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것’과 ‘기억’은 작가들이 만지작거리기 딱 좋은 작품 주제다. 누군가로부터 잊혀지고 사라진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억하기 위해 기록을 한다. 개인의 기억이든 사회적 기억이든.

하지만 숙제는 남는다. 무엇을 기억하고 남겨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기획한 ‘나너의 기억’전은 무엇을 기억하고 남겨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13명 작가들의 일종의 답변서다. 전시는 오는 8월7일까지 열린다.

나너의 기억, 전시 전경<사진=홍철기,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전시 구성은 총 3부로 ‘나너의 기억’, ‘지금, 여기’, ‘그때, 그곳’이다.

1부 ‘나너의 기억’에서는 인간의 오감과 개인적 경험이 기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답이다.

팝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은 그의 친구 존 지오르노가 자는 모습을 5시간21분 동안 찍은 ‘수면’을 통해 기억이 형성되는 과정을 은유하고, 양정욱 작가는 경비원이 조는 모습을 보고 그의 고단한 삶과 꿈속 이야기를 상상하며 제작한 키네틱 조각 ‘피곤은 언제나 꿈과 함께’를, 임윤경 작가는 고용관계든 모녀관계든 같은 사건을 서로 다르게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영상작품 ‘Q&A’로 표현했다. 

벨기에서 태어나 캐나다에서 활동하는 허만 콜겐은 우리가 정보를 인식하는 과정에서 실재하는 현실과 기억 속에 구현된 장면 간의 괴리에 대해 주목하는 영상작품 ‘망막’(2018)을 3채널 비디오로 선보인다.

2부 ‘지금, 여기’에서는 과거의 정보들이 현재와 미래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작품들로 구성했다.

전시포스터

레바논에서 활동하는 아크람 자타리는 평범하고 평화로운 이슬람 가정 풍경을 보여 줌으로써 이슬람 문화에 대해 부정적으로 일반화된 시각을 재고해볼 것을 제안하는 단채널 영상 ‘스크립트’를, 칠레 출신의 세실리아 비쿠냐는 베트남 미라이 학살에 대한 기억과 아픔에 대한 영상 ‘나의 베트남 이야기’를, 파리에서 태어나 미국과 독일에서 활동 중인 시프리앙 가이야르는 건설될 당시 ‘대중을 위한 베르사유’라고 칭송받았던 파리 신도시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폐허로 변해가는 영상 ‘호수 아치’를 통해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인간의 미래에 대해 질문한다.

3부 ‘그때, 그곳’에서는 미래 세대가 기억하는 현재의 우리 모습은 어떨지에 대한 작가들의 상상력을 볼 수 있다.

알바니아 출신으로 독일 베를린에서 활동 중인 안리 살라는 보스니아가 유고슬라비아로부터 독립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라예보 포위전(1992~1995) 당시 도시의 상황을 연출한 영상 작업 ‘붉은색 없는 1395일’을, 송주원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 부상자를 살리기 위한 사투가 벌어졌던 국군광주병원 옛터에서 촬영한 댄스필름 ‘뾰루지.물집.사마귀.점’ 영상작품을 출품했다. 

뮌은 동시대 이슈를 45개의 장면으로 구성한 리서치 기반의 설치작품 ‘오디토리움(Template A-Z)’을, 박혜수는 구로공단을 비롯한 공업단지의 노동자 21여명의 첫사랑에 대한 기억을 인터뷰한 영상과 그 첫사랑의 이미지를 구현한 회화작품 ‘기쁜 우리 젊은 날’을, 홍순명은 바다라는 추상적인 풍경에 각자의 기억을 대입할 것을 기대하는 회화 ‘비스듬한 기억–역설과 연대’를 선보인다. 중기이코노미 김현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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