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영국 테이트 모던에서 덴마크 출신 예술가 올라퍼 엘리아슨이 ‘날씨 프로젝트:태양’이란 이름으로 거울과 전구 200여개를 이용해 인공 석양을 선보이는 작품을 전시했다. 실내에 떠있는 강렬한 태양의 모습을 바라보며 많은 이들이 감동했고,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남겼다.

사실 강렬한 태양과 아름다운 석양은 우리 일상에 매일 존재하는 자연현상임에도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망각하곤 한다. 하지만 올라퍼 엘리아슨은 대자연의 아름다움과 위대함을 대형 설치작품을 통해 다시금 바라보고 생각하게끔 만들었다. 이처럼 일상에서 목격하게 되는 비행운을 통해 우리 삶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순간들을 포착해 내는 작가가 있다. 풍경을 통해 삶의 궤적을 그리는 작가 허정록을 만나보자.

picnic17, oil on canvas, 116.8×91cm, 2022.

Q. 자신의 작품세계를 소개해달라.

안녕하세요. 비행운을 통해 삶의 궤적을 그리는 작가 허정록입니다.

저의 작품에는 두가지의 정서가 담겨있습니다. 먼저 첫번째 정서는 자유에 대한 열망입니다. 사람들이 현실을 살아가며 느끼는 답답함, 미래를 알 수 없는 불안감과 우울감 등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자유에 대한 열망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퇴근길이나 점심시간 등 잠깐의 시간에나 풍경을 마주할 수 있는 이들에게, 바깥 풍경을 그려 잠시나마 숨을 돌릴 수 있는 순간을 선사하고 싶습니다. 두 번째 정서는 따뜻함입니다. 저는 작품 안에 제가 삶을 살아오며 느끼는 행복한 감정들을 담아내려 합니다. 특히 어릴적 추억의 장소에 다시 오게 되고, 그때의 행복했던 기억들을 비행운과 함께 표현함으로써 따뜻한 위로를 건네고자 합니다. 또 이 비행운은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Q. 주로 도시와 하늘을 작품에 담아내고 있는데 이를 다루게 된 계기가 있는가?

예전부터 여행을 좋아했고, 낯선 여행지의 번화한 도시 모습을 동경했습니다. 도시의 밤에 퍼지는 빛에 매료된 저는 밤이야말로 도시의 가면을 벗은 본연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했기에 줄곧 야경을 그리곤 했습니다. 그러던 중 매번 공모전에 탈락하면서 작가로서의 행보에 자신감이 없어져서 시선을 길바닥에 놓인 발끝에만 두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를 벗어나고자 하늘을 응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순간 넓은 하늘을 가로지르는 비행운을 보며 잠시나마 답답한 현실을 달랠 수 있었고, 여기서 영감을 얻어 광활한 하늘과 이를 가로지르는 비행운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작품세계를 확장시켜 과거의 추억이 있는 도시에 비행운을 그려넣으며, 제 삶의 궤적을 작품으로 제작하고 있습니다.

Q. 자신의 작품세계가 잘 담긴 대표작을 추천해준다면?

제 작품세계가 잘 담긴 대표작은 ‘Picnic17’입니다. Picnic은 과거 기관사셨던 아버지와 떠났던 서울여행에서 시작됩니다. 고향이 익산이었던 저는 서울에 가려면 용산역으로 와야만 했습니다. 용산역에 도착하기 직전에는 꼭 철교를 지나는데, 그때 항상 보았던 63빌딩과 한강의 모습은 늘 서울을 생각나게 하는 이미지였습니다.

20년이 지난 지금 작품전시 때문에 서울에 자주 오게 되면서, 문득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그때의 흥분과 기쁨을 그리고자 했습니다. 소년이었던 그 시절과 지금 작가가 되어 서울에 오게 되는 기분은 어릴적 소풍을 떠나는 마음과 동일했기에 ‘Picnic’이라는 제목을 짓게 되었습니다. Picnic시리즈는 현재 저의 메인 작품이자 아버지와의 소중한 기억을 담은 작품입니다. Picnic17을 꼽게 된 이유는 최근 있었던 광주 전시에서 전시장 입구에 배치되기도 했었는데, 시리즈 중에서 가장 크게 제작된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Run2, oil on canvas, 72.7×90.9cm, 2021.

최근 예술의전당 청년미술상점을 통해 많은 관람객에게 작품설명을 드릴 기회가 있었습니다. 63빌딩과 한강을 바라보는 관람객들의 생각은 저마다 달랐고, 어느 장소에서 63빌딩을 보게 되는지도 많이 달랐습니다. 무엇보다 여의도 직장인들이 작품에 대해 깊은 공감을 해주셨습니다. 제가 63빌딩과 한강을 통해 아버지와의 추억을 회상하는 것처럼 제 작품을 통해 서울에서의 소중한 기억들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시간을 갖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Q. 주로 유화로 작업을 하는 것 같은데, 선호하는 재료가 있는가? 있다면 그 이유는?

작품에 색을 올리는 과정에서 유화가 마르는 동안 진행중인 작업에 대해 더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기는 것이 큰 이점입니다. 그래서 충분히 생각을 한 후에 캔버스에 조색을 할 수 있는 유화를 선호합니다. 최근에는 작가 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유화 재료를 갬블린 물감과 갬블린 네오메길프 미디엄으로 바꾸었습니다. 색의 선명도와 안료의 밀도가 기존에 쓰던 물감과 차이가 커서 기존 물감으로 베이스색을 4~5번은 올려야 보이는 색의 두터움이 2~3번으로도 충분히 가능했기에 재료의 가격은 부담스러웠지만 제작시간이 단축되었기에 만족감이 매우 큽니다.

Q. 앞으로 작가로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가?

현재는 올해 남은 개인전과 단체전에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우선 9월3일부터 10월29일까지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고, 그 외에도 에코 아트페어, 갤러리아미디 한남점 개관 전시에 작품을 출품할 예정입니다. 또 지역의 갤러리들과도 전시를 논의 중인데, 기회가 주어진 자체만으로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공모전이나 다양한 갤러리와의 협업을 통해 꾸준히 소통할 수 있는 전시의 기회를 만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Q. 작가로서의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인가?

지금 얼마 남지 않은 청년작가로서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작품제작과 전시활동을 꾸준히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가는 것이 가장 큰 숙제입니다.

Q. 작가 허정록의 꿈은 무엇인가?

현실적으로 전업작가(Fulltime Painter)가 될 수 없다면, 평생작가(Lifetime Painter)가 되도록 항상 노력하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중기이코노미 객원=김찬용 전시해설가)

<저작권자 ⓒ 중기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