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3월입니다. 과거 유럽에서는 얼어붙은 겨울의 눈이 녹는 3월에 그동안 미뤄두었던 전쟁을 하러 나섰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한 해를 살아갈 준비를 하고 슬슬 집 밖으로 나와 활동을 시작하는 3월에는 미술관도 새로운 전시를 오픈하며 활기를 찾습니다. 흥미로운 전시회 소식을 기대하며 전시 프로그램을 살펴보다가 최근에 가장 인상깊었던 이탈리아 전시회가 떠올라 소개해 볼까 합니다.

2014년 12월, 이탈리아 국가수호 성인의 날에 맞춰 우르비노라는 도시에서는 이탈리아인들을 흥분시키는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21세기가 되어서야 발견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알려지지 않은 초상화 한 점을 위한 전시회입니다. 초상화의 명성에 있어서는 전세계 모든 작품을 눌러버린 ‘모나리자’가 이탈리아에 없다는 사실에 허전함이 많았던 이탈리아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초상화’가 전시된다는 사실에 방송국 취재 열기가 뜨거웠습니다.

공식적으로 세상에 처음 공개되는 르네상스 천재 화가의 초상화는 ‘아름다운 공주(La bella principessa)’ 입니다. 이 작품은 지난 몇 백년 동안 레오나르도 다빈치 작품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다빈치 애호가의 눈에 띄어 전문가들의 과학적 분석을 통해 그의 작품이라는 것이 최근에 밝혀진 후, 단숨에 천문학적인 몸값을 자랑하며 귀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초상화입니다. 2014년 12월6일 모나리자의 배경이 되었던 도시라는 의미로 선정된 우르비노에서 작품이 공개됐습니다.

아름다운 공주(La bella principessa).<사진=이다 미술역사가>

겨울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아침,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또다른 연인을 만나러 우르비노의 듀칼레 궁전으로 향했습니다. 우르비노는 이탈리아 중부에 있는 르네상스 미술의 전성기를 간직한 도시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특별전은 우르비노의 듀칼레궁 2층의 살롱에서 열렸는데 커다란 살롱안에는 오직 하나의 작품, ‘아름다운 공주’만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한권의 책 만한 작은 크기의 이 초상화는 커다란 전시공간 한 가운데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죠. 천재 화가가 시간이 멈추는 마법을 걸어 그녀의 젊음을 그림에 묶어둔 것처럼 500년 전의 아름다움은 여전히 시들지 않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 초상화는 1495년 작품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밀라노 공작의 딸, 비앙카 스포르차를 그린 것입니다. 초상화의 주인공 비앙카 스포르차는 밀라노 공국의 영주 루도비코 일 모로의 딸입니다. 그녀는 1496년 1월 밀라노 군대 사령관이며 마르케지방 영주였던 갈레아조 산세베리노(Galeazzo Sanseverino)와 13살의 나이로 결혼하는데, 불행하게도 그해 겨울 죽습니다. 이 그림은 그녀의 결혼 선물로 주문한 것이었죠.

이 시기에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루도비코 일 모로 공작의 궁정화가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양피지 위에 잉크와 파스텔로 그린 것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중요한 그림에는 흔하게 사용하지 않던 재료들이어서 지난 500년 동안 창고에 갇힌 채 세상에서 잊혀졌습니다. 다빈치가 그린 진품이라는 것이 알려진 건 불과 전시 몇 년 전인 2009년으로 이 작품이 발견된 건 아주 우연한 계기였습니다.

1998년 1월 뉴욕의 크리스티 경매장에 ‘작자 미상의 아름다운 여인 초상화’라는 제목으로 1800년대의 독일풍 초상화가 소개됩니다. 영국에 사는 피렌체 사람 잔니노 마르키의 소유로 그는 크리스티에 감정을 의뢰했고, 이 정체불명의 초상화는 겨우 1만2000~1만5000달러로 경매가가 책정되었습니다. 뉴욕의 미술상 케이트 갠츠는 이 작품을 1만2850달러(한화 1900만원)에 구입하여 자기 갤러리에 전시했지만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무려 10년 가까이 뉴욕의 갤러리에서도 잊혀져 가던 이 작품은 2007년 갤러리를 둘러보던 캐나다 수집가 피터 실버만에게 2만1850달러(한화 약 2600만원)에 팔렸습니다. 피터 실버만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열성적인 팬으로 뉴욕의 갤러리에서 이 작품을 보고,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는 즉시 전문가들에게 정밀 감정을 의뢰합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저명한 권위자인 옥스퍼드대학 교수 마틴 캠프는 이메일을 받자마자 이 작품을 보기 위해 피터 실버만의 비밀금고가 있는 스위스로 단숨에 날아 갑니다. 그들의 연구 결과는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초상화가 전시된 우르비노의 듀칼레궁.<사진=이다 미술역사가>

500년 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파스텔로 그린 초상화라는 것, 레오나르도 다빈치 작품이 현대에 와서 발견되는 일은 매우 드물었기 때문에 미술학계에 엄청난 주목을 받았습니다. 2011년 이 작품은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에 의한 연대 측정과 여러가지 과학적인 촬영기법으로 분석되었고, 마틴 캠프 교수가 영국의 로얄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다른 스케치와 비교 분석한 결과, 색상의 아름다운 변조, 정확한 라인과 음영 등은 그의 왼손 스케치의 흔적이 맞다고 확인합니다. 수집가 피터 실버만의 안목이 빛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다빈치 진품이라는 것이 확인된 후, 순식간에 감정가가 치솟았고 당시 한화 1700억원 이상을 호가했습니다. 이 작은 초상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이라는 것이 확인된 후 가장 아연실색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오랜기간 동안 이 그림을 보관하고 있었던 원래의 소유자, 잔니노 마르키입니다. 

그는 원래 피렌체 사람으로 화가이자 복원사였습니다. 그는 이 그림을 피렌체 기술로 복원하여 보관하고 있었고, 1960년대 제노바로 이사하고 이후 영국으로 이주해 살았습니다. 그가 오랫동안 보관하고 있었던 이 그림을 뉴욕의 크리스티 경매시장에 내 놓았을 때, 감정사는 이 그림을 1800년대의 독일풍 초상화 정도로만 감정하고 가격도 상당히 낮게 책정하여 그는 의심없이 이 그림을 판매했습니다.

2007년 피터 실버만의 손에 들어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진품임을 조사하기 전까지 그렇게 누구의 주목도 받지 못한 이 그림이 진품으로 밝혀지고 1700억원을 호가하며 전 세계 최고의 그림 반열에 오르자, 화가 난 잔니노는 뉴욕 크리스티 경매시장을 법원에 고소하였습니다. 고소명은 감정가 과실에 의한 사기죄!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는 소송에서 집니다. 그가 이 사실을 알게 된 건 사기죄 공소시효가 지난 후였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은 이탈리아에서도 무척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아름다운 초상화 하나가 합법적으로 해외로 빠져나간 것입니다. 세기의 명작 소유주가 된 행운의 수집가 피터 실버만은 이탈리아인들을 위로하기 위해 세상에 처음 공개되는 전시회를 이탈리아에서 열었던 것입니다.

현재 스위스 비밀금고에 보관되어 있는 이 작품의 첫 전시회를 가게 된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커다란 전시장에 전시된 작은 초상화 한 점에서는 고상하지만 힘있는 스케치 흔적으로 다듬어진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남긴 아름답고 신비스런 여인들의 초상화 목록에는 또 한명의 연인 ‘아름다운 공주’가 더해졌습니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이다 미술역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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