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2호선 구로디지털단지역을 나와서 조금 걷다보면, IT업체들이 밀집한 마천루가 등장한다. 이곳은 과거 수출산업의 요충지였던 구로공단으로 여공들의 피와 땀이 어려 있는 곳이다. 지금은 첨단 IT산업의 메카인 G밸리로 거듭났다. 이곳을 더듬어 볼수 있는 ‘G밸리산업박물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산업박물관으로도 의미가 크다. 그곳엔 ‘빛과 그림자’가 있었다.

‘G밸리산업박물관’에는 금성사 라디오, 대한전선 텔레비전, 다이얼 전화기 등 5060세대에게 익숙한 G밸리의 산업유산이 전시돼 있다.   ©중기이코노미

◇구로공단 발전과정 ‘노동의 역사’=G밸리산업박물관에 전시된 사진들을 보며, 사실 구로공단의 역사와 산업유물들보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카메라에 포착된 구로공단 노동자들의 모습이다. 1980년대 카세트 라디오로 가수 이선희의 노래 ‘J에게’가 유행했고, 구로공단 금성사 공장에서는 이런 카세트 라디오가 여공들의 손으로 대량생산됐다. “대학에 들어가고 싶었지…”라는 애절한 한 중년여성의 목소리에 돌아보니, 전시실 한쪽 모니터 화면에서 과거 구로공단에서 일한 노동자들의 인터뷰 영상이 플레이되고 있다. 구로공단의 역사는 노동자들의 역사로 점철된다.

“노동자들이 자꾸 조니까, 타이밍이라는 각성제가 있는데 그걸 먹이는 거예요. 타이밍을 작업장 안에 수북하게 쌓아놓고 비타민인 양 먹었어요. 나중엔 타이밍 중독이 돼서 몸을 덜덜 떨면서 다니고 그랬어요.”

지방에서 서울로 일자리를 찾아서 수많은 청춘들이 구로공단 일대로 모여들었다. 공장 한편에 마련된 기숙사, 벌집이나 닭장으로 불리던 구로공단 인근 주택지의 좁은 방을 채워갔다. 1980년대까지 우리나라 전기전자 업종은 노동력을 활용한 조립공정이 주를 이뤘다. 구로공단은 압도적으로 저렴한 인건비로 노동집약형 전자산업이 발전했다. 경제는 최대 호황기를 맞이하고 거실에 장만한 텔레비전과 카세트 라디오에서 조용필의 노래가 흐르는 동안 구로공단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소자를 붙이는 손은 쉴 새 없고, 납땜 연기가 가실 날이 없었다.

◇수출 ‘구로공단’에서 ‘G밸리’까지=수출산업의 요충지였던 구로공단에 지금은 ‘G밸리’가 들어섰다. 1964년부터 옛 구로공단 일대에 생활·공업용수를 공급했던 구로정수장 부지에 국내 최초의 산업박물관인 서울시립 ‘G밸리산업박물관(MUSEUM G)’도 생겼다. 상대적으로 문화시설이 부족한 서남권에 생긴 첫 번째 공공박물관이다. 규모는 크지 않은 편이나 구로공단의 산업역사를 기념하고, 산업유산 보존을 위해 의미가 큰 곳이다.

1960년대 손으로 직접 그려 제작한 우리나라 산업지도.   ©중기이코노미

한국수출산업공업단지 목표는 수출이었기 때문에 들어올 수 있는 기업을 선정하는 기준 역시 수출이었다. 1960년대 수출 가능성이 높았던 경공업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이 우선적으로 입주했다. 1970년대에는 전체 국가 수출액의 10%를 차지할 정도로 번성했다. 한국수출산업공업단지는 수도권이라는 유리한 입지를 바탕으로 정부의 금융지원과 세제지원 등 각종 혜택을 받으며 성장해나갔다.

이곳에 모인 풍부한 노동력은 가발, 섬유, 봉제, 완구 등 경공업을 중심으로 수출 전진기지로 자리잡았다. 2000년대에 구로공단은 IT·SW 산업 집약지로 성장하며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변모했고, G밸리라는 새로운 명칭을 얻는다.

◇구로공단의 역사 ‘빛과 그림자’=상설전시실에서는 ‘구로공단에서 G밸리로’를 주제로 상설전시를 한다. 총 4개 존(zone)에 걸쳐 1960년대 구로공단 조성 시기부터 21세기 G밸리까지, 과거와 현재의 서울 산업역사를 만나볼 수 있다. 1존에서는 제1회 한국무역박람회(1968년)를 재구성한 실감 영상으로 시작한다. 2존은 구로공단이 국내 최초 수출산업단지로 조성된 과정과 국내 수출산업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1960년대 손으로 그린 산업지도와 수출증진 홍보를 위해 만든 ‘수출행진곡’ 음반 등 다양한 유물이 전시돼 있다.

가장 볼 만한 공간은 ‘추억을 소환하는’ 3존이다. 상설전시실을 대표하는 핵심 공간이다. ‘한강의 기적’을 상징하는 100억불 수출 달성 시기로 우리나라 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금성사 라디오, 대한전선 텔레비전, 다이얼 전화기 등 5060세대에게 익숙한 G밸리의 산업유산이 전시돼 있다. 집집마다 있던 다이얼 유선 전화기는 손가락으로 숫자 구멍에 손을 넣어 번호를 하나씩 입력하던 추억이 회상된다.

구로공단이 G밸리로 발전하기까지, 그 눈부신 경제발전 뒤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었다는 것을 G밸리서울박물관에 오면 체감할 수가 있다. 구로공단에서 일하던 여공의 모습.   ©중기이코노미

구로공단이 G밸리로 발전하기까지, 그 눈부신 경제발전 뒤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었다는 것을 G밸리서울박물관에 오면 체감할 수가 있다. 박물관을 나서는데 “미싱 바늘이 박힐 때가 많았습니다. 피투성이 손가락을 미싱 기름에 푹 담급니다. 그러면 피가 어느 정도 빠지게 되고 다시 일을 하죠. 사람 걱정은 안하고 그냥 제품에 피가 묻으면 안 되니까 하는 치료법이었어요”라는 목소리가 맴돈다.

한편, G밸리서울박물관은 ‘도시해설사와 함께 걷는 G밸리 투어’ 코스를 운영한다. 최근에는 랜선 투어를 구로코스와 가리봉코스로 나눠 진행하고 있으니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눈 여겨보자. 구로코스는 구로공단역, BYC공장, 구로공단입구, 싸니전기, 한국산업단지공단, 새마을연수원, 수출의 여인상 등으로 구성된다. 가리봉코스의 경우 가리봉역, 구로공단 노동자 생활 체험관, 벌집촌, 가리봉시장, 나포리음악다방, 대우어패럴, 수출의 다리로 구성돼 있다. 초등학교 3~6학년 자녀가 있다면 ‘라떼할아버지의 일곱가지 물건 이야기’ 교육 프로그램도 신청해볼 만하다.

배현숙 서울시 신성장산업기획관은 “G밸리산업박물관은 전시·수집·연구의 전문성을 갖춘 강소박물관이자, G밸리 관련 학문을 쌓아 나가는 주제박물관으로 운영할 것”이라며, “서울 서남권의 산업과 시민 생활의 질을 높이는 문화적 감성에 기여하는 앵커 문화시설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시민 참여 접점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중기이코노미 정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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