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많은 기업들을 대상으로 주주들이 공동행동을 예고하고 나섰다. 이중 HDC현대산업개발의 사례는 전통적인 주주행동과 사뭇 다른 점이 있어 눈길을 끈다. 주주들이 회사측에 안전경영을 촉구하며 행동에 나설 것을 예고한 것이다. ESG시대가 도래하면서 많은 기업들이 경험할 주주행동의 미래를 엿볼 기회가 아닐까 싶다. 

정몽규 회장이 HDC현산의 회장직에서 물러나기로 했지만, 그 외 실질적인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주주행동의 큰 원인으로 꼽힌다. 참여연대는 소액주주를 모집해 HDC현산의 3월 주총에 참석하고, 산업안전 및 건설품질 관리 전문 이사 선임과 안전보건이사회 설치 등을 요구하기로 했다. 또 문제 이사들에 대한 연임 반대 등 안건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별개로 경제개혁연대는 네덜란드 연금 투자회사 APG의 위임을 받아 안전경영 등의 내용을 담은 정관변경안을 주주제안하기도 했다.  

언뜻보면 기존의 주주제안들, 배당을 늘리라거나 회사의 분할·상장에 반대하는 등의 요구와는 다소 관심사가 달라보인다. 다른 기업들의 주총에서도 이런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 해외투자 시 환경을 고려하라거나 현지에서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요구가 주총에서 제기되기도 한다. ESG 시대가 개막하면서 변화한 세태다. 이런 주주제안이 날이 갈수록 더 확대될 것이란 짐작이 들기도 한다. 

이처럼 차이점을 부각시켜 볼 수도 있지만, 반대로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기업가치를 지키기 위한 주주들의 행동이란 점은 ESG 시대 이전과 이후를 비교해봐도 큰 차이가 없다. 

ESG라는 용어가 없던 시절에도 주총에서 횡령 대주주에 대한 이사선임 반대 투표는 늘 있어왔다. 한국 대기업의 약점으로 지배구조(G)를 꼽는 이유기도 했다. 2019년 3월 주총에서 한진그룹 총수의 이사선임 안건이 부결된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컸다. 배임·횡령 혐의가 가장 중요했지만, 땅콩회항과 물컵갑질 등의 사건을 통해 사주일가의 전횡이 한진그룹 전반의 기업가치에 악영향을 미친 사실도 배경에서 빼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자업자득이라는게 시장의 반응이었다. 

HDC현산에게도 크게 다르지 않은 시선이 시장에서 형성되고 있다. 지난해 6월 철거 과정에서 시민들의 숨지거나 다친데 이어, 올해 1월에는 화정 아이파크 신축현장에서 16개층의 내부 구조물과 외벽이 한꺼번에 무너져 6명이 숨졌다. 지난해 철거 과정 참사에 대한 행정제재 절차가 이제 막 시작된 와중이며, 올해 발생한 사고에 대한 제재가 중복으로 이뤄지면 건설업 영업정지 처분이 1년 8개월까지 갈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 지경이다. 주주들이 행동에 나서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보일 지경이다. 

HDC현산은 당면한 주주행동에 대해 누구의 탓도 할 수 없을 일이다. 안전경영의 능력과 의지, 시스템을 일대 쇄신하지 않는 이상 시장의 신뢰를 회복할 수도 없다. 오직 뼈를 깎는 쇄신이 필요할 뿐이다. 다른 모든 기업들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ESG 시대 변화한 경영의 모습을 올해 3월 주총에서 내보일 수 있느냐, 아니면 시기를 놓쳐 먼길을 돌아가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중기이코노미 이창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