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로 세계경제가 위협받던 2008년 당시 병장의 한달 월급은 9만7500원이었다. 경제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여러 대책을 내놓던 이명박 정부는 병사월급도 동결하기로 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차례의 동결로, 2010년까지 병사월급은 바뀌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 출범 당시인 2003년 2만3100원이었던 병장월급은 2008년까지 가파르게 올랐지만, 두 차례의 동결로 10만원 돌파가 미뤄졌다. 2011년이 돼서야 병장월급이 10만3800원으로 오르면서 최초로 10만원대를 기록했다. 

병사월급은 대체로 조금씩이나마 인상됐지만, IMF 외환위기처럼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는 동결된 사례를 드물게나마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 대한민국 경제에서 20대 청년들을 2년간 군대에 복무시키면서, 월급을 한달에 10만원도 주지 않은데 그나마 월급인상을 동결한 것을 보면, 언뜻 납득이 가지 않는 측면도 있다. 최저임금에도 아득히 못 미치는 병사의 월급인상을 동결하는 것이 경제위기 극복에 결정적이었을까는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다. 

그보다는, 정부가 직접 임금을 결정할 수 있으면서 임금 동결에 저항할 수도 없는 병사들에게 고통분담을 명목으로 희생을 강요했다는 게 보다 사실에 가까운 설명일 것 같다. 그런데, 최근 물가급등에 고환율·고금리와 무역적자가 겹쳐 경제가 위기에 빠진 상황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대응책을 보면 기시감이 느껴진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29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재정도 긴축해서 공무원들도 임금을 어느 정도 낮춰야 된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민주당 전용기 의원은 추경호 경제부총리의 임금인상 자제 발언을 두고 “물가 잡으라 하니까 월급쟁이만 잡고 있지 않느냐”고 따져 물었는데, 한덕수 총리는 물가 급등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모두가 자기의 부분을 좀 희생해야 된다”고 답했다. 

실제로 공무원의 명목임금을 삭감하지는 않았다. 30일 정부가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예산안을 보면, 내년도 5급 이하 공무원 임금은 1.7% 인상하기로 했다. 단, 4급 이상은 보수를 동결하고 장차관급 이상은 10%의 보수를 반납하기로 했다. 

그러나 물가를 고려한 실질임금은 삭감됐다. 실제로 6월과 7월 들어 두달 연속으로 소비자물가가 6%대로 급상승한 상황이다. 최근 한국은행은 올해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5.2%로 전망했다. 고위직은 물론 저임금을 받는 하위직 공무원들 역시 실질임금이 삭감된 것이다. 

정부의 예산안 발표 이후 한국노총 소속의 공무원노동조합연맹과 교사노동조합연맹, 우정노조, 경찰 민주직장협의회 대표단은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열어, 공무원 보수 예산을 재심의하고 물가연동제를 제도화해줄 것을 정부와 국회에 요구했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고통분담을 요구하려면 합리적인 대책과 계획을 먼저 내보이는 것이 올바른 수순이다. 물가가 폭등하는데 제대로된 대책을 내놓지는 못하고 민간기업부터 공무원까지 임금을 누르고 보자는 얘기만 반복하면, 이건 고통분담이 아니라 고통 몰아주기에 다름없다. 이를 감내해줄 국민은 어디에도 없다는 점을 정부가 유념해야 한다. 중기이코노미 이창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