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 구독서비스 ‘런드리고’가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11월7일 런드리고를 운영하는 의식주컴퍼니가 300억원의 투자를 유치하는데 성공했는데, 이번 투자에서 의식주컴퍼니의 기업가치는 3000억원으로 평가받았다. 최근 금리인상과 함께, 투자가 주춤해지는 와중에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런드리고는 단연 주목할 만하다.

런드리고는 2019년에 출시된 세탁 구독서비스다. 사용자는 세탁수거함에 빨래를 담아 문 밖에 내놓고, 런드리고 앱에서 밤 10시 전까지 ‘수거 신청’ 버튼만 누르면 된다. 런드리고가 빨랫감을 수거해 가서 깨끗하게 세탁한 후, 다음 날 사용자의 문 앞에 가져다 준다. 수건, 속옷, 운동화 등 다양한 빨래를 처리할 수 있으며 드라이클리닝 서비스도 가능하다. 런드리고의 월 순 이용자는 10만여명에 달하며, 매출은 2021년 기준 150억원에 달한다.

현재 런드리고뿐만 아니라 다양한 세탁 구독서비스가 인기를 끌고 있다. 집집마다 세탁기는 있을 텐데, 왜 세탁 구독서비스가 이리도 각광을 받는 것일까?

◇손 안에서 이뤄지는 ‘삶의 질 혁신’=스마트폰이 일상으로 자리 잡은 지 어느덧 10여 년이 넘었다. 우리는 모바일 앱으로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고 있다. 인간 생활의 기본요소로 손꼽히는 의, 식, 주도 예외는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집을 알아보거나 이사를 할 때 부동산 앱과 이사 서비스 앱을 이용한다. 식사는 배달의민족, 요기요 등으로 주문한 지 이미 오래다. 가장 마지막으로 남은 것이 ‘의’였다. 빨래는 무조건 해야 하는 가사노동인데, 런드리고와 같은 세탁 구독서비스는 피할 수 없는 세탁 노동의 고단함을 파고들었다.

많은 현대인들이 의식주를 가꾸는 데 시간과 노력을 쏟기보다는 그 시간에 다른 활동을 하거나 휴식하는 것을 선호한다. 과거에는 이러한 수요를 가전제품으로 해결하려 했다. 청소기와 식기세척기, 세탁기와 스타일러 등의 기기가 인기를 끈 이유다. 이제는 모바일이 일상으로 자리잡으면서, 모바일 앱을 통해 전문가에게 의식주와 관련한 노동을 맡기는 서비스까지 다양해졌다. 청소 서비스 앱을 통해 전문가를 불러 집안 청소 또는 가전 청소를 맡기는 것처럼, 빨래도 세탁 구독서비스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다.

삶의 질을 개선하려면 가사노동에 소요하는 시간을 줄일 수밖에 없고, 이에 세탁 구독서비스가 각광받았다고 분석할 수도 있다. 2020년 기준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1908시간이다. OECD 회원국 평균은 1687시간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평균보다 연 221시간 더 일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일평균 통근시간도 58분으로, OECD 회원국 중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한다. OECD 회원국의 일평균 통근 평균은 28분이다. 그만큼 휴식과 여가, 자기계발에 쏟는 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삶의 질이 개선되려면 노동에 소요하는 시간이 적정 수준이어야 하지만, 생계가 달린 노동자가 일하는 시간을 마음대로 줄이기란 어렵다. 따라서 가사노동에 들이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다. 이러한 수요가 세탁 구독서비스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는 전업 주부들이 가사 일을 도맡아 했지만, 요즘에는 맞벌이를 하는 가정이 많기에 더욱 그렇다.

런드리고는 ‘오늘 밤 맡기고 내일 밤 받는 모바일 세탁소’를 표방하는 만큼 쉽고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정기적으로 세탁을 맡길 경우 월 정액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으며, 원할 때 원하는 품목을 원하는 양만큼 세탁하고 싶다면 자유 이용 서비스를 이용하면 된다. 앱에 접속하면 세탁 과정과 진행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어, 사용자의 신뢰를 끌어올렸다.

