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서 만난 지인들의 ‘기대’와는 달리 나도 어엿하게 군대를 다녀온, 그것도 병장으로 전역한 남부럽지 않은 예비역이다. 내친 김에 군대 이야기 한번 해야겠다. 야간 경계근무 대신 ‘벙커’라고 부르는 상황실에서 야간당직을 서는 작전병이었다. 병장 계급장을 달자마자 영어 공부 한답시고 토플 책을 구해 들여왔다. 병사들만 아는 비밀 장소에 고이 모셔놓고 (간부들 점검이 없는) 새벽 상황근무 때만 몰래 꺼내 공부를 시작했다. 별 재미는 못봤다. 채 2주도 지나기 전에 들통이 났던 거다. 병장이자 어깨에 초록색 분과장 견장까지 찬 ‘부대 지도층’의 체면에도 불구하고 군장을 꾸려 연병장을 돌아야 했다. 그땐 그랬다. 군기가 엄정해야 한다고도 믿었고, 추운 밖에서 고생하는 동료들에게는 미안한 짓을 했구나, 라고도 자책했다.
최근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와 정종섭 안정행정부장관 후보자의 군생활 이력을 놓고 말들이 많다. 먼저 문 후보자는 장교 복무 3년 중 절반가량을 서울대 대학원을 다닌 것으로 드러났다. 총리실 쪽에서는 “무보직 상태에다 군내 상황변화에 의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예인정 침몰과 육영수 여사 피살 사건으로 서슬이 퍼럴대로 퍼랬던 1974년 당시에, 대한민국 해군 장교가 무려 세 학기를 특수대학원도 아닌 일반대학원을 다녔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임에 틀림없다.
정 후보자는 한 걸음 더 나갔다. 군법무관 복무기간 중에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3년에 가깝게 박사학위 과정까지 밟았다. 서울은 물론 강원도 화천, 경기도 용인 등에서 근무한 그가, 위수지역을 넘나들며 서울 연세대학교의 주간 대학원을 다녔을 것을 생각하니 영락없는 신출귀몰, 홍길동이 떠오른다. 이들 후보자들은 직업군인도 아니고 일정기간 의무복무를 하는 장교에 불과했다. 당연히 군이 필요에 의해 민간에 위탁교육을 맡길 대상자가 아니었다. 위법과 특혜에 대한 논란이 일 수밖에 없다.
병역의무 상황을 통한 공직자 후보 등의 도덕성 검증에도 엄연한 ‘트렌드’가 존재하는 모양이다. 본인이나 아들들의 의무 이행을 놓고 ‘신(神)의 아들’ 자조유머가 식상해질만 하니, 이젠 병역을 이행하되 이 핑계 저 궁리로 ‘학(學)테크’에 성공하는 ‘신의 조카’가 기세를 올리고 있다. 국방부가 군복무 기간을 대학 학점으로 인정하는 방안을 저울질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참에 한발 더 나가 형평성을 기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좋겠다. 대학 다니다 온 병사들에게는 학점을 주고, 대학 안 다닌 병사들은 모두 학사 과정을 보내주는 거다. 어차피 수십만 병사들 봉급 올려줄 돈도 없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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