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모더니즘의 개척자, 재료와 물성에 대한 실험정신을 대표하는 하종현 작가의 전시가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 전관에서 3월 13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는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작가의 세 번째 개인전으로 지금까지의 전시중 가장 큰 규모다.

하종현 작가는 1935년 경남 산청에서 출생했으며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홍익대 미술대학 학장, 서울시립미술관 관장을 역임했다. 밀라노 무디마 현대미술재단, 경남도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의 대규모 회고전을 비롯해 뉴욕·런던·파리 등 전세계 갤러리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선보이며 작품세계를 인정받아왔다. 

K1, K2, K3 전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회화란 무엇인가’를 화두로 평생 유화를 다뤄온 작가의 색채에 대한 실험과 물성 탐구의 결과물을 조망한다. 

전시에서는 기존의 ‘접합(Conjunction)’ 연작과 여기에서 비롯된 다채색의 ‘접합’, 그 이후 새롭게 발전돼온 ‘이후 접합(Post-Conjunction) 연작 등을 통해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진화, 확장되고 있는 작가의 작업세계를 보여준다. 

하종현 작가를 대표하는 ‘접합’ 작업은 1970년대부터 수십 년간 작가의 대표 연작으로 이어져 왔다. 마포 뒷면에 물감을 바르고 천의 앞면으로 물감을 밀어 넣는 ‘배압법(押背法)’을 통해 독창적인 기법을 선보였다. 전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게 된 계기가 된 이러한 작업방식은 사실 하종현 작가가 젊은 시절 캔버스와 같은 미술재료를 사기가 어려워 스스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방법을 찾다 깨닫게 된 방식이다. 

올이 굵어 성긴 마포에 작업을 하기 위해 뒷면에 물감을 발랐고 앞으로 올 사이로 밀려나온 물감에 색을 더하고 입혀 작가 스스로가 만든 새로운 캔버스에 그림을 그렸다. 이러한 노동집약적인 작업에 더해진 색에 대한 탐구는 새로운 ‘접합’ 시리즈로 발전했다. 

초기의 작업에선 오랜 세월을 견딘 기왓장이나 억새풀 등 자연적이면서도 한국적인 색상이 주로 사용됐고, 다채색의 작업을 시도하면서 일상적인 밝은 색상을 사용, 현대회화의 느낌이 강조된 작품을 선보였다. 색채에 동시대적인 고민이 반영된 이러한 작업 이후에 작가는 배압법에 새로운 물질을 더한 작업을 시도, 이후 접합의 작업에 들어섰다.

나무 조각을 이용한 ‘이후 접합’의 작업에서 작가는 기존의 화면을 대하는 태도와 방식 자체를 재해석, 새롭게 탐구하기 시작했다. 작업은 나무 합판을 얇은 직선 형태로 잘라 먹이나 물감을 칠한 캔버스 천으로 감싸고 이 나무조각들을 화면에 붙이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으며, 나무조각을 붙이고 나무 조각 아래나 옆쪽에 물감을 짠 후 또 다른 조각을 붙여 넣음으로써 밀려나온 물감의 덩어리들은 또 다른 느낌으로 작가의 작품을 완성시키는 요소가 됐다. 

물감의 덩어리들은 유화물감으로 덧칠되거나 스크래치돼 역동적이면서도 리듬감있게 표현된다. 물감의 물성을 살릴뿐 아니라 나무조각의 활용으로 조각적 요소를 가미해 또 다른 화면을 구성한 이러한 작업 방식은 작가의 색과 회화의 기법에 대한 고민의 흔적을 보여준다. 

마포라는 재료의 사용과 배압법이라는 자신만의 작업 방식을 통해 기존에 없던 전혀 새로운 기법을 창조해내고 ‘접합’의 범위를 확장시킨 작가의 회화에 대한 연구는 아흔의 나이에도 이어지고 있다. 중기이코노미 최유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