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69시간제로 불리는 근로시간 개편안을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피력했다. 재계까지 논란에 가세해 찬성 의사를 밝히면서, 근로시간 개편에 반대하는 노동계와의 충돌을 예고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28일 경제5단체 부회장, 고용노동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한 간담회 자리에서, “주 단위 상한 등 근로시간 제도의 경직성 완화와 함께 공짜노동 등 불공정·불합리한 관행을 근절한다면 궁극적으로는 기업의 경쟁력을 높여 노사 모두 윈-윈(win-win)할 수 있을 것”이라고 최근 입법예고한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의 취지를 설명했다. 

아울러, “개편안 입법예고 후, 현장에서는 일하는 시간이 과연 줄어들 것인가, 오히려 늘어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며, “최근 현행법 위반내용까지 담아 개편안에 대해 풍자하는 유튜브 영상 등이 나온 것은 우리 노동현장에 대해 국민들이 느끼시는 우려와 불안감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정식 장관은 근로시간 개편안의 철회는 물론 추진 중단이나 연기 등을 시사하지 않았다.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조치만 강조해, 사실상 강행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장관은 “포괄임금 오남용, 임금체불, 공짜야근 등 불법·편법 관행에는 무관용 원칙으로 강력히 대처하고, 제도개선, 근로감독 강화 등을 통해 준법과 신뢰의 노동질서를 확립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또, 출산율을 높이고 일·가정 양립을 위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적극 노력하겠다며, “출산휴가, 육아휴직 등을 부여하지 않거나 육아휴직 사용을 이유로 불이익을 주는 등 위법하고 잘못된 기업문화는 단호히 바로잡겠다”고 밝혔다. 

기업들에는 “포괄임금 오남용 등으로 실제 일한 만큼 정당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불공정성을 해소할 수 있도록 임금체계를 개편해 주시고, 투명한 근로시간 기록·관리 확산에도 힘써 주시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동시에 “눈치 보지 않고 휴가·휴직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환경 조성, 퇴근 후 업무연락 자제 등 기업문화 혁신, 디지털 시대에 걸맞는 일하는 방식 개선 등을 통해 근로시간을 실질적으로 줄이기 위한 노력도 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재계 “근로시간 줄여야 한다”면서=재계 역시 근로시간 개편에 찬성하고 나섰다. 이날 간담회에서 경총 이동근 부회장은 “현행 주 40시간과 주당 연장근로를 12시간으로 제한하는 방식으로는 IT, 스타트업, 수주산업 등의 경우 갑작스런 업무증가나 불규칙한 업무발생에 대응이 어렵다”고 말했다. 

또, “노동계는 69시간제라고 왜곡하며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금번 제도 개선의 취지는 근로시간을 늘리자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것인지의 문제”라며, “극단적인 상황을 일반화해서 왜곡해선 안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경제계도 우리나라가 OECD 평균보다 장시간근로를 하고 있고, 근로시간을 점진적으로 줄여나가야 한다는데 공감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휴가를 활성화하고 노동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노사의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포괄임금제에 대해서는 “노사 합의로 운영되고 약정된 시간을 채우지 못해도 수당을 지급한다”면서도, “다만, 실제 근로한 시간이 많은데도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문제는 개선되어야 하며 경제계도 적극 계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노동계 “69시간제 폐기가 우선”=하지만 노동계는 69시간제로 불리는 근로시간 개편안에 대해 폐기를 촉구했다. 

앞서 27일에도 이정식 장관은 정책점검회의에서 공짜 노동으로 상징되는 근로시간 위반, 임금체불과 함께 근로자의 정당한 권리인 연차휴가,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 사용을 방해 또는 불이익 등의 문제에 대해 “법이 확실하게 지켜질 수 있도록 올해 강력한 단속과 감독을 통해 산업현장의 법치를 확립할 것”을 지시한 바 있다. 

이날 한국노총은 대변인 구두논평을 통해 “장관이 할 일은 이번 정부의 ‘주69시간 노동시간 개편안’이 섣부른 정책이었음을 시인하고 폐기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꼬집었다. 

또, “정부 개편안은 그대로 둔 채 일선 지방관서에 법이 확실하게 지켜질 수 있도록 강력한 단속과 감독을 지시”한 데 대해서도 “주52시간 상한제가 정착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그 근간을 흔들려는 정책을 개편안으로 낸 것은 누구인가”라며, “일선 담당자들에게 강력한 단속과 감독을 지시하는 것은 책임회피의 전형”이라고 비판했다. 

마지막으로 “주 69시간 노동시간 개편안을 폐기하고, 노동자들의 휴식권 보장 및 저출생 문제해결을 위한 노동시간 단축 방안을 새로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중기이코노미 이창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