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여만에 은행을 찾았다. 10평 남짓한 은행 내부 대기공간에는 20여명이 서 있거나 앉아 있었다. 인터넷으로 대부분의 은행 업무를 볼수 있기에 은행을 직접 찾지 않아도 되는데, 의아해 은행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그리 많은 수는 아니란다. 최근 은행을 직접 찾는 이가 크게 늘었다는 것이다. 이유를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듯했다. 은행 창구에서 들리는 소리로 짐작하니, 낮은 금리로 넣어둔 적금을 깨서 옮길만한 상품을 찾는 이들이 많아 보였다.

한국은행이 지난 9일 발표한 ‘10월 금융시장 동향’ 자료를 보면, 정기예금이 2002년 1월 통계 작성 이래 월 기준 최대인 56조2000억원이 늘었단다. 반대로 수시입출식예금은 44조2000억원이 줄었단다. 예금금리가 크게 오르자 생긴 일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중에 현금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은행을 찾아가는 것이 마치 유행처럼 번진 것이다. 최근 은행 예금금리 평균치 선으로 여겨지는 5%를 기준으로, 1억원을 은행에 넣어두면 1년에 세후 400만원 가량 이자수익이 생긴다. 제법 목돈이다. 은행을 찾아 많게는 수천만원에서 적게는 수백만원까지 그간 모아둔 목돈을 종잣돈으로 이자를 조금 더 불리기 위해 발품을 파는 것이다. 

금리가 빠르게 올라, 매달 수백만원에 이르는 대출 이자에 버거워하기도 하고, 반면에 매달 이자수익을 챙기기 위해 발품을 팔면서 모두 은행만 바라보고 있는 형국이 돼 버렸다. 국내 5대 시중은행의 올해 3분기까지 누적 당기순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최대 20% 이상 늘었단다. 역대급 실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시중에 유통될 돈이 은행으로만 몰리게 되면, 시장이 유연하게 돌아가기 어렵다. 여기에 3중고(금리·환율·물가)시대에 중소기업 역시 은행과 돈줄을 연결하지 못하면 당장 유동성이 심각해진다. 

한 소기업 대표는 땅문서만 있으면 은행, 최소한 어느 한 은행에서만큼은 무난히 대출받을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결국 제2 금융권을 찾아야만 했다고 하소연한다. 3중고와 레고랜드 사태로 더욱 악화된 자금경색 국면에서 한계 중소기업이 양산될 우려가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는 분석을 허투루 들을 수 없는 때다. 

경제가 어려워지며 투자를 줄이고 저축을 늘려 통화유통 속도가 떨어지는 지금을 전문가들은 ‘돈맥경화’라고 진단한다. 중소기업의 자금 사정이 원활하지 않은 지금, 유동성 문제로 어려움에 처할 기업이 늘어날 것은 충분히 예상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중소기업의 은행 문턱은 여전히 높다. 금융기관 뿐만아니라 정부가 당장의 자금조달을 비롯해 중소기업·소상공인의 상황에 맞는 금융지원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중기이코노미 채민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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