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선 공장에서 전화 통화로만 얘기를 나누던 아저씨를 한 눈에 찾기가 어려웠다. 무더운 여름 공장 안에는 족히 예닐곱명 정도의 아저씨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거나, 큰 소리로 통화를 하거나, 한 구석에서 팔등으로 이마에 내려앉은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다시 전화기를 들어 통화를 해봐야겠다 싶어서, 가방을 뒤적거릴 때 뒤에서 누군가 말했다. “이쪽으로 오세요.”

뒤돌아보니 작품 때문에 몇 번 통화했던 그 사람이구나 싶었다. 눈으로만 인사하고 그가 가는 방향으로 따라 갔는데, 공장 한 켠에 임시 가벽으로 구분을 짓고, 컴퓨터 몇 대 있는 책상이 놓여있는 사무실처럼 쓰는 공간이다.

“밴딩을 하신다구요?” 본론부터 말하는 사장은 어딘지 모르게 급해 보였다. 일이 많은 듯해 보여서 덩달아 나도 말이 빨라져야 할 거 같아 서둘러 준비해간 드로잉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고, 적어 온 사이즈를 내놓았다.

“하나씩만요?” 묻는 사장의 의도를 나는 안다. 날씨가 풀리는 봄부터 늦여름이나 초가을까지 성수기인 철공 관련 분야는 지금 한창 바쁠 때이고, 주문 물량이 아마 넘치는 대목 일텐데, 작가가 프로토타입 작업에 필요한 어느 한 부분, 그러니까 그 분들 입장에서는 ‘돈 안되는’ 일인데 그나마 지금 이걸 꼴랑 하나씩 구부려 달라는거냐 라는 말이 질문에 녹아 있는 것이다.

이럴 때엔 별 수 없다. 허심탄회하게 최대한 잘 설명 드리는 수밖에. 그러나 분주하게 돌아가고 목소리조차 잘 들리지 않는 공장 안에서, 게다가 신경이 온통 다른 곳에 가 있는 게 확연히 보이는 그에게는 간단하고 또렷하게 말하는 방법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대략적인 설명을 듣고, 그는 큰 테이블 위에 줄자를 꺼내어 늘어뜨려 내가 원하는 크기를 확인하더니 재차 이게 맞는지 확인하고는 언제까지 필요한지 물었다.

빠를수록 좋다고 하니, 그는 곧 연락 주겠다고 하고 견적을 묻는 내게 “이거 뭐 얼마 되겠어요? 나중에 문자로 견적 넣어드릴게요” 하더니, 한창 시끄럽게 돌고 있는 기계쪽으로 시선이 간다.

그 쯤 되니 나도 신경이 좀 곤두서버렸다. 그냥 알았다고 하고 돌아서 나와도 됐으련만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내겐 중요한 작업이었고, 틀어져서는 안되는 오차 때문에 나중에 서로 불편할 일이 없으려면, 무언가 분명하게 한마디 보태야 마음이 조금은 편할 것 같았다.

“사장님!” 시선이 기계 쪽에 가 있는 그를 향해 무턱대고 일단 불렀다. 갑자기 내용을 덧붙이지 않고 불렀기 때문일까. 그가 나를 향해 돌아서고 두 눈이 중앙으로 돌아왔다.

‘알아요. 한창 바쁘실 때 돈 안되는 일이라는 거. 근데 저도 작업 때문에 공장들 돌아다니고, 때로는 좋은 인연이 돼서 일 있을 때마다 기분 좋게 거래를 하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어요. 후에 규모가 커지거나 다시 작업해야 할 일이 있으니 이번에 작게 하나 만들더라도 나중일은 모르잖아요? 그러니 제가 하는 말을 그런 식으로 대충 듣고 다 알아먹겠다는 식으로 대충대충 해서 나중에 문제 생겼을 때 남의 시간, 돈 두배로 잡아먹지 말고 이왕 하겠다 했을 때 제대로 듣고 하세요!’ 라고 말하고 싶은걸 목구멍 아래로 깊게 쑤셔 넣었다.

