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한 바닷가는 생각보다는 한산했다. 지난 새벽, 배낭에 티셔츠 몇 개 넣어서 작업실에서 아무 대책 없이 나온 후 무작정 고속도로에 올랐다. 도착한 곳은 강원도 부근 바닷가고, 속초나 양양은 많이 붐빌지 몰라 그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조금 더 위쪽을 선택했다.

깊은 새벽이 다 돼서야 도착한 명조가 매우 낮은 푸른색을 띄고 있는 바닷가는 우렁차게 부서지는 파도소리가 아니었다면, 제대로 도착한 게 맞는지 쉬이 판단이 가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두 눈이 시큰한 검푸른 바다에 동공이 열릴 시간이 지나자 서서히 바다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몇몇 깊은 수면에 빠진 캠핑카들이 띄엄띄엄 눈에 띄긴 했지만, 딱 바다가 심심하지 않을 만큼이었다.

작업에 대한 물리적 시간요소와 집중도를 고려해 대부분의 경우 집과 작업실만을 오가는 -오랜시간 공들여 만들어 놓은- 이 단순한 생활패턴은 때로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복잡하게 꼬인 실타래처럼 서로 풀리지 않는 상황을 만들곤 한다. 한마디로 오갈 수도 없는, 그 어디도 나의 공간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올 때마다 작업실에 앉아만(누워만) 있기도 해보고, 시작하지도 못할 작업을 끊임없이 서성이기도 해보고, 때로는 완벽히 외면도 해보지만, 외면한들 마음이 편한 것도 아니다.

오래전 썼던 말처럼, 작업이 시작되면 야작이(야간작업이), 작업이 멈추면 불면이 온다. 어찌되었든 새벽은 뜬 눈인 것이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나온 결론이지만, 이럴 땐 별 수 없다. 물리적으로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곳에 ‘나’를 놓아두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장거리 운전의 피로와 새벽 내내 쌓인 자동차 헤드라이트로 인한 두 눈의 피로로 숙소에 들어서자마자 그대로 쓰러져 그야말로 ‘아무 생각 없이’ 잠들 수 있었다. 불면의 괴로움 없이. 오후가 되어서야 일어나 한량처럼(실상, 그 순간에 한량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바다로 갔다. 숙소에서 바닷가는 약 6km 남짓으로 차로 십분 거리다.

아직 성수기가 오기 전인 듯 했지만, 기다란 해변을 따라 일정 간격으로 평상과 파라솔이 가격표와 함께 자릴 잡고 있었다. 해변가 초입에 간이 천막을 치고 자릿세를 받는 듯 보이는 상인이 빨간 모자를 쓰고 바닷가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유심히 보고 있다. 뭐 좀 먹을 생각이 들 때까지 바닷가에서 책이나 좀 볼 요량으로 왔던 나는 가족단위 사이즈의 큰 평상을 혼자 차지하기가 가격을 떠나 어쩐지 불편했으나, 아무 준비 없이 당도한 이곳에 그것을 대체할 장비 따위가 내게 있을 리 만무했다. 결국 빨간모자 아저씨에게 가서 사람이 가장 없는 쪽에 위치한 제일 끝에 자리한 파라솔을 달라고 하자, 그는 혼자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했더니 오천원을 깎아준다.

커다란 평상을 혼자 다 차지한 나는 근방 슈퍼에서 보리차와 다를 바 없는 커피를 큰 컵으로 하나 사와서 정중앙에 놓고, 책을 열었다. 며칠 전 인터넷에서 주문한 소설가 레이먼드 카버의 유일한 시전집 ‘우리 모두’다. 멀리서 들려오는 즐거운 비명소리, 파도를 타는 몇몇 연인들의 즐거운 웃음소리와 가족단위 혹은 친구끼리의 바닷가 담소들이 일정 간격을 두고 부서지는 우렁찬 파도소리와 뒤 섞여 처음엔 읽어 내려가던 책 행간 사이사이를 타고 들어오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멀리 사라져 버리고 고요만이 남는다.

다시 두 귀로 바닷가 특유의 즐거운 소음들이 켜지기 시작할 즈음엔 허기도 함께 찾아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식당으로 갔다. 평점과 리뷰를 대략 살피고 찾은 나름 유명한 맛집이라는데,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탓인지(다섯시가 넘은 시간이었으니) 가게 안은 나 외에 손님이 단 한명 뿐으로 아주 한산하다. 손님이 없어서인지, 한창 바쁜 시간이 지나서인지 모르나, 가게 안에 기독교방송을 틀어놓고 큰 소리로 노래를 따라 부르던 사장님은 나를 보자 혼자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하자 중앙 테이블로 손을 뻗는다. 라디오에서 나오던 찬송가는 때마침 그쳤고, 이어서 라디오 진행자가 ‘주여! 우리를 구원하소서!’라고 하자 방청객들이 후창을 한다.

‘주여! 우리를 구원하소서!’ 어느 종교에도 반감은 없지만, 비명과 흡사한 소리에 순간 형용할 수 없는 괴로움이 파도처럼 밀려든 나는 이 소리를 들으면서 식사를 할 자신이 없다. 안쪽으로 들어서기 전에 라디오 소리를 좀 줄여 줄 수 있겠냐고 묻자, 사장님은 맑게 웃으시며 고개를 끄떡이고는 어지간한 청력으로는 차이를 구분하지 못할 만큼 소리를 줄인다.

