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물가 부담 완화를 위해 유류세를 최대폭으로 인하하고 어려운 분들의 생계 안정을 위해 1조원 규모의 긴급생활안정지원금, 2500억원 규모의 에너지 바우처를 지원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20분간의 모두발언 중 물가에 관한 언급은 이 단 한줄 뿐이었다. 물가 현황이 어떤지, 정부의 기조는 무엇인지, 수 차례의 물가·민생 관련대책에도 물가가 치솟는 상황에 대한 평가는 어쩐지 등은 전혀 알 수 없었다. 

사실 물가 문제만 유독 짧게 언급한 것은 아니다. 정부 출범 이후 100일간 있었던 수많은 경제·안보 문제를 줄줄이 나열식으로 거론하다보니, 중대한 문제들을 한두 문장 정도로만 다루는 식이었다. 

그럼에도 13년만의 물가대란을 맞아 현 상황의 심각성을 비중있게 다루지 않은 것은 문제다. 소비위축까지 우려되는 물가 비상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물가급등에 따른 소비위축은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최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를 보면, 2분기 들어 가구당 월평균 소비지출은 지난해 2분기에 비해 5.8% 증가했다. 문제는, 물가를 고려한 실질 지출이 0.4% 증가에 그쳤다는 것이다. 실질 지출은 지난해에 비해 제자리걸음을 했는데, 물가가 급등해 명목 지출이 크게 증가해버린 것이다. 소득이 증가했음에도 실질 지출이 제자리걸음이란 점에서, 물가급등에 소비심리가 위축되는 조짐을 읽을 수 있다. 

유형별로 보면, 가정용품·가사서비스와 식료품 같은 생활 필수 지출이 감소했다는 문제를 확인할 수 있다. 가사는 지난해보다 명목 -9.4%, 실질 -14.3%로 급락했다. 식료품 역시 명목 -1.8%, 실질 -7.1%로 큰 폭의 감소를 보였다. 

교통지출의 경우, 실질은 -2.8%로 감소했음에도 명목은 11.8%나 올랐다. 물가가 동일하다는 가정 하에 보면 소비량이 줄어든 것인데, 그럼에도 명목 지출이 크게 늘었다는 것은 물가가 급등한 결과다. 

물가 문제의 원인이 한 두가지가 아니지만, 그중에서도 환율의 추이가 심상치 않다. 19일 들어 환율이 1320원을 넘어서면서 연중 최고점을 한달만에 갱신했다. 2009년 이후 13년 만의 1320원대 진입인데, 치솟는 환율이 물가를 비롯해 한국경제 전반에 부담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7월까지 4개월 연속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하고 8월에도 무역 적자가 예상되는 상황에도 환율이 영향을 끼치고 있다. 

현 정부 들어 지금까지 총 9차례에 걸쳐 물가·민생 관련대책이 발표됐는데, 각 정책이 어떤 효과를 발휘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민생경제 전반에서 물가 대책에 따른 효용감을 찾기 힘든 것은 문제가 있다. 심지어 대통령의 100일 기자회견에서도 물가 대책 헛발질에 대한 언급이 없을 지경이다. 

치솟는 물가에 소비자는 소비를 꺼리고, 기업들은 원자재가 압박에 못이겨 채산성이 악화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심각한 문제다. 유럽을 비롯해 세계경제의 경기침체 가능성이 제기되고, 주요 수출상대국인 미국과 중국 양쪽에서 무역적자가 나는 상황 역시 마찬가지다. 정부가 현 상황을 안일하게 인식하는 것은 아닌지, 시장의 우려는 계속해서 커지고 있다. 중기이코노미 이창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