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복심이라고까지 불리는 실세 경제부총리의 위세가 대단하다. 아직 청문회도 하지 않은 최경환 경제부총리 후보자의 말 한마디에 주요 경제부처와 금융당국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최경환 후보자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부동산 규제를 여름옷에 비유했다. 자신이 공직에 있던 시절을 부동산 시장의 한여름에 비유하면서, 한겨울에 여름옷을 입어서는 안된다는 말을 한 것이다. 이 발언은 LTV(부동산 담보 인정비율)와 DTI(총부채 상환비율)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되면서 큰 파장을 낳고 있다.
당장 경제부처 중 하나인 국토교통부의 입장이 바뀌었다. 서승환 국토부 장관은 LTV·DTI 제도가 금융건전성을 위한 제도라는 이유로 부동산 정책에 이용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그러나 지난 19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는 긍정적인 영향을 인정하며 신중히 검토해보겠다는 언급을 했다. 서 장관은 장관 임명 직전까지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미시경제학과 지역경제론 등을 강의해온 경제전문가다.
금융당국 역시 입장이 돌변했다. 대통령이 직접 추진한 규제개혁의 대상에 LTV와 DTI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강경한 입장을 보여온 신제윤 금융위원장도 “금융이 실물을 지원할 수 있는지를 검토하겠다”고 나섰다. 최수현 금융감독원장 역시 “합리적 개선방안을 찾겠다”고 발언해 LTV·DTI 규제 완화는 마치 기정사실인양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LTV·DTI 규제 완화는 IMF의 권고와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점에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IMF는 지난 5월 금융시스템안정평가(FSSA)보고서를 통해 “거시건전성정책(LTV/DTI)으로 은행의 가계대출 증가가 둔화된 반면 비은행금융기관의 가계대출이 증가했다”며 “비은행예금수취기관에도 은행과 동일한 규제를 적용해야 하며 규모가 큰 기관은 보다 엄격히 감독해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 금융건전성과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LTV·DTI를 오히려 확대시행해야 한다는 의미다.
IMF는 이와 함께 “금융안정성과 건전한 감독·집행이 더욱 강화될 수 있도록 정치적 절차로부터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의 독립성을 강화해야 한다”고도 권고했다. 대통령의 최측근인 경제부총리가 추진하는 정책이라 하더라도, 금융당국이 스스로의 기준과 판단에 따라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경제선진국들의 공통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물론 최경환 후보자는 아직 청문회도 통과하지 않았으며, LTV와 DTI 규제를 완화하기 위해 행동을 취하거나 이에 반대하는 금융당국과 대립한 적은 없다. 다만 ‘실세’ 경제부총리의 핵심 추진정책에 대해 국회와 언론, 국민들이 관심을 갖자 금융당국들이 그에 대한 입장을 밝혔을 뿐이다.
그러나 금융건전성 유지를 위해 DTI와 LTV 완화에 강경한 입장을 보여온 금융당국이 일사분란하게 이전과는 달라진 톤으로 발언하는 모습을 보면, 금융당국의 정치적 독립성은 요원하다는 생각이 든다. 후보자 신분인데도 이정도면 청문회 후 정식 임명이 이뤄진 뒤는 더욱 걱정이다. ‘실세’나 ‘복심’에 흔들리는 정부라면 그건 민주정부도 아니고, 유능한 정부도 아니라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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