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국 미술비평가(‘불타는 유토피아’, ‘비평의 조건’ 저자)

폴리 베르제르를 그냥 술집이나 뮤직 카페라고 부르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가장 근접한 표현이 극장식 카바레 정도일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곳은 술과 음악이 있었을 뿐 아니라, 무대가 있어서 서커스와 다양한 공연이 진행됐다.

마네의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 좌측 상단에 보이는 공중에 떠 있는 두 다리는 바로 서커스를 선보이고 있는 공중 곡예사의 다리다. 마네는 공중 곡예사의 다리를 표현함으로써 이곳에서 서커스와 같은 공연이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런데 이곳은 그저 전문 서커스단만 공연했던 곳이 아니다. 서구의 제국주의적 인종 차별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공연이 자주 있었던 곳이다. 소위 ‘인간 동물원’이라 불리던 신기한 볼거리가 이곳에서도 버젓이 정식 공연으로 무대에 올랐다.

쥘 세레(Jules Chéret), ‘폴리 베르제르의 줄루족의 춤 포스터(Folies Bergère. Les Zoulous)’, 1878.

가장 유명한 예로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사르지에 바트만(Saartjie Baartman)을 들 수 있다. 그녀는 엉덩이가 크다는 이유로 서커스에서, 심지어 광장에서 나체로 전시됐다. 그리고 그녀가 사망한 후에는 박제되어 박물관의 소장품이 되기까지 했다. 

그 당시 흑인은 인종적으로 열등한 존재라는 이론이 양산됐고, 이런 이미지는 일반 유럽인에게 편견을 갖게 했다. 1877년부터 20세기 초까지 파리에 있는 동물원인 아클리마타시옹(Jardin d’Acclimatation)에서는 아프리카 원주민을 동물처럼 전시하기도 했다.

그 당시 프랑스 곳곳에 공연장이 생겨났고, 아프리카 원주민들은 신기한 볼거리로 자주 무대 위에 올랐다. 폴리 베르제르는 이러한 원주민 공연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이곳에서는 아프리카 원주민인 줄루족(les zoulous)의 춤이 공연되었는데, 1878년 공연 포스터가 남아 있을 정도로 이 민속공연은 크게 성공했다. 또한 1887년에는 콩고의 피그미 족(Pygmies)이 이곳의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아프리카 원주민의 공연이 진행됐다. 

폴리 베르제르에서 아프리카 원주민들은 야만적이고 열등하고 미개한 인종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은 오락용이었다. 눈요깃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에두아르 마네,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Un bar aux Folies Bergère)’, 1882, 유화, 97×130cm.

폴리 베르제르는 아프리카 원주민의 공연뿐만 아니라, 무희나 곡예사, 배우 등이 등장하는 공연도 진행됐는데, 이런 공연의 포스터는 섬세하고 세련되게 표현되어 있다. 반면 원주민 공연 포스터는 흑인의 과장된 몸과 동작으로 성난 짐승처럼 그려져 있다. 야만성과 공포감이 포스터의 전면에 흐른다. 

폴리 베르제르와 같은 카바레나 광장, 공원, 극장에서 행해진 아프리카 원주민 공연은 흑인 원주민에 대한 인종적 차별을 확산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어쩌면 마네도 이러한 아프리카 흑인 원주민 공연을 봤을지도 모른다. 봤어도 그는 아무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 당시 이러한 인종 차별은 보편적이었고 문제라는 인식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은 유럽인들의 유흥으로만 가득 채워져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작품을 보며 위대한 화가 마네와 화려한 파리의 문화만 떠올려서는 안 될 것이다. 그 뒤에 편견과 착취에 시달리며 동물 취급을 받던 아프리카 흑인 원주민의 고통이 함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안진국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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