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포스터<사진=서울시립미술관>

흔히 도피주의(escapism)를 꿈꾸는 사람들은 현실을 바로 직시하지 않는 방관적인 태도로 인해 욕을 먹기 십상이다. 그러나 현실 밖을 향한 도피적 상상력이 오히려 타자와의 공감의 통로가 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주최한 제11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에서는 일탈적 욕망인 도피주의의 긍정적인 면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11월21일까지 선보인다. 코로나 팬데믹이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답답한 일상을 탈출하려는 사람들의 욕구를 정확히 읽어낸 전시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디어비엔날레답게 시트콤부터 상업영화, 이미지 유통 플랫폼 등을 레퍼런스로 활용한 영상, 설치, 사진, 회화, 사운드 등의 작품들을 선보인다. 

특히 ‘유통망 프로젝트’는 서울 전역의 카페, 서점, 상점, 도서관 등 민간과 공공 문화거점 97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돼 관심을 끌고 있다. 삼성역에 설치된 80m 크기의 미디어캔버스인 케이팝스퀘어미디어에서는 수요일과 토요일 매시간마다 참여 작가들의 작품을 순차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참여작가 중 토비아스 칠로니(Tobias ZIELONY)는 최근 독일사회에서 벌어지는 이주민 혐오나 인종 차별 등 사회적 쟁점을 상기시키는 좀비 이미지, 팬데믹으로 인한 봉쇄기간 동안 주변의 사물과 풍경에 대한 기록, 독일 일본 한국 몰타의 도시에서 밤을 배경으로 한 청년들의 초상을 재구성한 사진 연작을 소개한다. 

마포구의 비영리 예술공간 ‘합정지구’는 팬데믹이 가져온 사회적 단절을 소통의 계기로 전환해, 일상과 창작, 공동체에 관한 대화를 주고받는 온라인 프로젝트를 선보인다.

음악부문에서는 안무가이자 퍼포머인 아이사 혹슨(Eisa JOCSON)이 한국 케이팝 아이돌의 음악과 안무를 차용해 팬데믹 시대에 대처하는 필리핀 정부의 모순을 비판한다. 

서울시립미술관 로비 전체를 감싸는 미네르바 쿠에바스(Minerva CUEVAS)의 대형 벽화 작업은 픽셀 비디오 게임과 같은 시각 언어를 사용해, 식품 산업과 동물권에 관한 작가의 소신을 표현한다. 이 작품은 국내에서 동물권 활동을 활발하게 이어온 임순례 영화감독에 대한 오마주를 담고 있다.

<사진=서울시립미술관>

<사진=서울시립미술관>

이번 전시를 연출한 융 마 예술감독은 “20년이 넘는 역사를 쌓아온 이번 비엔날레를 기획하면서 대중 미디어, 도시 환경 속 미디어, 손 안의 미디어 등을 콘셉트로 다양한 실험을 하고자 했다”고 밝히며, “비엔날레를 찾는 한국 관객들이 세계 각지에 존재하는 다양한 관점과 만나고, 나아가 ‘함께 있음’의 중요성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백지숙 서울시립미술관장은 “현대미술을 통해 국제사회와 지역사회가 만나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는 교류의 장”이 되길 바란다고 언급하며, “장기화되는 코로나19 사태에 지친 시민의 일상에 신선한 전환이 되고, 미래에 대한 희망적 상상을 만드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전시와 관련된 자세한 정보는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웹사이트와 서울시립미술관 웹사이트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전시를 해설하는 오디오 가이드는 서울시립미술관 전시도슨팅 앱과 전시전문 오디오 콘텐츠 플랫폼 ‘큐피커’를 통해 들을 수 있다. 중기이코노미 김현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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