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그래도 디지털 시대에 용산공원의 ‘경청 우체국’은 좀 무리수였다. 다행히 대통령실이 지난 6월23일 대통령실 홈페이지에 소통을 위한 ‘국민제안’ 코너를 개설했다. 이 코너를 통해 정부에 제안할 내용이 있는 국민들은 민원·제안·청원을 할 수 있다. 대통령실은 “국민 모두가 정책 제안자이고, 윤석열 정부는 국민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 놓치지 않고 귀 기울여 좋은 제안을 발굴, 정부 정책에 반영하겠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운영 한 달이 지났지만, 어쩐일인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떤 제안과 청원 등을 했는지 알 수가 없다. 

대통령실이 민관협동협의체를 통해 선정한 10개의 우수제안만 공개돼 있을 뿐이다. 대통령실은 선정된 10개 제안 중 국민제안 페이지 내에서 ‘온라인 국민투표’를 실시해, 최종적으로 국민 우수제안을 선정하고 국정운영에 반영되도록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현재 공개된 우수제안은 ▲9900원 K-교통패스(가칭) 도입 ▲전세계약 시 임대인 세금완납 증명 첨부 의무화 ▲콘텍트렌즈 온라인 구매 허용 ▲백내장 수출보험금 지급기준 표준화 ▲휴대전화 모바일 데이터 잔량 이월 허용 ▲소액 건강보험료 체납 압류 제한 ▲최저임금 차등적용 ▲반려견 물림사고 견주 처벌 강화 및 안락사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 ▲외국인 가사도우미 취업비자 허용 등 10개다.

대통령실 국민제안 코너에 공개된 국민제안 TOP10

<자료=대통령실 국민제안>

제안이 맘에 들면 ‘좋아요’를 누른다. 제안을 할 때는 실명을 인증하고 제안해야 하지만, 좋아요를 누를때는 실명인증이 따로 필요없다. 대통령실은 이것을 ‘국민투표’라고 했다. 많은 좋아요를 받은 제안은 국민 우수제안이 돼 국정 운영에 반영된다. 위험해 보이는 운영방식이다. 공개된 10개의 우수제안이 어떤 이유로 제안된 내용인지, 어떤 기준으로 선정됐는지 등은 전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차등적용’이라는 제안의 경우 “현재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최저임금을 지역·업종별로 차등적용”이라는 것이 내용의 전부다. 골목상권 소상공인의 생존권이 걸린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 제안 또한, “대형마트 격주 의무휴업 규정을 폐지하고 기업 자율에 맡김”이라는 것이 전부다. 현재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 제안은 10개 제안 중 가장 많은 좋아요를 기록해 정책으로 추진될 가능성이 높아, 소상공인 업계의 반발을 사고 있다.

국민이 직접 대통령에게 제안하고, 제안한 내용을 정책에 반영한다는 취지는 환영받을 만 하다. 국민은 정부와의 소통을 통해 내 삶을 바꾸는 정책들을 실현하길 원한다. 때문에 전 정부의 국민청원이나 윤석열 정부의 국민제안 모두 꼭 필요한 제도다.

그러나 자칫 미숙한 운영으로 좋은 취지로 마련된 국민제안이 불신으로 사장되는 일이 없길 바란다. 정부에 대한 쓴소리든 단소리든 국민들이 제안을 한 내용이라면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중 10개의 우수제안을 선정했다면, 제안 이유가 충분히 설명돼야 하고, 어떤 절차를 통해 선정됐는지, 선정 기준이 무엇인지 또한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 

그래야 정권의 입맛에 맞게 제안을 선정해 지지세력의 투표로 정책으로 끌고가려 한다는 오해를 피할 수 있다. 또한, 국민 제안 중 정책 반영을 위한 국민의 의사 표시를 온라인 국민투표라고 명명했다면, 국민투표 요건을 갖추고 제안의 이유를 설명한 뒤 충분한 홍보와 국민참여를 보장해야 한다. 선택적 국민투표라는 오해를 받지 않으려면 말이다. 중기이코노미 채민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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