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범운영을 통해 자율적 확산을 추진하는 한편 납품대금 연동제의 법제화 논의에도 적극 참여하겠다.”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지난 8월 납품단가연동제 TF 회의에서, “법제화” 논의에 참여한다고 명시적으로 밝혔다. 법제화를 “자율적 확산”과 대비시켜, 사실상 의무화에 대한 추진 의지를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이 밖에도 이영 장관은 수 차례 납품단가연동제를 준수하지 않는 기업에 패널티를 주는 방안을 언급한 바 있다. 현재 진행중인 납품단가연동제 시범사업은 자율협약과 인센티브 중심이지만, 향후 법제화 논의에서는 강제방안이 포함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국책연구기관인 KDI에서 납품단가연동제의 의무화 시 발생하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보고서가 나오면서, 의무화가 무산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지난 27일 KDI 이화령 연구위원은 ‘납품단가연동제에 대한 경제학적 논의’ 보고서에서, “납품단가를 원자재 가격에 연동하여 위험을 분담하는 것은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거래상대방 모두에게 이로울 수 있으나, 이를 의무화한다면 효율성이 저해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원자재값 상승 심한 최근 단가연동 좋은 선택지”=보고서는 납품단가연동제에 대한 해외 연구를 토대로, 제도 자체가 가져올 실익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해외의 실증 연구결과 등을 분석해보니, “원자재 가격의 불확실성이 크고 관계특수적 투자가 중요할수록(즉, 관계특수적 투자가 이루어지는 경우 거래를 통해 창출할 수 있는 가치가 매우 높아진다면) 단가연동조항을 포함한 장기계약으로 안정적인 거래관계를 유지하고 투자를 보호하는 것이 모두에게 이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실제로 석탄 산업과 마찬가지로 산업 특성상 시장 상황의 변동성이 크고 관계특수적 투자가 중요한 천연가스나 석유 산업 등에서도 10년을 넘어서는 장기계약이 체결되고 있으며 단가연동조항을 자주 발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주별 교통국(DOT) 조달에서 단가연동조항의 효과를 분석한 6가지 실증분석 연구를 분석한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결론을 내리지 못한 연구 하나를 제외하면 모두 단가연동조항 도입 결과 입찰 경쟁이 심화되어 낙찰률이 낮아진 것을 긍정적 효과로 꼽고 있다”며, “다시 말해, 정부가 위험을 분담해 주는 대신 더 낮은 금액에 조달을 받는다는 것”을 장점으로 꼽았다. 

따라서, “원자재 가격 상승 위험이 큰 상황에서 단가연동조항을 통해 원사업자가 그 위험을 부담하면 수급사업자는 리스크 프리미엄을 더할 이유가 없어져 자연스럽게 최초 계약단가가 내려갈 가능성이 높다”며, “특히 원자재 가격 상승이 심한 최근에는 단가연동조항이 좋은 선택지일 수 있다”고 했다. 

◇“의무적으로 도입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다”=하지만 보고서는, “단가연동조항의 다양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를 의무적으로 도입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가 된다”고 주장했다.

먼저, “협상력 격차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단가연동을 강제할 경우, 원사업자가 위험을 분담해 주는 대가로 낮은 단가를 요구하는 등 거래조건이 달라질 우려가 있다”며, “제도를 도입한다면 최초 계약단가 외에도 계약기간 등 가격 외 거래조건이 왜곡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모니터링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또, “납품단가가 원자재 가격에 연동되어 상승한다면, 원사업자는 최종소비재 시장에서의 경쟁 상황에 따라 소비자에게 이 비용 부담을 적절히 전가할 수 있다”는 문제점도 제기했다. 

마지막으로, “단가연동조항을 계약에 포함하기 위해서는 연동 기준이 될 신뢰성 있고 인정받는 가격지표를 찾아야 하는데, 이러한 지표는 찾기 어려울 뿐 아니라 계약의 대상이나 기간 등 다양한 요소에 따라서도 다를 수 있어 일괄적인 적용이 어렵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보고서는 의무화 대신 자율협약이나 표준계약서 도입 등의 방식이 긍정적이라고 결론내렸다. “특정 계약 형태를 강제하기보다는, 근본적으로 협상력 격차를 완화하고 남용 행위를 규율하는 것에 정책적 노력을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현재 정부의 움직임과 같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단가연동조항의 경우 계약에 쉽게 반영될 수 있도록 표준적인 연동계약서를 제공하고 지원하는 것이 도움이 되리라 판단된다”고 했다. 

특히 “중장기적으로는 원자재 가격 변동 위험을 헤지(hedge)할 수 있는 보험이나 선물 등 금융시장을 개발하고 활용도를 제고하는 것이 시장친화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기이코노미 이창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