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 척하며 ‘따봉’이라고 외치던 델몬트의 TV 광고는 1989년 대한민국을 뒤집어놓으며 유행어의 최고봉에 올랐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광고는 가장 실패한 광고라는 오명을 받으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따봉’이라는 단어가 너무 강렬해 소비자들은 제품명을 기억하지 못했고, 결국 시장에서 경쟁사였던 ‘썬키스트 주스’의 매출만 올려줬기 때문이다.

만약 델몬트의 ‘따봉’ 광고가 지금 나왔다면 어땠을까. 각종 SNS에서 회자되며 소비자들끼리 정보를 공유하고, 서울과 부산 한복판에 오픈한 ‘따봉’ 팝업스토어에서 제품과 굿즈를 구입하려는 소비자들로 북새통을 이뤘을지 모른다.

이처럼 광고가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은 꽤 크다. 최근 광고·홍보계의 메인 타깃은 MZ세대다. 특히 오래전부터 시장에서 입지를 다져온 기업들이 광고를 통해 MZ세대를 잡음으로써 다시 ‘핫’하게 떠오르고 있다. MZ세대를 겨냥한 독특하면서 감각적인 마케팅으로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브랜드 이미지를 재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기업 평판에도 영향을 끼쳐 소비자의 꾸준한 유입 원천이 되기도 하고, 동종업계의 가격을 결정짓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기능보다 ‘느낌’이 더 중요한 시대=변화하는 광고·홍보의 물결 속에서 트렌드를 주름잡는 대표적인 회사가 시몬스다. 시몬스는 ‘침대 없는 침대 광고’ 전략으로 ‘힙’한 감성을 내세워 트렌드를 주도하는 브랜드의 대명사로 우뚝 올라섰다.

‘흔들림 없이 편안한 침대’가 모토인 시몬스의 광고에는 선명한 색채의 배경, 심플하고 감각적인 비주얼, 백색소음으로 이뤄진 소리가 전부다. 가령 샛노란 모래 위 파란 바닷가에 초록색 원피스를 입은 여성들이 한가롭게 발을 위아래로 움직이고 있다거나, 분홍색의 카펫과 대조되는 초록색 치마를 입은 여성들이 하이힐을 신은 채 공기를 반복적으로 주입하고 있는 모습 등이 광고의 전부다.

광고를 본 사람들은 “편안하다”, “멍 때리고 계속 보게 된다”라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지루하다거나 이상하다는 의견보다는 오히려 안정감이 느껴진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광고를 보며 소비자들은 ‘시몬스 침대는 이렇게 편안하구나’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갖게 된다.

시몬스의 광고는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서도 화제로 떠올라 2000만뷰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했다. 심지어 광고 속 구두를 어디서 구입할 수 있는지 문의하는 소비자도 있다. 단순한 침대 광고가 아니라 MZ세대의 소비욕구와 감성을 건드렸다는 얘기다.

최근 오픈한 ‘시몬스 그로서리 스토어 청담’도 젊고 창의적인 브랜드 이미지로 각인하는데 톡톡한 역할을 했다는 업계의 평가를 받고 있다. 이국적인 외관의 건물 안에는 굿즈를 판매하거나 부산의 유명 수제버거 브랜드인 ‘버거샵’을 파는 다양한 팝업 스토어들이 들어서 있고, 시몬스의 2022 브랜드 캠페인인 ‘오들리 새티스파잉 비디오(Oddly Satisfying Video)’ 디지털 아트 전시관에서는 특색 있는 영상들을 연이어 볼 수 있다. 현재 시몬스의 이러한 광고·홍보 전략은 시장에서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켜 2019년 매출 2000억원대를 넘어섰고, 2020년 2715억원, 지난해에는 3000억원대를 돌파한 것으로 알려졌다.

