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승용 박사(중국 문학, 한국외대 중국연구소 연구원)

누군가로부터 어떤 사람의 자질이나 어떤 일의 정황에 대해 물음을 받게 되면, 공자(孔子)는 그 사람은 안된다거나 그것은 좋지 않다고 직설적으로 대답하지 않고 “나는 모른다(吾不知)”라고 말하는 장면이 논어에도 종종 나온다.

오늘날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이 무책임하다거나 자기 주관이 뚜렷하지 않은 태도라고 비난받기도 하지만, 아마도 공자의 시대는 나라가 어지러워서 전쟁이 자주 일어나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이 흔하게 벌어지던 때이기 때문에 사람을 잘못 추천하거나 일의 정황을 조금이라도 잘못 판단할 경우 때로는 자신이 심각하게 책임을 져야 하는 부담을 피하기 위해서 ‘잘 모른다’는 식의 말하기 요령이 생긴 것이 아니었나 싶다.

우리나라 정치인들 역시 자신에게 불리하거나 책임져야 할 일이 있을 때 ‘모른다’거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는 식으로 자신의 책임을 모면하는 경우를 흔히 본다. 종종 사회에서 큰 관심을 끄는 사건이 터지거나, 국회에서 인사청문회가 열리면, 정치권 인사들이 증언대에 나와 고개를 조아리고, 국회의원들의 날 선 질문에 쭈뼛거리며 아무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모른다는 해명으로 일관하며 자신의 잘못을 피해 나가곤 한다.

중(中)자는 본래 울타리 안에 꽂힌 깃대의 깃발이 나부끼는 모양을 그린 것인데, 명사로는 ‘가운데’라는 뜻이고 동사로는 ‘적중(的中)’처럼 딱 들어맞는다는 뜻으로 활용돼 쓰인다.<자료제공=문승용 박사, 출처=漢字演變五百例 참조>

이것은 우리 사회에 소셜 네트워크가 잘 갖춰져 있어서 유명 인사들의 웬만한 행적이나 말실수는 단 몇 번의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괜히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거나 모른다는 식으로 발뺌하다가는 오히려 이것이 화가 되어 나중에 더 큰 곤욕을 치를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공자는 논어 학이(學而)편에서 군자의 자질을 열거하면서 “잘못을 하면 고치기를 두려워하지 마라(過則勿憚改)”라고 했다. 세상 사람들 누구라도 털끝만치 작은 허물도 없는 사람은 없기 마련이니 보통 사람이라면 흔히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는 점을 공자도 인정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때마다 후보자들의 궁색한 사과를 들어줘야 하는 유권자의 마음이 무겁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공자가 위령공(衛靈公)편에서 “잘못을 저지르고 고치려 하지 않는 것을 허물이라고 할 수 있다(過而不改, 是謂過矣)”라고 말한 것이나, 공자의 제자인 자하(子夏)가 자장(子張)편에서 “소인들은 잘못을 저지르고는 반드시 거짓말로 꾸며댄다(小人之過也必文)”라고 말한 것은 자신이 저지른 허물을 감추려고 한다거나 거짓말을 해 임시로 묻어버리려다가는 오히려 나중에 더 큰 곤경에 빠지곤 한다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중용(中庸)은 유가사상의 주요 도덕론으로서 ‘중(中)’은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이 도리에 맞는다는 의미이며, ‘용(庸)’은 떳떳하며 변함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자료=국립중앙박물관>

우리 속담에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 역시 재능이 너무 뛰어나거나 얌전히 있지 못하고 여기저기 나대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미움을 받기 쉬우니 가운데 얌전히 있는 것이 살아가는 요령이라는 것인데, 이런 식의 말은 모두 어떤 기준에서 지나치는 것을 부정적으로 여기는 데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자의 유가(儒家)에서 중용(中庸)의 도리를 지켜야 한다고 한 것이나, 노자(老子) 역시 도덕경 5장에서 “중도를 지키는 것만 못하다(不如守中)”라고 말한 것 역시 무슨 일이든 차고 넘치는 것을 특히 경계하라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중용의 의미를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그저 가운데 자리 잡고 있으면서 양쪽의 눈치만 살피는 것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중용에서 중(中)자는 본래 울타리 안에 꽂힌 깃대의 깃발이 나부끼는 모양을 그린 것인데, 명사로는 ‘가운데’라는 뜻이고 동사로는 딱 들어맞는다는 뜻으로 활용돼 쓰이는 것처럼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이 도리에 맞다는 것이며, 용(庸)자는 떳떳하며 변함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이른바 중도 표의 향방이 선거의 판도를 가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아무쪼록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이 도리에 맞는 떳떳한 선거가 치러지기를 기대한다. (중기이코노미 객원=한국외대 중국연구소 문승용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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