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금산조를 잘 타 유명해진 미국 출신 조세린 배재대 교수는 국악의 세계화와 저변 넓히기에 큰 힘이 되고 있다. 그러나 시선이 ‘가야금 타는 손길’이 아닌 ‘벽안(碧眼)’에 먼저 꽂히는 순간 주객은 전도되고 예술은 빛을 잃기 쉽다. 가야금 명인들보다도 스포트라이트를 더 받는다는 그가, 실제로 그들보다 훨씬 많은 공연의 기회를 갖게된다면 말이다.

휴대전화 판매원이던 폴 포츠의 초라한 외모와 가난한 인생이 영국 오디션 프로그램 ‘브리튼즈 갓 탤런트’를 통해 세계적인 감동이 된 이래, 대중적인 예술‘판’에서도 ‘이색’에 기대는 풍조는 이제 세계적인 추세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음악하던 사람은 안되도, 음식점 배달하던 사람은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물론 예술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하는 것, 공부한 사람의 전유물일 수는 없다. 다만 예술성보다 ‘인생역전’이나 ‘흥행카드’에 먼저 눈을 돌릴 경우, ‘진지한’ 예술가, 혹은 지망생들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클래식 성악을 전공한 후 팝페라로 전업해 ‘인문학 팝페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듀오아임(Duoaim) 김동규·김구미꼬 부부는 이런 풍조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신들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마치 가면을 쓴 것처럼 이들의 레퍼토리는 다양한 분위기를 풍긴다.<사진=아임엔트>

“인문학이라고 하면 어렵고, 고리타분하고, 고민스러울 것 같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문학과 철학 그리고 역사는 우리들의 살아온 이야기, 살아갈 이야기, 그리고 죽음에 대한 생각 같은 것을 풀어내는 학문인 겁니다. 전기나 수도, 요즘의 통신망 같은 것들은 ‘재미’ 있거나 ‘돈을 많이 벌게’ 해주기 때문에 산업으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 ‘필요’하니까 키우는 것 아닙니까? 우리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인문학적 요소들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것이 저희 듀오아임이 하는 일입니다. 음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우리들의 인생이나 역사에 대한 내용들을 전달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팝페라 공연에서 눈물 흘리는 관객

지난 4월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 이들이 펼친 콘서트 ‘말의 꿈(A dream of a horse)’은 ‘초대권 없이’ 전석매진이라는 진기록을 채웠다. 우리나라 최초의 인문학 K팝페라 콘서트라는 생소함에도 불구하고 좌석은 입추의 여지없이 들어찼고, 이들은 말 그대로 관객들을 들었다 놨다 했다.

“어느 정도 자신은 있었지만, 팝페라 공연에서 눈물을 흘리며 몰입하는 관객들과 눈을 마주치고 대화하던 순간들은 두고두고 진한 울림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사실 준비단계에서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나는 바람에 ‘적자’는 면치 못했다는 것이 이들의 고백이다. 국악과 대중음악을 아울러 국내 최고의 세션진과 풀 오케스트라, 음향장비와 초대형 LED 스크린을 비롯한 조명장치까지 ‘할 수 있는 최고’의 수준으로 기획한 영향도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종류의 행사는 처음이었습니다. 음향 등 기술적으로 미흡한 부분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대성공으로 자부하고 있습니다. 일단 우리 사회에서 대규모 팝페라 공연이 ‘통한다’는 것을 증명했을 뿐 아니라 저희의 스타일을 구축하고 확인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공연 장면. 풀 오케스트라와 국악과 대중음악 세션은 물론 동요단도 함께 했다.<사진=아임엔트>

“이탈리아 관객들은 ‘심사’가 아니라 ‘격려’하는 분위기로 공연을 즐깁니다. 이런 관객들과 호흡하면서 관객을 위한 음악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우리나라에 돌아와 공연을 하는데, 관객분들이 좋아는 하시는데 결국 카타르시스와 같은 지점에 이르기에는 한계가 느껴지곤 했습니다. 마치 저희가 가사 전달하는 앵무새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고나 할까요?”

특히 이탈리아 현지사람들도 잘 안 쓰는 고어체나 문어체가 많은 오페라 아리아로는 관객들과 소통하기 한계에 다다르는 경우가 많았다. 관객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음악에 대한 열망이 참을 수 없을 만큼 강해졌단다. 고민 끝에 만들어낸 이들의 첫 작품이 ‘아리랑 아라리요’였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첫 공연부터 관객들의 눈빛이 틀려진 것을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고 이들은 회고한다.