광고의 주인공이 브랜드나 제품이 아니라 광고 자체가 하나의 문화 콘텐츠와 같은 역할을 할 때 소비자들은 빠져든다. 이런 광고는 소비자들로 하여금 ‘재미있다’, ‘공유해 볼까?’라는 반응을 이끌어냄으로써 유행이 되고, 소비자 스스로 해당 브랜드를 찾게끔 한다. <이미지=이미지투데이>

‘디지털 마케팅’의 일환으로 제작한 영상이 입소문을 타고 인기 영상으로 등극하며 자연스레 광고효과를 본 케이스도 있다. 최근 MZ세대가 공감하는 소재의 영상들로 시리즈를 제작하는 웹드라마 픽고(PICKGO)에는 배우들이 자연스럽게 KT의 신규 요금제를 이야기하거나, 특정 맥주를 노출시키며 스토리텔링을 한다. 반응은 긍정적이다. 이야기 흐름과 관련 없이 생뚱맞게 노출되는 TV 광고 속 PPL(간접광고)과 달리, 에피소드 안에 브랜드가 자연스레 녹아들어 이질감이 적다는 반응이다.

웹 예능 콘텐츠도 증가 추세다. ‘만년 2위’의 아이콘인 홍진호가 출연하는 ‘홍보 22팀’은 특정 브랜드를 2위로 만들기 위한 홍보팀의 고군분투를 코믹하게 풀어냈다. 이 웹 예능은 시즌2까지 방영되며 인기를 끌었는데, 특히 해당 브랜드로부터 협찬을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브랜드의 장점뿐만 아니라 단점까지도 명확하게 노출해 소비자들의 공감을 샀다는 평가다.

브랜드의 노후화를 탈피하기 위한 방법으로도 웹 예능은 활용된다. 출시 30년이 넘은 숙취음료 ‘컨디션’은 MZ세대를 잡기 위해 유튜브에 ‘환생 연애’라는 6분의 짧은 숏폼 드라마를 선보였다. 연애 고민이 많은 MZ세대에게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켰고, 판타지와 로맨틱 스토리에 빠진 소비자들의 입소문을 타고 370만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다.

◇광고의 틀을 깬 ‘실체 없는 광고’ 대세=요즘 MZ세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말 중 ‘스며듬’이라는 단어가 있다.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자연스레 자꾸 배어들고, 마음 깊이 신경이 쓰인다는 뜻이다.

최근의 광고가 추구하는 방향도 바로 이 ‘스며듬’에 있다. 본래 광고란 ‘세상에 널리 알리거나, 상품에 대한 정보를 매체를 통해 알리는 것’이 목적이지만, 소위 요즘 광고시장에서 ‘먹히기’ 위해서는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전통적인 광고의 개념을 뒤집어야 한다는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는 김혜성씨는 그의 저서 ‘광고의 이해’에서 ATL(Above the Line, 비대인적 커뮤니케이션 활동)은 기업과 브랜드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BTL(Below the Line, 대면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소비자로 하여금 메시지를 직접 느끼고 체험하게 만드는 ‘감성적·행동적’ 접점이 중요하다고 했다.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를 광고를 통해 어필하고, 소비자와 접점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그 가치를 ‘느끼고, 체험’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우리 브랜드의 강점은 이것입니다’라는 직설화법이 아닌, 브랜드가 이미지로 읽힐 때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것이다. 즉, 광고의 주인공이 브랜드나 제품이 아니라 광고 자체가 하나의 문화 콘텐츠와 같은 역할을 할 때 소비자들은 빠져든다. 이런 광고는 소비자들로 하여금 ‘재미있다’, ‘공유해 볼까?’라는 반응을 이끌어냄으로써 유행이 되고, 소비자 스스로 해당 브랜드를 찾게끔 한다.

전문가들은 요즘처럼 제품의 기능이 상향 평준화된 시대에는 기능보다는 ‘이미지’에 초점을 맞춰, 소비자들이 스스로 브랜드에 접근해 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것이 소비자의 선택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특히 트렌드를 이끄는 역할을 하는 MZ세대를 잡기 위해서는 독특한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기 좋아하는 MZ세대의 특성을 이해하고, 이를 마케팅에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중기이코노미 김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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