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정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이와 같은 민생의 위기 상황에서는 유연한 재정 운용을 통한 복지지출 확대와 세제 정상화를 통한 부의 재분배가 시급하다. 즉, 정부가 재정을 확대해 사회안전망 등 복지를 강화하고, 자영업자와 영세기업 등 경제적 약자들을 지원하는 여러 정책들을 펼쳐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이에 역행해 재벌·부자 감세 정책과 민생·복지 예산의 대규모 축소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재정건전성을 강조한다. 세입을 줄이면서 재정건전성을 유지하고, 또한 복지지출을 늘리는 요술 방망이는 없다. 결국 윤석열 정부의 이러한 정책은 복지의 축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이를 ‘약자 복지’로 칭했는데, 서민 다수의 삶을 지켜주기 보다 최소한의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가장 낮은 수준의 복지지출을 하겠다는 선언과 같다. 그렇지 않아도 OECD 최하위 수준인 GDP 대비 복지지출이 더욱 줄어들 형편에 처한 셈이다. 이래서야 민생의 위기 속에서 서민들의 삶을 지켜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노인, 청년, 지역, 소상공인…사회적 수요 따라가지 못하는 긴축 예산

윤석열 정부는 지난 9월 총수입 625.9조원, 총지출 639조원 규모의 2023년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총지출이 전년대비 5.2% 증가했다고 하지만, 올해 5%가 넘는 물가상승률이나 노인인구 증가율 등을 고려하면 이는 사회적 재정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실상 긴축과 다름없다.

실제로 윤석열 정부는 주거안정 수단으로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공공임대주택 예산 삭감에 이어 코로나19 상황에서 그 중요성이 다시금 확인된 지역거점병원 등 공공의료 예산도 감액했다. 지역경제와 자영업자 살리기에 큰 역할을 했던 지역화폐 예산도 전액 삭감됐고, 노인 일자리, 돌봄, 청년, 에너지바우처 등 복지예산도 줄줄이 삭감됐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윤석열 정부는 대폭 확충해도 모자랄 공공임대주택 예산 5.7조원을 삭감했다.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국민임대, 영구임대, 다가구매입임대, 전세임대, 노후 공공임대주택 리모델링 등 공공임대주택 관련 예산은 물론이고, 중위소득 이상 입주 가능한 행복주택, 통합공공임대, 공공임대융자, 임대주택리츠 예산도 줄줄이 삭감됐다. 지난 8월 비극적인 수해 참사로 인해 주거취약계층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됐고, 이로 인해 주거취약계층과 저소득 무주택 가구의 주거 상향을 위한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 필요성이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관련 예산을 무려 5.7조원이나 삭감한 것은 윤석열 정부에게 당시 사태는 현장 행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방역조치 등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를 빚내서 버텨온 중소상인, 자영업자들은 최근의 경제적 위기와 함께 급격한 플랫폼 경제로의 전환 과정에서 과도한 수수료 부담, 각종 불공정 행위 등 이중삼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 지난 8월 서울행정법원이 2021년 7월7일 이후 발생한 코로나19 방역정책 피해에 대해서만 손실보상을 실시하는 소상공인법 부칙규정에 대해 위험심판제청을 결정하는 등, 손실보상 소급적용 필요성이 재차 확인됐음에도 불구하고, ‘온전한 손실보상’을 공약한 바 있는 윤석열 대통령의 다짐은 이를 위한 예산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윤석열 정부는 지역경제를 활성화해 골목상권을 지탱하는 데 큰 역할을 해온 지역화폐 예산 6050억원을 전면 삭감했다. 지역화폐의 실효성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하지만, 지역화폐의 효과는 이미 수차례 검증된 바 있다. 대선 전에는 그렇게 챙기던 중소상인과 자영업자에게 윤석열 정부는 예산 삼각을 안겨 주었다.

삭감된 공공임대주택 예산, 지역화폐 예산은 물론 온전한 손실보상을 위한 예산 등 사회적 약자와 서민들을 위한 민생·복지 예산을 꼼꼼하게 챙겨야 한다. 민생과 복지 예산 확충을 위한 국회의 역할을 촉구한다.   ©중기이코노미

보육, 의료 등 인프라 투자 인색…의료영리화 등 민간 이해엔 넉넉

복지사각지대의 비극적 사건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2023년 보건복지부 기초생활보장분야 예산은 19조5294억원으로 전년 추경대비 7.1% 증가했지만, 이는 내년 4인 가구 기준 중위소득 5.47% 인상(2022년 5,121,080원 → 2023년 5,400,964원)과 일부 제도 확대에 따른 결과다. 자연증가분을 반영한 수준의 예산 증액으로 저소득층의 삶을 효과적으로 개선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2023년은 초고령사회로의 진입이 예상되는 해다. 하지만 노인복지예산은 노인인구 증가율조차 반영하지 못하고 오히려 전년 수준보다 낮아져 노인복지 퇴행을 우려해야 할 처지다. 노인과 공적연금 사업은 물가상승률과 노인인구 증가율을 고려하면 10% 이상 증가해도 사실상 제자리걸음인 상황인데도, 전년대비 노인복지 예산의 증가폭은 11.6%로 지난 3년과 비교해 가장 낮은 수준이다.

전체 90%가 넘는 미취학 아동이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이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육서비스의 질적 향상을 위한 공공 인프라 확충이나 종사자 처우 개선 예산은 정책 순위에서 밀려났다.

건강보험 국고지원은 이번에도 법정지원금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편성됐다. 공공병원 확충 및 지원, 의료인력 확충, 건강보험 국고지원 등에는 예산을 아예 편성하지 않거나 턱없이 부족하게 편성하고, 공공어린이재활병원 운영비 등을 전액 삭감하는 등 복지예산은 쥐어짜는 반면에, 기업들을 의료로 돈벌이하게 만드는 의료민영화 예산은 확대했다.

재벌·부자만 배불리는 윤석열 정부…이제 민생·복지 위한 국회의 시간

서민들의 삶을 지원할 민생 예산이 줄줄이 삭감된 것과 대비해, 윤석열 정부는 지난 세제개편안을 통해 대기업에 대해서는 대규모 감세를, 자산가들에 대해서는 과세 유예를 약속한 바 있다.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와 가업상속공제 요건 대폭 완화, 주식양도세 완화 및 금융투자소득과세 유예 등이다. 누적법으로 보면, 향후 5년간 60조원의 세수가 줄어든다. 그 혜택 대부분을 대기업과 자산가가 차지하게 된다. 복지는 최소한으로 줄이고, 대기업과 자산가만 배불리는 윤석열 정부 재정운용의 실체다.

최근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취임 44일 만에 사임을 발표하며, 최단기 총리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지난 9월23일 재정 전망도 없이 450억파운드(약 73조원) 규모 감세안을 발표해, 영국 국채 금리 급등과 파운드화 급락 등 금융시장에 충격을 일으킨 데 따른 결과다. 사회적 요구를 반영하지 못한 사실상 긴축안을 내놓은 윤석열 정부 역시 이를 반면교사 삼아야 할 것이다.

이제 국회에서는 예산안 심의가 이뤄진다. 윤석열 정부에 대한 규탄과 함께 국회에 대한 감시가 요구되는 시기다. 삭감된 공공임대주택 예산, 지역화폐 예산은 물론 온전한 손실보상을 위한 예산 등 사회적 약자는 물론 서민들을 위한 민생·복지 예산을 꼼꼼하게 챙겨야 할 것이다. 민생과 복지 예산 확충을 위한 국회의 역할을 촉구한다. (중기이코노미 객원=김은정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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