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등 공공장소에 개인 물건을 두고 자리를 비워도 분실되지 않는다. 기차나 버스, 지하철 등의 대중교통 무인 검표시스템도 탈없이 운영된다. 대한민국의 안전한 치안상황과 사회적 신뢰를 칭찬하며 외국에서도 놀라움과 경의를 표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사회의 치안이 자랑할 만한 수준인지 갸우뚱할 순 있지만, 우리 사회에 잠재된 신뢰가 어느 때보다 성숙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월드컵이 한창이던 2002년, 지금으로부터 20년 전만 하더라도 기차나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우선 표를 사야 했으며, 검수자가 어김없이 그것을 확인했다. 무임승차를 노리는 얌체족이 많았던 시절이었고, 지금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이제는 정형화된 표는 사실상 사라졌으며, 굳이 사람이 검사하지도 않는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기계화·자동화 등으로 인한 급격한 사회적 변화가 일자리 감소 등 사회적 문제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옳다. 시대에 맞춘 사회 변화로 직장을 잃는 사람이 왜 없겠나. 그렇다고 변화를 거부하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달리 생각해볼 수 있다. 우리 사회 신뢰도가 그만큼 상승하기 위해서는 시민의식과 함께 기술적인 성장도 뒷받침해줘야 한다. 대한민국은 이미 IT나 전자기기 분야에서 세계 수준이다. 신뢰와 기술발전은 톱니바퀴와 같다. 둘 중 한쪽이 제 역할을 못 하면 그만큼 발전이 느리거나 멈추게 된다. 기술발전은 또 다른 분야의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니 일자리 총량 차원에서는 오히려 긍정적 지표를 보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사회적 신뢰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성장했고, 그만큼 성숙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가 된다.

사실 기술발전에 따른 변화말고도 신뢰를 쌓아가는 데는 아주 긴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것이 와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는 점이다. 갈등 조장 하나면 충분할 수 있다. 공동체 속에서 ‘다름’을 ‘틀림’으로 만들면 되는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가 그렇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특히 그 국민을 편 가르고 사회적 신뢰를 파괴하는 것이 정치권이라는 사실은 정치에 대한 혐오를 넘어 분노를 일으킨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의 갈등 조장이 더 심해지고 있다. 사회적 신뢰를 깨뜨리는 나쁜 선거방식이다. 승리해야 한다는 절박함은 이해하지만 조건 없는 편 가르기 전술은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사회적 신뢰는 그저 일상에서 느끼는 약간의 만족감 정도가 아니다. 신뢰는 우리 생활 많은 부분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다. 경제는 물론이고 사회, 문화 나아가 정치까지 우리 사회가 매우 예민하게 여기는 교육과 부동산까지도 영향을 준다.

신뢰가 무너지면 피해 보는 자와 이득 보는 자가 누군지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사회적 약자는 피해를, 권력을 가진 강자는 이득을 본다. 시간이 갈수록 약자는 더 빼앗기고, 강자는 더 가지는 것도 공식이다. 합법적으로 말이다. 인간사에서도 법으로 약육강식은 막을 도리가 없다는 의미다. 사회적 신뢰는 우리가 하나를 더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사회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만든 방역시스템일지 모른다. 사회적 신뢰를 지켜야 하는 이유가 더 분명해졌다. 중기이코노미 채민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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