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보다 먼저 중대재해 문제를 고민했던 선진국은 촘촘한 정부 규제와 처벌만으로는 더 이상의 감축이 어렵다는 점을 인식하고 1970년대 이후 사전예방에 더욱 중점을 두고 노사의 자발적 노력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했습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30일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기존의 산재 정책에 한계가 있었다며 자기규율 예방체계로 산재 정책을 전환한다고 밝혔다. 특히, 근로자 의무 법제화 등 근로자 의무에 대해 강조하고 나섰다. 

로드맵 수립 배경에 대해서는, 2021년 사고사망 만인율(1만명당 사망 비율)이 OECD 38개 나라 중 34위에 머물러 있으며 최근 8년째 정체 수준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등 처벌을 강화했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산재 예방을 위한 정부의 감독 역시 미흡했다고 비판했다. “내년 2~3만 개 사업장에서 산업안전 감독을 실시하고 있으나 적발과 처벌에 중점을 두어 운영하고 있어 특별감독을 실시한 기업에서조차 사고가 재발”했다는 것이다. 

올해 1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지만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사업장의 사망사고는 오히려 증가했다”며, “법 준수 여건이 취약한 중소기업은 아예 안전관리를 포기하거나 방치하기도 한다”고 했다. 

특히,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화됐던 한 식품회사의 경우 5년간 동일 ·유사한 끼임사고가 15건이나 발생했음에도 별다른 대책을 취하지 않은 채 생산을 계속해 오다 결국 끼임 사망사고로 이어진 바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노사 모두 안전을 안전담당 직원의 일로만 인식하고 있어 안전보건 주체로서의 책임 있는 행동은 부족하다”며, “근로자도 스스로를 보호 대상으로서만 생각하고 있어 자립적인 안전행동, 동료 근로자에 대한 배려 등 근로자의 의무 이행은 미흡하다”고 했다. 

◇근로자 의무 명시…안전수칙 준수, 포상·제재 연계토록=이에 따라 정부는 근로자의 핵심 안전수칙 준수 의무를 산업안전보건법에 명시하겠다는 방침이다. 또, 작업 현장에서의 안전수칙 준수 여부에 따라 근로자에 대한 포상과 제재가 연계될 수 있도록 표준 안전보건 관리규정을 마련·보급하고 취업규칙 등에 반영토록 지도할 계획이다. 

자기규율 예방체계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사업주, 관리자, 근로자 등 안전보건 주체가 각자의 역할과 권한에 맞는 책임과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근로자의 안전보건 참여도 확대한다. 산업안전보건법상 근로자 참여 기구인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설치 대상을 100인 이상에서 30인 이상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사업장 안전문화 수준을 측정하기 위해 한국형 안전문화 평가지표도 개발·보급한다. 

근로자 안전교육을 현장 중심으로 확대해 강화하고, 50인 미만 기업 CEO 대상 안전보건교육 기회도 확대 제공한다. 초·중·고·대학 등 학령 단계별 안전보건교육을 강화하고 구직자 대상 직업훈련과 재취업 시 안전보건교육을 포함한다. 

◇중대재해법 제재 변경, 처벌 구체화=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서는 “제재 방식 개선”을 예고했다. 위험성평가와 재발방지대책 수립‧시행 위반 등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핵심 사항 위주로 처벌요건을 명확화하고, 중대재해 예방의 실효성을 강화하고 안전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선진국 사례 등을 참조해 제재방식 개선, 체계 정비 등을 강구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2013년 산업안전보건법에 도입된 위험성평가를 내년부터 2015년까지 단계적으로 의무화한다. 위험성평가제도가 현장에 안착될 수 있도록 안전보건법령과 감독체계도 전면 개편한다. 

중대재해 발생 사업장에 대한 산업안전감독관의 작업 중지는 범위, 기간, 해제 절차 등을 합리화하는 한편,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는 사전예방 목적의 한시적 작업 중지도 추진한다. 

중소기업 컨설팅 확대와 근로자 안전 확보 목적의 CCTV 설치 제도화도 추진하고, 하청 근로자 재해 예방을 위해 원·하청 기업 간 안전관리 역할을 명확히 한다. 

이정식 장관은 이날 발표한 로드맵을 차질 없이 추진한다면 2026년까지 사고사망만인율을 OECD 평균 수준으로 낮출 수 있을 것이라며, 과거 선진국들도 자기규율 예방체계를 통해 중대재해를 감축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중기이코노미 이창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