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MO, ‘사막으로 걸어들어가다’, 가변설치, 혼합재료, 2021.<사진=아트노이드>

9명의 회화 작가와 설치 작가들이 모여 ‘책’을 모티브로 한 실험적인 전시를 선보인다. 

보통 책이라 함은 문자나 이미지를 통해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이다. 그러나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책이라는 매체가 가진 고정관념을 무시하기로 작정한 듯하다. 

양혜리 작가의 작품 ‘하양-기억나지 않는 것들’은 책 페이지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넘기는 것이 아니라 위로 넘겨야 한다. 

아트노이드178 김태은 디렉터는 양혜리 작가의 전시크리틱(‘반투명한 책 그림자:겹겹이 깊어지는’)에서 “한 페이지에 몇 문장씩만 인쇄된 텍스트는 다가와서 멀어진다. 투과되는 얇은막으로써 반투명의 트레싱지는 다가올 이야기를 페이지의 뒷면에, 지나간 이야기는 페이지의 위쪽에 새긴다. 파도가 넘실대듯, 비치고 겹치고 희미해지고 진함과 흐림이 교차한다. 넘기는 동작은 텍스트의 리듬을 발생시키고 겹겹이 비쳐드는 공간에 깊이를 더한다. 책의 일렁거림은 곧 기억의 움직임이다. 기억이 드리워지고 배어나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기억이 선명해지고 흐려지고 잊히고 다시금 불쑥 튀어나옴과 맞닿아있다”고 설명했다. 

LEMO 작가가 선보인 ‘사막으로 걸어 들어가다’(가변설치, 혼합재료, 2021)란 작품은 공간이 곧 책이다. 관람객들은 붉은 천들과 선들이 몽환적으로 얽혀있는 공간의 책으로 들어감으로써 작품을 체험해야 한다.

아트노이드178 박겸숙 대표는 LEMO 작가의 전시크리틱(‘이중상처: 책의 탈주’)에서 “눈앞에 펼쳐진 아련하게 붉은 공간이 한없이 이질적이다. 피부에 닿는 이질적인 감촉들을 헤치고, 넘기고, 젖히며 발을 내딛는다. 붉은 이미지들의 갈라진 그 열린 상처 속으로 들어간다. 이 공간은 책이다. 그러나 전혀 책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책의 경계인, 그 속으로 우리는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세계가 어떤 거대한 연결 안에서 예정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한 김수희 작가의 작품 ‘Play scene’(39.0×28.0×66.0cm, 복합재료, 2021)은 관람객이 서랍을 직접 열어보는 과정을 통해 작품과 교감하도록 만들어졌다. 

김예닮 작가의 ‘The book book, series 1-1~1-7’(182×128mm, 종이에 인쇄, 혼합매체, 2021)은 형태면에서는 완전한 책이지만 차라리 정물화에 가깝다. 김태은 디렉터는 전시크리틱에서 “실제와 가상의 경계에 대해 고민하던 작가는 회화작업을 하는 방식을 책 작업으로 들여왔다. 종이에 인쇄된 반투명한 사진 이미지는 하나의 회화작품에 가깝다. 그 자체로 정물화가 된다”고 설명했다.  

박창환 작가는 ‘진보의 한 방법’(가변설치, 잡지조각, 금 못, 2021)에서 진보라는 미명(美名) 하에 한없이 아름답게 보이는 욕망이 폭력적으로 채집해 온 대상들의 아름다움과 그 이면의 욕망을 이중적 구조로 보여준다. 현대인들의 욕망을 가장 극명하게 집적해 놓은 것으로서 작가는 잡지를 선택했다

이번 전시에는 주로 평면과 설치 작업을 진행해 온 김수희, 김신아, 김예닮, 김최미, 박창환, 양혜리, 윤지아, 이경민, LEMO 작가가 참여했다. 이들 외에 ‘형태와 소리’라는 프로젝트 그룹은 작품을 설치하는 현장에서 채집한 소리들로 사운드 작품을 만들고 이를 철제 구조물과 결합시킴으로써 아티스트북의 한 형태를 실험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가 특이한 점은 작품으로서 아티스트북을 비롯해 작품설치 과정과 전시크리틱이 기획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실험적인 전시를 꾸준히 선보여왔던 아트노이드178과 책을 통해 동시대예술을 공유하는 출판사 므아 프레스가 공동으로 기획했다. 전시는 오는 8월10일까지 성북구에 있는 아트노이드178에서 열린다. 중기이코노미 김현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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