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납세자의 소득세와 부가가치세 실효세율을 1%p씩 인상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국책연구기관인 KDI(한국개발연구원)가 지난 24일 내놓은 ‘코로나19 이후 재정여력 확충을 위한 정책과제’ 보고서는 “최근 우리나라의 소득세와 부가가치세의 세수 비중은 소폭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OECD 평균에 크게 미달하는 점”을 고려해 이같이 제언했다. 

그런데, 법인세는 인상대상에서 제외한 대목이 눈에 띈다. 증세가 반드시 필요하다 하더라도, 그 부담을 소비자와 개인에게만 전가하자는 건 균형감각을 잃은 극단적인 주장이 아닐 수 없다. 국책연구기관의 무게감을 생각하면 더욱 우려가 된다. 증세에 대한 정부의 뜻이 무엇인지 밝힐 필요가 있겠다. 

증세의 필요성에 대한 보고서의 연구는 깊이가 있다. 통계청의 장례인구 추계에 따르면, 2060년에는 총인구가 4280만명으로 2021년의 82.7% 수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장기적인 경제성장률 하락 전망까지 보태면, 2060년의 국가채무비율은 144.8%로 2020년(43.8%)의 세 배를 뛰어넘는 수준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한다. 

보고서는 이같은 재정여건 악화의 해법으로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개편, 재량지출의 추가 통제, 세입기반 확충 등을 제언하고 있다. 각각의 주제에 나름의 논란거리가 있지만 세입기반 확충에만 집중해서 보면, OECD 국가들과의 비교를 토대로 소득세와 부가가치세 증세의 필요성을 피력하고 있다. 

실제로 OECD 국가들이 “노년부양비가 15%에서 20%로 확대되는 동안 주로 부가가치세와 소득세에 의존해 재원을 조달했다”는 점을 보고서는 주목했다. 이 기간 GDP 대비 부가가치세 세수 비중이 3% 중후반 수준에서 평균 3%p 확대됐다는 것이다. 

동시에, “OECD 국가들의 법인세수 비중은 인구고령화와 상관없이 3% 수준을 평균적으로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한 점이 눈에 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OECD 국가들은 정부 재원조달을 위해 조세의 초과부담이 상대적으로 작은 부가가치세와 소득세의 세부담을 확대한 반면, 경제의 비효율성을 초래하는 법인세의 부담은 확대하지 않았다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법인세 인상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법인세 인상을 반대하는 이유로 경제의 비효율성 초래를 들었는데, 반면 부가가치세나 소득세의 인상이 소비와 경제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분석이 빠진 것은 쉽사리 이해할 수 없다. 실제로 2010년대 들어 두 차례 부가가치세를 인상했다, 소비위축으로 몸살을 앓은 일본의 사례는 너무나 유명하다. 

또, 모든 소비자(부가가치세)와 모든 개인소득자(소득세)에게 증세 부담을 안기면서 법인만은 예외로 하는 것이 조세저항이나 사회갈등을 유발할 가능성을 분석대상에서 제외한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 조세저항이나 사회갈등은 그 자체로 증세에 따른 회계적·경제적 비용이다. 이 비용을 감수하고서라도 법인을 제외한 균형감각 없는 증세를 실행하는 것이 어떤 경제적 합리성이 있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재정여건을 건전하게 유지하는 것은 마땅히 고민해야 할 일이고, 인구고령화에 속도가 붙을 경우에 대비한 장기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국책연구기관이 법인세와 부가가치세 및 소득세에 대해 판이하게 다른 태도를 보이는데다 균형감각 마저 찾아볼 수 없으니, 소비자와 개인소득자들 사이에서 불안감이 확산될 가능성이 엿보인다. 

정부는 소비자와 개인소득자를 대상으로 한 증세에 대한 입장을 정리해 납세자들이 느끼는 불안감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 더군다나 법인에 대한 감세를 추진 중인 정부이니만큼, 법인세 감세와 국가 재정여건과의 관계에 대한 해명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솔직하게 드러내놓고 일관성있고 책임감있는 입장표명을 하지 않는다면, 현재 추진 중인 감세 역시 설득력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점에 특히 유념해야겠다. 중기이코노미 이창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