험실인 리빙랩(living lab)’이 사업장 현장에 많이 존재해야 한다. 사용자(기업주 또는 노동자 단체)가 수용하지 않는 안전관리 솔루션은 무용지물이며, 개발되기도 힘들다. 생각해보자. 건강관리를 위한 스마트워치(watch)를 노동자들이 사업장 내에서 착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버려진 장식품일 뿐이다.

둘째, 리빙랩의 주체는 사업주일 수도 있고, 노동자일 수도 있다. 특히 노동조합과 같은 노동자 대변 조직의 역할이 중요하다. 주된 사용자가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참여해 그들의 환경과 여건에 부합하는 디지털 기반의 서비스를 기술개발자와 공동으로 기획하고, 그에 부합하는 디지털 기기와 장치가 개발되는 것이 중요하다. 반복적인 사용과 실험을 통한 고도화의 안목은 기본이다.

셋째, 기술개발자는 개인정보 보안에 대한 확실한 보증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노동자가 참여하는 현장 리빙랩에서 선결적으로 풀어야 할 중대한 과제다. 노동자들로부터 수집된 각종 근로 관련 데이터(근무시간, 휴식시간 등), 건강 관련 데이터 등이 사업주 또는 제3자에게 오남용되지 않도록 하는 원천적인 정보보안 장치가 마련되고, 당사자에게 설명이 돼야 한다. 이는 역으로 기업주 측에도 마찬가지다.

넷째, 경제학적 관점에서 산업재해 예방서비스는 전형적인 ‘시장실패’ 영역이다. 이 영역은 기업의 지불능력 부담으로 시장에서 공급되지 않는 서비스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정부 차원에서 디지털 산재예방 기술·서비스에 대한 R&D 투자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과기정통부가 추진하는 사회문제 해결형 R&D의 필수분야로 산업현장 안전관리 기술개발을 포함하는 것도 유용할 것이다. 또한, 금년 내에 ‘디지털 포용법’이 제정돼 시행될 전망이다. 이 법은 노인, 장애인 등 취약계층을 위한 디지털 기술·서비스를 개발하는 기업을 지원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여기에 중소기업 노동자, 콜센터, 배달 노동자 등 취약한 작업환경에서 종사하는 노동자도 포함할 필요가 있다.

‘사회혁신’ 유망분야로 디지털 기반의 산재관리 서비스 희망

사회학의 관점에서 기존의 사회문제 해결에 대한 도전은 역사적으로 ‘Social Assistance(사회서비스)’, ‘Social Action(제도개혁, 권익옹호)’ 등의 방법으로 실천되어왔다. 그러한 노력이 지금도 우리 사회의 진보적 변화와 개선에 이바지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디지털 기반의 산재관리 서비스는 첨단기술 D·N·A 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해법을 찾는 중이다. 필자는 이러한 도전을 ‘Social Innovation(사회혁신)’이라 칭하고자 한다. 새로운 도전은 늘 장벽에 부닥치고, 기존 이해관계자들에게 견고하게 내재해 있는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y)의 질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기존에 시장에 일부 공급되는 관련 서비스는 ‘EAP(Employee Assistance Program, 근로자 지원 프로그램)’라 일컫는 서비스다. EAP는 전문가가 근로자의 근로의욕을 향상시키고, 정신건강 관리를 돕기 위해 시행하는 각종 지원 프로그램으로서 심리·상담, 경력관리 코칭 등의 서비스가 시장에서 제공되고 있다. 이러한 접근은 앞서 언급했던 사회적 지원서비스에 해당한다.

디지털 기반의 산재관리 서비스는 사용자가 주도적으로 데이터를 구축해 상호작용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사용자(노동자·사업주) 주도형 문제해결 접근이며, ‘디지털 사회혁신’ 해법으로서 의의가 있다. (중기이코노미 객원=김성기 박사, 에스이임파워 사회적협동조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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