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그의 죽음을 두고 많은 언론들은 영욕의 삶이었다고 평했다. 그러나 영광과 명예롭다는 반쪽의 평가마저 불편하다. 7년 대통령 재임이 본인에게는 영광과 명예일지는 모르지만, 권력의 찬탈에 지나지 않았다.

80년대 경제성장도 국제적인 3저 호황과 국민들의 가난 탈출 의지가 모아진 결과다. 일부 호사가들은 그의 경제적 성과만큼은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고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재벌위주 경제정책이 고착됐고 불평등의 토대가 공고히 다져졌다. 유신시대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내기는커녕 온갖 토목사업과 수출 산업에 저임금 노동을 밀어 넣고 정권과 재벌이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그래서 전두환의 죽음을 두고 영욕의 삶은 빈말이다. 욕된 삶일 뿐이다.

그가 유언처럼 남긴, 북한이 바라보이는 전방에 묻혀 통일을 보고 싶다는 말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전두환은 그런 유언조차 남길 자격이 없다. 광주시민을 무참히 살육한 명분이 북에서 침투한 간첩과 그에 동조한 불순분자로부터 나라와 국민을 보호한다는 것이었다.

집권기간 내내 숱한 공안사건을 만들어 민주인사, 통일인사를 투옥하고 죽게 한 전두환이 전방에 묻혀 통일을 바로 보고 싶다고(?), 29만원 밖에 없다는 망언과 다를 바 없다. 국립묘지에 묻힐 자격은 일찌감치 박탈된 지 오래지만, 통일의 화신처럼 북을 바로보고 누운 전두환의 묘도 당치 않은 일이다.

23일 서울 세브란스병원에서 전두환심판국민행동 관계자들이 전두환의 죽음에 대한 입장을 밝힌 뒤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뉴시스, 공동취재사진>

전두환이 죽었다. 서거도 별세도 그에게는 맞지 않는 예우다. 학살자, 권력을 찬탈한 독재자 전두환, 살아 어떤 반성도 죗값도 치르지 않고 죽었다. 그의 죽음 앞에서 살아 있으면 퍼부었을 온갖 비난을 자제하는 건, 죽은 자에 대한 추념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이 지켜야 할 품격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학살에 대해 반성하냐고, 사죄할 마음은 없냐고 물어 볼 대상도 없어졌다. 전두환은 반성과 용서의 기회를 잃어버렸고, 역사와 국민들의 가슴에는 영원한 학살자로 화인처럼 남았다.

전두환의 학살과 권력찬탈에 대해 영원히 단죄의 기회는 없어졌다. 그러나 그가 죽고 노태우가 죽었다고 해서 아픈 역사가 치유되는 건 아니다. 죽었다고 해서 지나간 역사도 아니다. 정작 중요한 건 기억이다. 그가 묻힌다고 해서 학살의 원죄를 묻어서는 안 된다.

아직도 빈소를 취재하는 기자들에게 빨갱이라고 고함치는 세력들이 있다. 국민이 주인 행세를 하지 못하면, 언제라도 이런 세력들이 또 다른 전두환으로 탄생할 수 있는 건 역사가 수차례 보여준 나쁜 순환이다. 군인들이 권력을 잡고, 검찰과 언론과 경제 권력이 군림하는 세상에서 민주주의는 한낱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전두환의 시대. 영욕의 역사가 아니라 참혹한 세월이었다. 그가 남긴 정경유착의 고리는 여전히 이 땅을 지배하는 못된 통치질서다. 반북과 냉전적 사상은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그의 죽음이 애석할 것도 그렇다고 반가울 것도 없다. 버려야 할 것과 기억해야 할 것, 제대로 분리수거를 해야 5공 유산도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 전두환. 국가와 국민과의 악연도 이렇게 끝이 났다. 그러나 기억하자. 그 악행은 역사를 뒤틀어 놓았으며, 후과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경계하지 않으면 또 다른 쿠테타 세력들이 언제라도 국민의 목에 총검을 들이댈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중기이코노미=안호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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