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전시는 진혼곡이다. 공허한 욕망에 사로잡혀 영혼을 빼앗긴 것도 모른채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바치는 레퀴엠. 안창홍 작가는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의 욕망과 불안의 실체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작품을 줄곧 선보여왔다.

결핍을 채우고자 하는 욕망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미 채워진 욕망은 더 큰 욕망에 대한 집착을 부르면서 스스로 파멸의 길을 걷는다. 이렇게 집착에 빠진 인간들이 아무리 화려한 옷을 입는들 공허한 얼굴이 빛날 수 없는 건 어찌보면 더 자연스러운 인식이다.

작품 속 의상은 모두 화려하고 개성이 넘치지만, 사람의 형체가 없어 마치 유령의 옷을 보는 듯하다.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진 걸까? 작가는 왜 사람의 형체가 사라진 패션을 그린 걸까?

전시를 준비하면서 메모해 놓은 작가노트 속에는 힌트가 있다.

안창홍 작가가 전시된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사진제공=사비나미술관>

“아주 늦거나 아주 이른 시간 길을 가득 메우던 사람들이 다 빠져나간, 텅 빈, 인파로 채워지지 않은 도시의 거리는 공허하다. 마치 유령들의 거리처럼 사람들의 존재는 사라지고 화려하게 치장된 거적때기들만 길을 가득 메우고 있는 듯 한 착시현상에 빠져든다. 그렇다! 유령의 거리, 유령들의 패션쇼…. 적막감만 강물처럼 흐르는 텅 빈 도시. 이것이 유령의 도시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멸망의 벼랑 끝으로 내달려가는 문명의 폭주 열차를 멈춰 세울 방도는 없는 것일까? 아주 오래전부터 유령의 도시를 그릴 계획이었고, 유령패션 연작이 유령 그리기의 첫 시작이다. 허깨비이거나 유령이거나.”

‘유령패션’의 작품들은 작업과정이 독특하다. 인터넷에서 찾은 이미지 위에 터치 펜으로 사람의 형상은 지우고 옷만 남겨놓은 디지털 펜화 작업을 한다. 그리고 작업한 이미지를 보며 전신 크기의 캔버스 위에 다시 유화물감으로 작업을 하는 방식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가 새롭게 시도한 디지털 펜화 80여점과 유화 연작 20여점 그리고 평면 회화작품을 입체작품으로 표현한 설치작품들을 볼 수 있다.

안창홍의 삶은 권력과의 투쟁의 연속이었다. 어떤 제도나 틀에 얽매이지 않고 화가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며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해왔다. 작가는 “지금 역사는 기득권자의 기록이다. 민중들, 보통 사람들이 역사의 주체임에도 그늘에만 갇혀 있다. 그들 속에도 애환, 삶의 향기가 있다. 그들의 입장에서 역사를 보고자 한다”며 익명의 개인들, 약자들, 소시민들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활동을 해왔다.

2013년 한국 현대미술계의 권위있는 미술상 중 하나인 이중섭 미술상을 수상했고, 2009년 이인성 미술상, 2006년 부일미술대상을 수상했다. 1989년에는 프랑스 카뉴 국제회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기도 했다. 2021년에는 한국-에콰도르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한국을 대표로 키토의 과야사민미술관과 인류의 예배당에서 개인전을 갖기도 했다.

전시는 오는 5월29일까지 사비나미술관 기획전시실(서울시 은평구 진관1로 93)에서 열린다. 중기이코노미 김현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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