런드리고를 비롯한 세탁 구독서비스의 열풍 뒤에는 좁고 열악한 청년 등 서민들의 주거 현실이 숨어 있다. 팍팍한 일상을 돕는 기술과 서비스는 나날이 발전하는데, 청년 등 서민을 위한 실질적인 국가 정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미지=이미지투데이>

◇숨겨진 청년세대의 열악한 주거 현실=세탁 구독서비스의 주요 고객은 2030 청년이다. 혹자는 ‘왜 자기 빨래도 스스로 못 하느냐’라고 폄하하지만, 청년 세대가 단순히 바쁘고 귀찮아서 빨래를 맡기는 것이 아니다. 런드리고를 비롯한 세탁 구독서비스의 흥행은 주요 고객인 2030 청년 세대의 주거 열악성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선 2030 청년 1인 가구가 부쩍 늘었다. 2021년 8월 통계청이 발표한 ‘2020 인구주택총조사’와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2020년을 기준으로 2030 청년 1인 가구는 238만3000명으로 1년 전보다 22만9000명이 늘었다. 전체 1인 가구(664만3000가구) 중에서는 35.9%를 차지했다.

여기서 청년 1인 가구의 거주 환경이 어떻게 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20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2020년 전국 일반가구 2046만4080가구의 가구당 주거 면적은 70.1㎡(21.2평)으로 집계됐다. 평균 가구원 수(2.36명)를 감안한 1인당 주거 면적은 29.7㎡(9.0평)으로 나타났다. 특히 서울에 위치한 다세대주택의 경우 1인당 주거 면적이 불과 20.5㎡(6.2평)에 그쳤다. 이는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 크게 뒤지는 수준이다. 미국의 1인당 주거 면적은 65.0㎡(2019년 기준)로 우리나라의 2.2배에 달한다. 일본(40.2㎡, 2018년 기준)이나 영국(40.5㎡, 2018년 기준)도 1인당 주거 면적이 우리나라보다 넓다.

턱없이 좁은 자취방에서는 빨래를 해결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 원룸에서 옵션으로 제공되는 세탁기의 용량은 9kg 남짓으로 이불 빨래가 불가능한 수준이다. 일반 의류는 빨래할 수 있지만, 빨래를 말릴 공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건조대를 펼치면 원룸이 꽉 차는 것은 물론이고, 집안 전체가 빨래의 습기로 눅눅해진다. 학교나 직장에 다니면 집을 비우는 시간이 긴 만큼, 하루종일 환기를 하기도 어렵다.

혼자 사는 직장인이라면 빨래를 하는 시간에도 제약이 있다. 주말에 몰아서 빨래를 하는 것이 최선이다. 평일 저녁에 퇴근하고 와서 세탁기를 돌리면 층간 소음 우려가 있다. 방음이 열악한 주택이라면 더욱 그렇다. 정장이나 외투는 세탁소에 맡기지만 일반 빨래까지 전부 세탁소에 맡기기도 어렵다. 심지어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세탁소가 이미 문을 닫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청년 세대 사이에서는 집을 구하는 데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코세권’을 손꼽기도 한다. 코세권이란 ‘코인빨래방 인근에 거주한다’는 뜻이다. 코인빨래방이 없으면 집에서 빨래를 처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원룸이 코세권에 자리한 것도 아니다. 결국 수요는 모바일 세탁 구독서비스로 향할 수밖에 없다. 즉 세탁 구독서비스의 열풍은 ‘세탁’이라는 필수 노동마저 집 안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주거 현실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팍팍한 일상 덜어주는 서비스 좋지만=기술의 본질은 인간의 삶을 개선하는 것이다. 런드리고를 운영하는 의식주컴퍼니는 세탁 산업의 혁신을 시작으로 의식주 산업 전반의 문제를 찾고 해결하려 노력하고 있다.

런드리고의 경쟁자는 ‘가정 내 세탁기’로 지칭되는데, 집 안에 세탁과 관련한 가전제품이나 일거리가 사라진다면 이것이 곧 주거 공간과 생활의 여유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향후에는 여기서 새로운 가치와 서비스도 창출될 것으로 보인다.

런드리고를 비롯한 세탁 구독서비스의 열풍에는 노동에 소요하는 시간은 길고 주거 환경은 열악한, 현대인의 팍팍한 삶이 깃들어 있다. 이는 하루빨리 해결돼야 할 문제다.

그런데 기술과 서비스는 사용자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며 나날이 발전하는데, 국가 정책은 서민들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얼마나 실질적인 조치를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생활 속 서비스의 열풍 속에 숨겨진 현실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개선할 방안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중기이코노미 안수영 기자

<저작권자 ⓒ 중기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