이후 대부분의 레퍼토리는 팝페라로 채워졌다. 물론 이들만의 독창회는 ‘말의 꿈’을 포함해도 손가락에 꼽기도 모자란다. 대부분은 행사에서 한 두 무대를 채우는 수준이다. 그러나 이들의 내공은 만만치 않다. 공연마다 관객들을 흡인하는 능력이 있다는 평을 받는다. “한 작곡가(김동규)의 노래 맞나?” 싶을 정도로 넘버마다 분위기도 다르다. 록발라드, 포크, 국악, 동요 등을 넘나든다. 여기에도 이들의 철학이 있다.

“팝페라 단어는 꽤 유행하고 있지만 정작 ‘우리 것’은 없습니다. 다른 나라 명곡을 가져다 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희는 처음부터 ‘경쟁력 있는 우리 콘텐츠’를 조준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철칙은 ‘원전’에 맞추자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 고유의 것을 주제로 하되 개별 원전의 분위기를 가급적 그대로 살리자는 것이었습니다. 노래마다 분위기가 달라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국제적인 경쟁력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흔한 말로 ‘한국적인 것의 세계화’다. 아름다운 우리 시나 문학, 역사 등을 주제로 콘텐츠를 짜되 자신의 색을 버리고 텍스트에 맞게 음악의 색깔을 조율했다. 영어와 이태리어 등 번역에도 공을 들여 한글와 외국어 가사를 병용하는 경우를 늘렸다. 이태리어와 영어를 번갈아 부르는 서양 크로스오버 음악을 연상하면 된다.

“인순이” 찾는 고객에 “인순이 공연” 제공

콘텐츠는 콘텐츠, 비즈니스는 비즈니스다. 이 세상 모든 ‘멋진’ 음악이 ‘큰 돈’을 벌어다주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아임엔트’라는 일반사업자를 등록해 매니지먼트 업무도 하고 있다. 기업이나 공공기관의 ‘후원’이나 ‘기부’에 기댈 것이 아니라 자체적인 생존력을 갖춰야 한다는 지론 때문이었다.

“기업이나 공공기관 같은 고객들은 쉽게 ‘인순이’ 같은 가수를 찾지 ‘인순이가 하는 공연 기획자’를 찾지 않습니다. 처음에 저희가 공연의뢰를 받고 조명이나 무대설치를 누가 하냐고 물어보니 오히려 그쪽에서 당황하더군요. 그냥 가수만 부르면 공연이 저절로 되는 줄 알고 있었습니다. 마이크 없이, 무대 없이 어떻게 노래를 하겠습니까?”

세션, 조명, 무대설치, 음향 등의 산업기반이 해체된 가운데 이들을 하나로 조직해주는 역할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시각이다. 공연을 하는 과정에서 알게된 부문별로 ‘잘하는’ 팀을 네트워크로 묶고 이들을 공연에 부르는 것이다. 정산은 가급적 개별적으로 하되, 매지니먼트에 대한 품 역시 가급적 정확하게 받는다.

“투명하게 하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이것도 하나의 산업분야니까요. 산업기반이 해체되면 시장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되고 수급불균형이나 가격 왜곡이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희는 최고 수준의 세션이나 음향 팀을 소개해 주는데도, ‘왜 이렇게 싸냐’고 반문하는 고객이 많다는 것이 그 방증입니다”

최근 정부와 지자체를 중심으로 ‘문화융성’ 움직임이 활발하다. 현장의 예술가 중 하나인 이들은 “취지는 좋지만 실익은 글쎄…”라는 평을 내놓는다. 정부 등의 지원을 받기 위한 절차가 예전보다 단순해졌지만 여전히 요구하는 서류나 증빙이 많아 ‘기회비용’ 측면에서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그 시간에 연습 한번 더하자, 는 식이다. 정부 등이 주최하는 행사의 횟수는 늘어나지만 예산은 이에 따르지 못해 실익이 적다는 것도 아쉬움으로 지적했다. 주최 측이 ‘흥행성’을 지상과제로 두는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앞서 예를 든 ‘이색’ 카드를 먼저 집어들게 되니, 예술성으로 승부하는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허탈감에 빠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이들은 앞날을 확신한다고 못박는다. “일단 인문학이 ‘뜨고’ 있습니다. 이를 전달할 음악의 역할도 커질 것입니다. 인문학 융성의 바통을 음악이 이어받아야 합니다. 관객들의 수준도 높아지고 있고, 저희의 입지도 넓어졌습니다. 한번 제대로 놀아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음악은 나누는 것, 누구나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어

이들은 인생과 음악의 동반자다. 이름에서 알게 되듯 김구미꼬 씨는 일본 출신이다. 김동규 씨의 영세명은 요셉이다. 이들이 함께 어떤 예쁜 집을 지어나갈지 지켜볼 일이다.<사진=아임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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