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장기화로 ‘비대면’이 익숙해지면서, 다수의 의견과 돈을 한 곳에 모은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예를 들어 팬클럽 활동, 정치 단합, 사업설명회 등이 코로나 이전 흔히 오프라인에서 진행됐지만, 이제 불편해진 것이다. 이에따라 이들 활동이 온라인으로 넘어 오면서 크라우드 펀딩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기업의 투자나 대출을 위한 자금 조달형식으로 활용되던 크라우드 펀딩이 온라인 연대 활동의 역할을 톡톡히 하는 것이다.

◇‘팬심’을 담아 펀딩하다=코로나 불황의 직격탄을 가장 크게 맞은 곳 중 하나가 공연예술 시장이다. 전 세계적으로 K-Pop을 비롯한 한류 열풍이 거세지만, 정작 팬들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좋아하는 연예인의 공연을 직접 보기 힘들어졌다. 그 뿐만 아니라 함께 모여 팬 아트를 제작하거나 공방 참석을 하는 등 오프라인 팬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이 때문일까. 팬심을 담은 펀딩, 일명 ‘팬딩’으로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온라인으로 응원하는 팬 문화가 유행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팬브릿지가 론칭한 ‘포도알’은 팬들과 함께 콘텐츠를 기획하고 만들어가는 ‘팬덤 기반’의 애플리케이션이다. 유저는 앱 내 다양한 팬 활동으로 얻은 포도알 포인트로 좋아하는 아티스트에게 투표하고, 특별한 광고를 선물할 수 있다. 이달에 생일인 아티스트에게 투표하면, 가장 많은 표를 얻은 1, 2, 3위 아티스트에게 전광판, 지하철 광고 등의 혜택이 주어진다. 현재 가입자는 10만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위축된 팬덤 시장의 유동성이 ‘랜선 덕질’로 디지털 전환된 것이다.

◇‘지지’를 위해 펀딩하다=팬심이 모이는 곳은 아티스트뿐만이 아니다. 사회·정치적인 연대가 필요한 곳에도 펀딩의 힘은 닿아 있다.

단순히 자금을 모으는 수단이었던 크라우드 펀딩의 의미가 바뀌고 있다. 같은 가치관을 가진 소비자들이 온라인을 통해 의견을 한 곳에 모으고 결과물을 함께 창출하며, 코로나19로 위축된 다양한 생산활동을 돕는다.<이미지=이미지투데이>

김의성·주진우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나의 촛불’은 진보와 보수의 인터뷰이들과 2016년 촛불 광장의 비화를 돌아보는 작품으로,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목표치 금액인 500만원의 631% 수익을 달성했다. 이들은 펀딩액 전액을 영화의 본편 후반 작업과 개봉 준비 비용으로 사용할 것이라 밝힌 바 있다.

작년 12월에 개봉한 노동운동가 전태일의 삶을 다룬 애니메이션 영화 ‘태일이’ 또한 제작단계부터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1만명 넘는 시민들로부터 2억원 가까운 모금을 달성했다. 시민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지지가 필요한 곳에 펀딩해, 보이지 않지만 강력한 연대를 보여주고 있다.

◇‘시식’을 위해 펀딩하다=식품업계에서도 크라우드 펀딩이 인기다. 코로나19로 동네마트의 시식 코너는 사라졌으나, 업체들은 신제품 또는 아직 시장에 내놓지 않은 상품을 펀딩으로 먼저 공개해 소비자에게 시식 경험을 제공한다.

삼양식품은 불닭 떡볶이와 피자볼, 핫도그 등을 와디즈 펀딩을 통해 선보였는데, 펀딩을 시작한 지 한 시간여 만에 1000만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고 한다. 농심 역시 미래형 식재료 ‘심플레이트’를 두 차례의 펀딩으로 공개해 1억원 넘는 매출을 올렸고, 지난해 말 이 제품을 정식으로 내놨다.

식품업체가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얻는 것은 신제품의 시장성 검증이다. 제품을 오프라인에 내놓기 전에 소비자 의견을 온라인으로 충분히 수렴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마케팅 효과도 누린다. 소비자들은 미리 기업의 제품을 시식하고 피드백을 남김으로써, 자신의 의견이 상품에 반영되는 경험을 한다. 코로나19로 외식이 어려워진 터라, 온라인 배달이 가능한 밀키트 상품들이 인기가 많아진 것도 식품업체 펀딩 성공요인이다.

◇거리는 멀어도 마음은 가까이=단순히 자금을 모으는 수단이었던 온라인 크라우드 펀딩은 비대면 시대에 더욱 더 큰 의미를 지닌다. 

같은 가치관을 가진 소비자들이 직접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온라인을 통해 의견을 한 곳에 모으고 결과물을 함께 창출한다. 또한 기업, 창작자 등 다양한 분야의 생산자들이 코로나19로 위축된 생산활동을 지속할 수 있게 돕는다.

수익이 될 것 같은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것이 크라우드 펀딩의 기본원리라고 하지만, 그 속에서 시민들의 연대가 돋보이는 것은, 물리적 거리두기를 하는 시민들이 실상 마음만큼은 가까이하고자 하는 노력 때문이 아닐까. 중기이코노미 강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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