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보면서, 그간 지적돼 온 국정운영의 독단과 아집이 쉽게 바뀔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또 인적쇄신 요구 역시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다. 민심을 겸허히 수용하겠다고 했지만, 무엇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청사진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20%대로 떨어진 대통령 지지율, 위기의식도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전 정권보다 낫다는 자아자찬의 모두 발언은 문제점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냐는 의문까지 든다. 취임 100일, 국민들은 하나같이 ‘바꿔라’ ‘지지를 철회 하겠다’고 아우성인데 대통령만 모르쇠다. 측근에 둘러싸여 보지 못하거나, 보고도 깨닫지 못하는 정치적 아둔함 중 하나다.

‘소득주도성장과 같은 잘못된 경제정책을 폐기하고, 경제기조를 철저하게 민간·시장·서민 중심으로 정상화했다’는 발언은 논리적으로 성립될 수 없는 언어의 조합에 불과하다. 소득주도성장은 국민들의 지갑을 채워 성장의 동력으로 삼겠다는 성장론이다. 수출·대기업 중심 성장론에 대처하는 가계 중심 성장론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성장론을 폐기하고, 수출과 기업을 위해 주 52시간제를 없애고 최저임금에 차등을 두겠다는 게 어떻게 서민중심이라고 말할 수 있나? 고물가와 고금리 등 복합적 경제위기에서도 국민들 살림살이 걱정보다 수입 원자재 인상에 수출이 타격받을 걸 걱정하는 윤석열 정부. 경제 기조를 서민중심으로 바꿨다는 건 자아자찬을 넘어서는 거짓말이다.

집값을 안정시켰다는 대통령의 인식도 문제투성이다.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는 건 세계적 금리인상이 원인이다. 집권 100일을 맞는 정부, 제대로 집값 안정 정책을 써 본적도 없는 정부가 집값 안정을 치적이라고 내세우다니 안쓰럽기까지 한 일이다. 종합부동산세를 폐지하고 다주택 양도세 중과를 유예하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부동산 정책 기조는 부자들을 위한 정책일 뿐 집없는 서민들이나 집값 하향 안정화와는 거리가 멀다.

재건축 규제를 완화해 270만호를 공급하겠다는 지난 16일 주택공급대책에는 저소득층 주거 안정이나 투기, 민간 건설사의 초과이익 환수 방안 등은 보이지 않는다. 금리인상으로 주춤하는 집값, 정부의 부동산 감세정책이나 대규모 재개발은 언제든 투기 바람이 몰아칠 수 있다. 그래서 지금은 집값을 잡았다고 자랑할 때가 아니라 서민주거 대책이나 270만호 대규모 주택공급에 앞서 건설사에 이익이 적당히 통제할 장치를 마련하는 게 시급한 일이다.

윤석열 정부 집권 100일. 곳곳에서 고달프다는 소리가 들린다. 세계적인 경제난과 물가고, 끝나지 않은 코로나 팬데믹에 115년 만에 찾아온 물 폭탄 재난까지. 그러나 국민들의 살림살이를 챙기고 불안을 해소시켜야 할 정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실의 사적 채용과 측근 정치,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끊임없는 의혹, 대통령의 무능과 아집, 여당인 국민의힘의 권력놀음은 정치가 국민들 걱정하는 게 아니라, 국민이 정치를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다. 20%대로 떨어진 대통령 지지율은 지난 100일의 낙제점 성적표라고 할 수 있다.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의 연이은 대통령 관련 폭로는 지난 대선을 되돌아보게 한다. “양머리를 걸어두고 개고기를 팔았다”거나, “국민도 속도 나도 속았다”는 발언에서 개고기를 구입한 것도, 정치 장사치들에게 속은 것도 국민들일 것이다.

그러나 5년 여전히 긴 여정이다. 지지율 20%대의 대통령이 5년 동안 무능과 아집으로 임기를 채우는 건 대통령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의 불행이다. 바꿔야 한다. 처음해보는 대통령이라 서툴다면 전문가를 중용하고 민심에 귀 기울려야 한다. 윤석열 정부 100일, 한 번도 설레지 않았다. 길게 남은 임기, 이제부터라도 좀 달라지라. 집권 100일을 지나는 윤석열 정부를 향한 당부이자 국민의 명령이다. (중기이코노미=안호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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