“중요한 작업이에요. 잘 부탁드립니다.” 내 입 밖으로 나온 말은 그게 전부였다.

그는 아주 짧게 입을 다물었다가, 이내 특유의 급한 말투로 “네. 연락드릴게요”하고 먼저 사무실 밖으로 나섰다. 공장 밖으로 나온 오후의 날씨는 하얗게 부서진다.

본격적인 더위는 장마가 지나야 올 텐데 두 눈을 똑바로 뜰 수 없을 만큼 부서지는 볕은 그 자리에 막대기처럼 꽂혀 있다가는 5분도 견디기 어려울 만큼 강렬했다.

어차피 바로 다른 공장으로 차를 돌려야 제 시간에 도착할 것 같아 나 역시 서둘러 운전대를 잡았다. 레이저로 각인하는 일이 필요해 근방에 규모가 큰 업체를 찾아 갔는데 직영이라서 그런지, 정말이지 공장이 들어선 부지와 회사 건물이 꽤나 크다.

주차를 하고 사무동으로 보이는 건물에 들어서서 통화 한 분을 찾는다고 하자, 책상에 앉아 업무를 보던 남자가 어디론가 전화를 돌리더니 지금 밖에 나가시면 만나실 수 있을 거라고 한다. 밖으로 나서니 공장과 사무동 사이에 있는 너른 주차장 공간 저쪽에서 중년의 아저씨가 다가온다. 볕 때문에 두 눈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으나 인상을 쓰고 있는 건 아니다. 한 눈에 나를 알아본 그는 나를 다시 사무동으로 안내했다. 책상에 앉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활자판을 화면에 띄운 그는 “사이즈가 어떻게 된다고요?”라고 묻는다.

“6×4예요”라고 대답하자 그는 작게 한숨을 내쉰다. 그러더니 자판을 잠깐 만지작거리다가 의자를 돌려 나를 바라보더니 “여긴 큰 업체예요. 그 정도 사이즈면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게 나을 텐데요”라고, 마치 중요한 조언을 하듯 말한다.

그걸 내가 모를 리가 있나. 당연히 인터넷 주문을 해도 되고 이렇게 찾아다니며 말을 섞을 필요도 없고 여러 가지로 편할지 모른다. 다만 현장에서 이야기를 하고, 결과를 바로 볼 수 있고, 후에 더 만들어야 할 경우에 이야기를 주고받기 편하려면 경험상 이런 경우엔 직접 찾아가서 하는 게 작업적으로 더 나은 결과를 주는 수가 많았다. 이런저런 말을 길게 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게 제겐 더 맞아요”하고 내 눈은 다시 컴퓨터 화면으로 돌아갔다. 작업이나 하자는 뜻이다.

그는 그걸 알아들었는지 명판 내용을 확인하더니 두어장 출력하고 공장으로 향했다.

나는 이날 이렇게 세 곳의 공장을 돌아 다녔다. 이번에 들어가는 작업은 지난 코로나 시국 동안 작업적으로 발 빠르게 적응하지도, 그렇다고 관성으로 이어갈 수도 없던 작업을 두 손 놓고, 거의 작업실 공사로 보내던 내게 아주 중요한 작업이다. 전혀 다루지 않던 매체였으니 배우면서 진행해야 할 것들이 제법 많았고, 밴딩이나 명판 제작은 당연히 공장을 찾아야만 했다. 한창 바쁜 공장들은 이런 프로토타입의 작업에 들어가는 물량이 적고, 규모가 크지 않은 일에 관심을 둘 리가 없다.

금융자본주의사회에서 어찌보면 당연한 처사이고, 작업을 이어가는 내게는 여전히 당혹스럽고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들의 그런 ‘돈 안되는 시시한 일’이라는 관념과는 다르게 좋은 결과를 내고 즐겁게 일을 진행하려는 노력 역시 내게는 중요한 작업의 일부다.

아저씨가 공장에 들어가 명판을 빼는 시간동안 근방 슈퍼마켓에 들렀다. “아저씨, 비타오백 한 박스만 주세요.” (중기이코노미 객원=김윤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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