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신동화 간사

서두에 개인적인 이야기를 쓴 이유는 현행 법령의 미비점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서다. 공사업체의 이사가 공사를 위탁한 기업 평사원의 비위를 맞추려고 과잉친절을 베푼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현행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하도급법)’ 제2조에 따르면, 위탁거래 행위는 제조위탁, 수리위탁, 건설위탁, 용역위탁으로 제한적이고, 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의 업이 일치하지 않으면 수급사업자는 하도급법에 규정된 보호를 받지 못한다. 예를 들어 제조업 대기업인 ○○전자가 건설사업자인 중소기업 □□산업에게 시설공사를 발주한 경우, 작업 전 계약서 교부, 대금 부당감액 금지, 구속조건부 거래 금지, 기술유용 금지 등 하도급법으로 보호받아야 할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셈이다. 공사업체의 이사가 원사업자의 사원을 대하며 취한 저자세는 거래상 갑을관계 외에도 법적 보호망 부재도 관련이 있었을 것이다.

불공정거래 행위 만연…제재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

하도급법은 공정한 하도급 거래질서 확립을 통한 원·수급사업자의 대등한 지위 형성과 균형있는 발전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법이다. 그러나 이 법에 담지 못한 현실의 여러 문제들은 원·수급사업자, 즉 대기업·중소기업 간 대등한 거래 지위 구축을 요원하게 만들었다. 오히려 선 작업 후 계약, 부당한 단가인하, 기술탈취 등 갑질행위는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다.

올해 상반기 재단법인 경청과 한국갤럽이 중소기업 1000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방문 실태조사(경청, 2021.6., 2021년 중소기업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61.3%가 ‘대금지급 관련 부당한 요구’를 경험했다. 또 ‘하도급대금 지급 미실현’을 경험한 중소기업이 68.3%나 됐다. 참여연대가 연대하고 있는 조선 하도급 불공정 사례를 살펴봐도 부당한 기술자료 요구 및 탈취, 작업 전 계약서면 미발급, 부당한 하도급대금 결정, 부당한 위탁 취소·변경 행위 등에 대해 당국의 제재 결정이 빈번하게 이뤄져 불공정거래 관행이 만연해 있음이 확인됐다.(참여연대, 2021.5.20., 한국조선해양-대우조선해양 기업결합 관련 불공정거래 문제 해결과 한국산업은행의 공적책임 강화 요구).

전속거래구조와 불균등한 거래관계 구조로 볼 때, 수급사업자는 웬만한 사안이 아니고서는 원사업자의 부당한 행위를 쉽게 신고하기 어렵다. 따라서 당국이 제재를 결정된 사건은 실제 현장에 만연한 불공정거래 행위의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이다.

현 대선 국면에서 사회 양극화를 완화하기 위한 여러 대안들이 경쟁적으로 제안되고 있음에도 대·중소기업 간 격차 해소, 불공정거래 구조·관행 철폐와 관련된 논의는 충분히 제기되지 않아 아쉽다.<이미지=이미지투데이>

두 차례 개정에도 불공정거래 구조 척결 과제는 여전

물론 올해 두 차례에 걸쳐 하도급법이 개정돼 불공정거래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개선이 이뤄지기는 했다.

올 7월 개정된 하도급법에는 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의 기술자료를 제공받을 경우 비밀유지계약을 체결하는 내용이 들어갔으며, 하도급 불공정거래 사건 관련 손해배상소송에서 법원의 자료제출명령권이 도입되기도 했다. 이들 개정사항은 대기업 원사업자가 중소기업 수급사업자의 기술을 함부로 유용할 수 없도록 서면화해 법률로 보호받을 여지를 확보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불공정 갑질에 대해 사법적 구제의 실효성도 다소 높아진 것으로 평가된다.

12월 통과된 하도급법에도 하도급계약 체결 전 기술탈취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이 포함돼 사업검토를 빌미로 제출받은 기술자료를 부당하게 유용할 수 없도록 제재 근거가 마련됐다. 중소기업중앙회도 수급사업자를 대표해 원사업자와 하도금대금 조정협의를 할 수 있게 한 것 역시 납품단가 관련 중소기업의 협상력을 높인 것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여전히 개선돼야 할 입법·정책과제가 많다. 우선 중소기업과 협동조합의 공동행동, 특히 납품단가 결정과 관련 중소기업의 공동행위를 원칙적으로 허용하는 방향으로 공정거래법 또는 중소기업협동조합법이 개정돼야 한다. 이는 중소기업의 협상력 강화로 중소기업이 사업운영의 대가를 정당하게 받아 재무상 어려움을 개선하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토대를 만들기 위한 입법사항이다.

공정당국·지자체의 행정력 개선·강화를 통해 시장에서 발생하는 불공정거래를 당국이 바로잡을 필요도 있다. 하도급 계약서 작성·교부 관련 사항 개선과 피해구제기금 도입,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강화 등 하도급 갑질 피해를 방지·구제할 방안 마련도 절실하다. 국가·공공 영역부터 공공기관과 공기업의 하도급거래 공정화를 제도화해 솔선수범할 것 역시 요구된다. 서두에 언급한 하도급법 보호대상이 협소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하도급 거래 업종 구분 규정을 삭제하고 법적 보호 테두리를 넓히는 것 역시 고려돼야 할 사항이다.

한국에서 중소기업은 전체 기업의 99.8%를 차지한다. 전체 기업 종사자 중 83% 이상의 고용을 책임지고 있다. 그러나 전체 영리법인 중 0.1~0.2%에 불과한 대기업은 전체 기업 영업이익의 약 57%를 독차지하고 있다(통계청, 2020.12.14., 2019년 영리법인통계 결과). 중소기업 노동자 1인당 평균임금은 대기업 노동자 평균임금 대비 59% 수준에 불과하다(중소기업연구원, 2021.3.15., 대-중소기업 간 노동시장 격차 변화 분석:1999~2019, 중소기업포커스 제21-04호). 중소기업 노동자의 평균임금이 대기업 노동자 평균임금의 70~80%대에 이르는 미국, 일본 등 선진국과 비교하면 그 격차가 너무 크다.

현재 한국사회의 양극화 심화는 이러한 문제를 따로 떼어놓고 설명할 수 없다. 그래서 현 대선 국면에서 사회 양극화를 완화하기 위한 여러 대안들이 경쟁적으로 제안되고 있음에도 대·중소기업 간 격차 해소, 불공정거래 구조·관행 철폐와 관련된 논의는 충분히 제기되지 않아 아쉽다. 정치권에서 대·중소기업 간 공정거래질서 확립을 위한 입법·정책 과제들을 더 중요하게 다뤄줄 것을 요구한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신동화 간사)

<저작권자 ⓒ 중기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관련기사 ㅣ 네이버·쿠팡 마음대로 계약해지 할 수 있다고
• 관련기사 ㅣ 자영업자와 건물주, 누구를 위한 손실보상인가
• 관련기사 ㅣ 금융소비자를 보호할 전문 독립기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