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의 생물들 중 어느 한 종을 잃는 것은 비행기 날개에 달린 나사못을 빼는 것과 같다.” 독일의 화학자 파울 에를리히가 남긴 말이다.

우리는 지구라는 행성에서 수많은 생명체들과 공존하며 살아간다. 특히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은 도시를 건설하고 더 큰 공동체를 형성하며 공생해 나간다. 하지만 그 어떠한 공동체도 완전무결할 순 없기에, 시대가 변화하며 사회가 발전해도 서로 다른 현실의 문제에 부딪히며 현재를 버텨내곤 한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한 번쯤 고민하고 부딪혀봤을 현실의 경험과 본능적 감정을 동물을 통해 은유하고 표현하는 작가가 있다. 동물을 그리며 현대사회를 이야기하는 작가 민지를 만나보자.

Q. 작품세계를 소개해달라.

주로 현대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 항상 동물이 빠지지 않죠. 요즘 동물을 키우는 가정을 쉽게 접할 수 있어요. 길에서 동물들을 자주 마주치기도 하고요. 자신이 키우는 반려동물을 진짜 가족처럼 여기거나, 야생동물들을 불쌍히 여겨 돌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야생동물을 돌보는 일이 갈등을 낳기도 하지만, 저는 이런 갈등은 물론 사람이 동물을 보며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과 행동에 주목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종이 위에 아크릴, 2020.

초기에는 주로 애완동물로서 고양이에게 느끼는 사랑, 탐욕, 끌림 같은 감정들을 작품의 주제로 사용했습니다. 더 나아가 야생동물로서 고양이에게 느끼는 감정들인 박애, 동정, 슬픔, 멸시, 분노의 감정들이 현대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나열한 감정들도 사람이나 환경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 있으니까요. 그래도 각자의 삶에서 동물은 중요한 감정들과 연결되어 있다 생각합니다. 그 감정들에 집중하여 제 작품과 마주해주셨으면 합니다.

Q. 고양이와 동물을 주제로 다루게 된 계기가 있는가?

부모님이 맞벌이 부부이시다 보니 어렸을 때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 시절에는 고양이보다 개를 더 좋아했는데요. 어머니가 개는 돌보기 어렵다고 고양이를 키우라고 하셔서 그때부터 집에 고양이와 단둘이 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외로운 시간 속에서 주로 고양이를 그리며 보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제 이야기를 풀어나갈 때 고양이는 빠질 수 없는 존재가 됐고요. 집착하다시피 고양이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려고 했고, 최근까지 고집해 왔습니다. 하지만 현대사회의 다양한 메시지를 담기에 고양이가 적합하지 않은 순간이 많더라고요. 한 작품에서 저는 고양이한테 집은 당연히 종이상자라고 생각하고 부동산 문제에 대해 이야기했는데요. 관객분들은 집과 종이상자를 연결시키지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최근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더 설득력있게 다가가기 위해 다양한 동물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Q. 자신의 작품세계가 잘 담긴 대표작을 추천해준다면?

최근에 작업한 ‘공정’이라는 작품을 추천드립니다. 저를 고양이에서 한 발자국 더 나가게 해준 의미 있는 작품이죠. 세상에 완벽한 공정함이란 존재할까요? 살다 보면 세상이 공정하다고 느끼기 어려운 순간이 많습니다. 자연의 섭리를 무시한 채, 사람의 기준으로 동물을 평화롭게 나열한 모습을 과연 공정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이 작품을 통해 질문을 던집니다.

이 작품 속의 동물들은 먹이사슬도 무시하고 사는 환경도 무시한 채 모두 한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사람의 눈에는 평화로워 보일 수 있겠죠. 하지만 세상에 걷지 못하는 동물들도 있고, 걷는다 해도 속도가 다를 것이며, 걷는 순서가 존재한다는 것도 결국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인간 세상 또한 그렇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걷기 위해 속도를 낮출 수 있고, 그 사람이 속도를 높일 수 있게 도울 수 있습니다. 저는 완벽한 공정은 존재하지 않지만 다양한 모습으로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공정에 대한 고민의 순간과 과정인 이 작품을 통해 공존을 향해 걸어가보자고 이야기합니다.

공정, 캔버스 위에 유화, 2022.

Q. 본인의 작품세계 형성에 영향을 준(혹은 좋아하는) 작가나 작품이 있다면?

저는 미술보다 다른 분야의 작품에서 영향을 많이 받아요. 요새는 주로 책에서 많은 영감을 얻어요. 고전소설, 현대소설, 에세이, 과학, 역사, 경제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끌리는 데로 많이 읽는 편입니다. 그리고 아주 사소한 문장들에 끌려 작품에 조금씩 영향을 줍니다.

가장 좋아하는 책은 박지리 작가님의 ‘다윈 영의 악의 기원’입니다. 뚜렷하게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이야기하지는 못하지만, 제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이 책을 처음 마주했는데요. 내용뿐만 아니라 읽었던 그 순간 자체를 사랑하는 거 같아요. 그런 기억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고 지금까지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줬다고 생각합니다.

Q. 감상자는 작품을 통해 무엇을 느끼길 원하는가?

항상 작품의 미적인 부분을 가장 신경 쓰기는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제 이야기가 관객분들에게 가 닿았으면 해요. 무거운 주제들이 많지만,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공존, 희망, 그리고 각자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었으면 하는 저의 마음이 전달되길 바랍니다.

Q. 작가로서의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인가?

주변에서 저를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참 많다고 느껴요. 하지만 예전부터 제 작품이 너무 어둡고 무거워 대중화되기 어렵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아 요즘은 그게 가장 고민입니다. 물론 완벽하다고 말할 수 없겠지만, 취향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역시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서 자주 언급되는 이야기를 무시하기 어렵더라고요.

Q. 마지막으로 민지 작가의 꿈은 무엇인가?

제 작품을 관통하는 메세지는 공존입니다. 공존이라는 메시지가 진심으로 필요한 사람에게 전달될 때까지 저는 작업을 멈추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정해진 틀의 전시공간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곳에서 제 작품을 접할 수 있었으면 해요. 전시와 페어를 보러 오시는 관객분들에게 제 메시지를 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말 그 이야기와 경험이 필요하신 분들은 접근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앞으로 더 힘 있는 작가가 되어서 그런 분들에게 희망을 전할 수 있는 활동을 많이 하고 싶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제 자신이 작가로서 당당하게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중기이코노미 객원=김찬용 전시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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