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 건설기업인 A사는 핵심인력이 대기업으로 이직하면서 수주한 프로젝트가 한때 중단되는 위기를 겪었다. 다른 중소 건설업체들도 핵심인력의 잦은 유출로 인해 프로젝트가 중단되거나 지연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심지어 일부 직원은 주요 설계도면을 빼돌렸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중소기업들이 대기업에 인력 스카우트 자제를 공식 요청하기도 했으나 효과는 미미했다. 이직 시 수천만원의 일시금에 1.5배 가량의 연봉 인상 등을 조건으로 내걸다보니 유능한 인재들을 묶어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리튬전지를 생산하는 중소기업 B사는 수년간 집중 투자를 통해 양성한 기술인력이 대기업으로 이직하면서 기술유출을 경험했다.

이처럼 중소기업의 전문 인력이 대기업으로 이직하는 과정에서 기술이 빠져나가는 사례가 늘고 있다.

중소기업청이 주최한 ‘2014 중소기업기술 보호 세미나’가 3일 중소기업중앙회 그랜드홀에서 열렸다.   ©중기이코노미

지난 3일 중소기업청이 주최한 ‘2014 중소기업기술 보호 세미나’에서 손승우 단국대 법과대학 교수는 이같은 중소기업의 전문인력 유출로 인한 기술유출 현황을 발표했다. 손 교수에 따르면 회사 내 부설연구소를 보유한 중소기업 중 기술유출을 경험한 기업은 12.5%에 이른다.

기술유출을 경험한 중소기업들이 꼽은 기술유출 경로로는 대기업의 인력 스카우트가 42.2%로 가장 많았다.

특히 대기업의 인력 스카우트로 인한 피해를 가장 많이 입은 업체는 대기업 납품업체였다. 최근 5년 내 기술인력을 한번 이상 빼앗긴 중소기업의 75%가 대기업 납품업체인 것으로 조사됐다.

소프트웨어 중소기업인 C사는 외국계 기업이 핵심 기술인력을 조직적으로 채용해간 탓에 기술유출과 도용의 우려를 겪었다.

반도체 관련 중소기업인 D사의 전문 기술인력은 회사와 전직금지 약정을 체결한 뒤, 이를 파기하고 경쟁업체로 이직해 기술을 유출하기도 했다.

금형관련 기업인 E사는 대기업이 다년간 숙련된 핵심인력을 대규모로 스카우트해가는 바람에 경영상 손실을 입었다. 이 업종은 최저 4년의 숙련기간이 소요되며 숙련인력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피해가 더욱 컸다.

부당한 핵심인력 유출 막기위한 제도적 장치 미비

손 교수는 그러나 중소기업 인력 유출을 방지하는 데는 한계가 분명하다고 밝혔다. 개인의 기본권인 직업선택의 자유에 대한 침해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부당한 핵심인력 유출에 대한 법적 기준도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실정이다.

여기에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과 복지, 근로환경의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는 점도 인력 유출 방지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한다.

정부는 한때 중소기업의 인력이 대기업으로 이직할 경우 이적료를 지급하는 제도의 마련을 검토한 바 있으나, 중소기업계의 반대로 무산되기도 했다. 프로스포츠에서 선수가 이적할 경우, 선수를 영입한 팀에서 원 소속팀에 일정 대가를 지불하는 제도를 차용하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중소기업중앙회는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는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인력 유출 문제의 심각성을 이해하고 정부가 해법을 제시하는 취지는 옳으나, 그 문제를 이적료 가이드라인 제시로 해결하려는 것은 오히려 기술인력 유출을 정당·합법화 시킬 뿐, 근본대책이 될 수 없다고 판단된다”며 반대입장을 밝힌 바 있다.

개별 기업 차원에서 핵심 기술인력 채용 시 동종업계로의 전직금지나 겸업금지의 약정을 체결하는 방안 역시 한계가 있다. 판례는 이같은 약정 계약을 유효한 것으로 인정하고 있으나, 전직금지 기간이 지나치게 긴 경우에는 무효라는 판례도 있다.

유효한 전직금지 약정을 체결하기 위해서는 원칙적으로 서면계약을 맺어야 한다. 또 유효한 대가를 보장해야 하며, 제한범위가 구체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중소기업의 전문인력 유출에 대한 법적 규제는 공정거래법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공정거래법 시행령 제5조를 보면 “정상적인 관행에 비추어 과도한 경제상의 이익을 제공하거나 제공할 것을 약속하면서 다른 사업자의 사업활동에 필수적인 인력을 채용하는 행위”의 경우 공정거래법 3조의2가 정한 “시장지배적 지위의 남용 금지”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 조항은 모든 대기업에 대해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시장지배적 지위를 가진 독점적 사업자에 한해서만 적용된다. 또 핵심인력 유출행위가 경쟁을 저해할 수준이어야 하며, 과도한 경제상의 이익을 제공할 것을 약속한 경우에 한해 적용돼 중소기업의 피해 구제가 쉽지 않다.

피해 중소기업을 돕기 위해 중기중앙회가 ‘기술인력 유출 신고센터’를 운영하고, 동반성장위원회가 중소기업 핵심인력 유출문제의 심의와 중재를 위한 ‘전문인력유출 심의위원회’를 구성했지만 기관에 대한 인지도나 활용도는 높지 않은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중소기업의 인력 유출에 대해 대증요법을 제시할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적료 도입 논란 당시 중기중앙회는 “경제민주화의 일환으로 꾸준히 제기하고 있는 ‘시장 및 거래상의 불공정 해소’만이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인력 빼가기를 방지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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