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cleus 85-21, 1985.

한국미술사에서 기하학적 추상회화를 선도했던 이승조(1941~1990년) 작가의 개인전이 국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이승조는 우리나라 근현대미술사를 대표하는 작가임이 분명하지만, 인지도 면에서만 보면 확실히 저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모더니즘 미술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지니고 있는 작가라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1967년 ‘핵’ 연작품을 통해 기하추상회화의 서막을 열었고, 이후 작고하기까지 20여년간 자신만의 일관된 조형질서를 만들어내는데 평생을 바쳤다.

이승조는 흔히 ‘파이프 작가’라고 불린다. 줄곧 파이프 형상의 회화작업을 해왔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런 말에 대해 “별로 원치도 않고 또 싫지도 않은 말”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미술평론가 이일은 “(이승조의 파이프 형상 작품은) 어디까지나 회화소재로서의 선과 색채의 앙상블로 읽어야 한다”며, “조형의 기본원리인 규칙적인 반복의 질서를 통해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가 말하는 ‘자기환원적 추상’, 다시 말해 ‘탈회화적 추상’의 세계를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제시했다”고 강조했다.

Nucleus PM-76, 1969.

작가는 생전에 “우주의 공간의식에 눈뜨고부터 시작한 이 작업이 작가인 내가 살고 있는 시대를 표현하는 데 가장 적합한 것 같아”라며, 우주라는 새로운 공간에 대해 처음 눈을 뜨면서 작품세계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에 유족들은 “수학도 모르면서 속도와 확장성은 꿰뚫었던 사람”이라며, 작가가 현대과학에 직관적 통찰력이 있었음을 회상했다.

이승조의 추상회화 작품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기차여행을 회고하며 남긴 말이 도움이 된다.

“기차 여행 중이었다. 눈을 감고 잠시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겨 있었는데 얼핏 무언가 망막 속을 스쳐가는 게 있었다. 나는 퍼뜩 눈을 떴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마치 첫인상이 강렬한 사람에 대한 못 잊음과도 같은, 그 미묘한 감동에 휩싸여 집에 돌아온 즉시 이틀 밤을 꼬박 새우며 마음에 남은 이미지를 조작한 결과 오늘의 파이프적인 그림을 완성했다.”

이승조는 현대기술문명을 회화작품으로 풀어내기 위한 상징으로 로켓을 닮은 파이프 원기둥 형상을 선택했다. 동시에 평면성과 입체성, 추상과 구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환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작업을 통해 회화의 시각성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엄격한 질서 안에서 단순한 형태와 색조 변이로 전개된 파이프 형상은 이승조의 중요한 작품 언어가 됐다. 말년에는 4m가 넘는 대작을 그리며, 자신의 우주적 세계관을 더 크게 확장해나가고자 했다. 전시는 오는 10월30일까지다. 중기이코노미 김현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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