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언론 보도를 통해 미국 로스앤젤레스 롱비치항에 대형 선박 100여척이 한 곳에 몰려 있는 장면을 봤다. 물류대란으로 항만에 물류를 적재하지 못해, 항구에서 표류 아닌 표류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이 발생한 이유는 항만 인력과 장비의 부족을 해소하지 못해서다. 화물처리 기능이 상당부분 약해진 것이다. 

코로나19로 한때 국가 간 이동통로가 봉쇄됐지만, 교역 필요성은 전염병 확산 속도에 아랑곳 하지 않았다. 세계 경제는 ‘위드 코로나’란 명분으로 다시 무역에 시동을 걸었다. 수출입 물동량 증가는 당연히 경기회복으로 이어졌다. 이런 가운데 물류대란 사태까지 불러 온 인력 부족 원인에 대해 눈여겨 볼 부분이 있다.

명지대학교 박정호 교수는 지난 10월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인력 부족으로 물류대란을 겪는데 노동자들이 현장으로 복귀하는 것을 주저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물류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전문적인데다 임금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현장 복귀를 주저하는 이유는 분명했다. 과도한 노동시간에 따른 잃어버린 일상을 되찾기 위해서다.

코로나19로 물량이 감소하면서 재택근무가 늘고 그로 인해 그간 미뤄왔던 일상생활을 어느정도 가질 수 있었는데, 이후 경기회복에 따라 물류량이 늘면서 다시 현장으로 복귀할 것으로 예상한 노동자들이 다른 선택을 한 것이다. 그간 모아 둔 돈으로 일상생활로 돌아가 삶을 살겠다며, 은퇴하는 숫자가 급격히 늘어난 것이다. 코로나19 1년8개월여 만에 그들은 삶의 철학을 바꿨다.

박 교수는 “미국에서 물류 분야에 일하고 있는 분들 중 코로나19로 300만명이 조기 은퇴” 의사를 내비쳤다고 언급했다. OECD 전체로 따지면, G7 국가를 기준으로 1000만명이 줄었단다. ‘일할 생각이 이제 없다’고 선언한 노동자가 1000만명에 가깝다는 것이다.

미국이 인력 부족으로 물류대란을 겪는데, 노동자들이 현장으로 복귀하는 것을 주저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과도한 노동시간에 따른 잃어버린 일상을 되찾기 위해 현장 복귀를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이미지=이미지투데이>

우리 사회에서는 코로나19 여파로 일상생활이 멈춘 뒤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보며, 일상의 소중함을 새삼 느낀 사람은 얼마나 될까. 여기서 나아가 그간 노동에 지친 고단한 삶을 접고, 가족과 함께 자신의 삶을 살겠다며 방향을 전환한 이는 또 얼마나 될까.

대한민국, 나아가 지구촌 어느 곳에서 현실을 살고 있는 대다수에게 코로나19는 경제, 사회, 문화 하물며 의료 분야에서도 쉽지 않는 난관으로 다가왔다. 이 지긋지긋한 감염병에서 벗어나 일상회복을 바라는 심정도 마찬가지다. 그냥 일상회복이 아닌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일상회복 말이다.

워라밸, 일과 삶의 균형(워크-라이프-밸런스)의 줄임말이다. 1970년 후반 영국에서 처음 등장했지만, 5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남의 나라 이야기로만 들린다.

20~30대에서 업무보다는 자신의 생활을 즐기는 풍조가 여느 때보다 강해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한 경제활동 강도는 더 강해진 것 역시 간과할 수 없는 현실의 한 부분이다.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 시대다. 여기에 맞춰 지금과는 다른 사회 시스템이 작동되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시스템의 최종 결과물은 코로나19 이전 시대로의 복귀가 돼서는 안 된다. ‘위드 코로나’를 넘어 ‘위드 패밀리’가 돼야 한다.

미국의 물류대란은 노동력 대란이다. 물류가 주체가 아닌 노동자가 주체란 얘기다. 대한민국 사회도 언제, 어떤 형식으로든 일어날 수 ‘대란’이다. 이를 사전에 예방하는 유일한 방법은 ‘인간 존중’이다. 11월13일 22세 젊은 청년 전태일이 삶을 접으며 외쳤던 ‘근로기준법 준수’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중기이코노미 채민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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