낙담 하려다 말고 생각해보니, 가방 안에 오래전에 넣어둔 이어폰이 있다. 자리를 잡고 주문을 한 뒤에 얼른 이어폰을 꽂아 아무 플레이 리스트를 선택해 음악을 재생시켰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단체 손님들이 갑자기 들어오는데, 사장님이 반갑게 인사하며 식사 메뉴를 미리 알고 확인하는걸 보니 예약 손님들인 듯하다. 그들이 들어서고 나서야 라디오는 드디어 완전히 소리를 줄였고 나도 이어폰을 뺏다.

동네 어르신들로 구성된 듯한 단체 손님들은 내 바로 옆에 자리한 큰 테이블을 차지했고 병뚜껑 따듯 짧게 날씨나 소소한 근황을 빠르게 주고받더니 본격적으로 동네 이슈들이 테이블 위로 소나기처럼 쏟아진다. 이 동네 어느 분이 알콜중독으로 간암 판정을 받았는데, 그의 아내가 ‘젊은놈’과 바람이 났다는 거다. 그것도 멀리 속초도 아니고 바로 같은 동네에서 그랬다는데, 그 이야기는 어르신들의 ‘아이고’ ‘세상에!’ ‘인두겁을 쓰고 어떻게’ 라는 등등의 추임새와 함께 그 열기는 빠르게 수직상승 한다.

머릿속에선 아까 들은 ‘주여 우리를 구원하소서!’가 윙윙 거리기 시작한다. 차라리 라디오를 다시 틀어 달라고 할까 하다가, 서둘러 식사를 마치는 게 낫겠다 싶어, 거의 마시듯이 식사를 끝냈다.

시골의 밤은 일찍 찾아왔고, 카페마저 일찍 영업을 종료하는 이곳에서 별 다른 선택지가 없던 터라, 숙소에 들어와 다음 날 가볼 만한 곳들을 검색하고 간단한 일정을 짰다. 다음 날 역시 바닷가를 좀 누리다가 늦은 오후 들어선 식당은 아예 손님이 없다. 일인분만 면을 뽑기에는 기계를 켜기가 어렵다던 사장님은 멀리서 왔다는 말을 듣자, 면이 좀 울퉁불퉁 불규칙해도 이해해 달라며 테이블을 내어준다. 타지에서, 그것도 혼자 온 손님이 마음이 쓰인 건지, 말동무를 해주고 싶었던 건지 알 수는 없으나 사장님은 오픈주방에 들어가 면을 뽑으면서 이런저런 소소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차라리 어디 로컬들만 아는 가볼 만한 곳이 있나 궁금했던 내가 이 동네에 관해 묻자, 사장님은 주방과 홀 사이에 있는 사각 창틀로 몸통을 내더니 무슨 중요한 얘기를 꺼내듯 어제 들었던 그 간암 걸린 분과 바람난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닌가. 내비게이션을 꺼내 어제 갔던 식당과 거리를 보니 무려 23km가 떨어져 있는 곳이다. 그 사실에 놀라 말문이 턱 막힌 나를 사장님은 아마도 그 이야기에 놀란 사람으로 보았는지 틀어져 있던 텔레비젼 소리를 줄이고 상세한 이야기를 덧붙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긴 긴 이야기는 음식이 나온 후에도 이어졌다.

마냥 듣고 있기가 서서히 불편해졌던 나는 사장님께 말했다.

“그 이야기에 남자와 여자만 한번 바꿔서 생각해 보실래요. 아내가 술을 달고 살다가 알콜중독으로 간암에 걸리고, 남편이 바람이 났다고. 사람들이 뭐라고 할 거 같아요. ‘애 있는 여자가 술이나 퍼먹고 끊지를 못하니 남편이 오죽했으면 바람나지 않았겠어.’ 뭐 이러지 않을까요. 그리고 관계 속에서 한 사람이 망가지는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사람의 심정을 어디까지 짐작해 보셨어요. 중요한 얘기예요. 이렇게 막 욕하면 안될 거 같아요.”

그제서야 사장님은 조용해졌고, 티브이 볼륨을 다시 높였다.

그렇게 대책없이 떠난 곳에서 약 일주일 정도를 보내고 스튜디오로 향했다. 날씨는 화창했고, 룸미러로 보이는 얼굴은 좀 그을려 있었고, 돌아오는 길엔 이곳저곳 기웃거리고, 누구보다 느리게 운전했다. 스튜디오는 늦은 밤이 되어서야 도착했다.

건물 안 복도는 불이 다 꺼진 상태로 깜깜했고, 어둠 속에서 동공이 열릴 즈음 이층 나의 스튜디오 앞에 다다랐다. 문을 열자, 파도처럼 익숙한 냄새가 코끝을 찌른다. 파도소리가 아니고서야 제대로 바닷가를 찾았는지 알 수 없던 여행지에서의 첫 날, 그 깊은 새벽처럼. (중기이코노미 객원=김윤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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