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스타일은 뉴욕 바깥에 존재하는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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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뉴욕 스타일은 뉴욕 바깥에 존재하는 것일지도 Life is pain.ting #48. 당신은 어떤 스타일입니까?①

기사입력2021-12-08 10:12

김윤아 기자 (bombbi0401@naver.com) ㅣ다른기사보기

작업 이야기가 오고 가다보면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스타일’이다. 기실, 작업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 속에서 패션이나 음악, 문학, 가구, 음식까지 스타일을 말하지 않는 분야를 찾는 것이 거의 어려울 지경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늘 입에 달고 사는 그 ‘스타일’이란 건 과연 어떤 ‘스타일’을 갖고 있는 것인가.

내게 스타일에 대한 칭찬을 자주 하던 비평가(최근 같은 레지던시에 있으면서 소통할 기회가 많던)와 스타일에 관해 심도 깊은 대화를 하던 중에 본인이 거의 20년 전에 뉴욕에서 쓴 패션과 스타일에 관한 원고를 보여주었다. 무려 20년 전의 글이지만 불과 몇 년 전 뉴욕을 다니면서 보고 느꼈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니, 거의 꼭 같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미술 작업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이 스타일에 대해 4회에 걸쳐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지인들로부터 ‘넌 참 뉴욕 스타일이야’ 라는 말을 종종 듣던 나는 처음 뉴욕에 갔을 때 다소 혼란스러웠다. 뉴욕 스타일이라는 것이 보이지도 않고, 만지거나 잡을 수도 없는 판타지 같았기 때문이다. 난 그 스타일을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꼭대기에서도, 소호나 이스트 빌리지, 매디슨 애비뉴 5번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물론 맨해튼 어디를 걸어다니더라도 어렵지 않게 스타일리쉬 한 커피숍이나 레스토랑, 옷 가게들을 볼 수 있다. 뉴욕거리는 언제나 스타일 좋은 사람들로 넘쳐난다.

그러나 스타일 좋은 사람들이나 장소가 어디 뉴욕에만 있을까. 파리에도 있고 밀라노에도 있고 동경이나 서울에도 있다. 하지만 파리나 밀라노와 구별되는 뉴욕만의 독특한 스타일이 뉴욕 어디엔가 있기에 뉴욕 스타일이란 말이 흘러 다닐 것이다. 그런데 뉴욕에서 뉴욕 스타일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오히려 서울에서는 뉴욕 스타일이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뉴욕 스타일의 패션, 뉴욕 스타일의 스테이크를 파는 식당, 뉴욕 베이글 가게도 있다. 심지어 ‘뉴욕제과’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뉴욕 스타일은 뉴욕 바깥에서만 발견되고 뉴욕에는 없는 어떤 스타일일까? 뉴욕 시가지나 뉴욕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 뉴욕 스타일이 없다면 어쩌면 그것은 뉴욕 바깥에 있는 거리나 뉴욕 밖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만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뉴욕에 대한 특정한 이미지는 주로 뉴욕 바깥이나 그곳에 사는 사람들 아니면 뉴욕 관광객들에게서 흔히 발견된다.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선물가게에서 주로 보인다. 자유의 여신상이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의 모형, 뉴욕의 야경이나 명물을 찍은 사진, 나아가 뉴욕 지하철 노선지도가 새겨진 티셔츠부터 뉴욕을 상징하는 빅 애플 열쇠고리까지 공항이나 뉴욕시내의 선물가게 도처에 있다. 뉴욕을 몇 번 와본 사람들은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숍이나 브로드웨이 극장가에서 뮤지엄 프린트가 찍힌 엽서, 모조 예술품, 뮤지컬 ‘팬텀 오브 오페라’, ‘렌트’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 등을 보고 뉴욕 스타일을 발견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뉴욕 스타일이 뭐 별게 있을까. 뉴욕에서 뉴욕의 공기를 호흡하고 뉴욕의 거리를 누비면서 보고 듣고 읽고 경험한 모든 것이 바로 뉴욕 스타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뉴욕 스타일은 획득되고 구매되는 그 무엇인 것이다. 때로는 5번가에서 페레가모 구두를 사고, 매디슨 애비뉴에서 지아니 벨샤체 벨트나 에르메스 가방을 사거나 소호나 첼시에 있는 요지 야마모토나 콤 데 가르송의 옷을 입으면 뉴욕 스타일이 획득될 것 같기도 한다. 좀 더 거칠게 말하자면, 뉴욕에 있는 모든 게 뉴욕 스타일 같기도 하다. 뉴욕 스테이크와 맨해튼 크램 차우더란 수프를 먹으면서 우리는 뉴욕을 경험하고, 아이 러브 뉴욕(I Love NYC)이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면 우리는 충분하게 뉴욕 스타일을 획득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맨해튼에서 소호나 그리니치 빌리지 또는 로우어 이스트 사이드 거리를 걸어 다니다 보면, 동네마다 무엇이라고 딱 잘라 말하기 힘든 독특한 분위기가 확실히 감지된다. 말할 수 없는 그 무엇이 거리나 건물, 지나는 사람들에게 녹아 있다. <이미지=이미지투데이>

뉴욕에서 돌아와 다시 서울의 일상에 젖어 살다보면, 어느새 뉴욕이라는 물리적 공간에서의 경험은 바래져가고 추억은 그 무렵 찍은 사진이나 기념품으로만 남아있다. 그렇게 뉴욕에서 경험했던 스타일이 어느덧 꿈처럼 아련해질 무렵, 청담동이나 홍대 거리를 걷다 보면 뉴욕에서 입고 먹었던 바로 그 ‘뉴욕 스타일’이 그대로 살아서 숨쉬는 기묘한 광경을 보게 된다. 뉴욕의 스타일이 대한민국 서울에 그대로 있는 것이 다. 뉴욕 베이글, 뉴욕 피자, 뉴욕 스타일 스테이크, 심지어 뉴욕하이패션까지 생생하게 서울에 있다. 뉴욕 스타일이 한국에서 생생하게 살아서 숨 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맨해튼에서 소호나 그리니치 빌리지 또는 로우어 이스트 사이드 거리를 걸어 다니다 보면, 동네마다 무엇이라고 딱 잘라 말하기 힘든 독특한 분위기가 확실히 감지된다. 단순히 건물들의 형태나 사이즈만 다른 게 아니라 오가는 사람들의 피부색이나 옷 입는 방식도 모두 다르다. 음식점, 술집, 심지어 자그마한 구멍가게의 간판이나 인테리어까지도 제각각이다. 각 동네를 지배하는 스피릿과 분위기까지도 서로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어디를 가도 만만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말할 수 없는 그 무엇이 거리나 건물, 지나는 사람들에게 녹아 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그 지역 사람들처럼 보이기 위해 옷차림이나 몸짓을 흉내 내고 싶어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급기야 그러한 환경 속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지기까지 한다. 말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스타일’이란 모습으로 홀연히 나타나서 약동하는 것이다. 숨어 있던 스타일이 갑자기 내 마음, 내 눈, 내 몸에서 이렇게 돌발적이고 우연적으로 튀어나와 유령처럼 주변을 배회한다. 그렇다고 내마음 속 어딘가에 숨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어디에나 있지만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는 어딘가에 있다가 어떤 순간에 불쑥 나타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