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 제도 개편과 관련한 국민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현장, 그리고 국민과의 소통이 중요합니다.”

지난 10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전국 지방관서장들이 모인 노동개혁 추진 점검회의에서 이같이 말했다. 현장·국민과의 소통을 이토록 강조했는데, 과연 고용노동부는 주 69시간제라고 불리는 근로시간 개편과 관련해 누구와 어떤 소통을 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이정식 장관이 소통을 강조한 이유는, 정부의 개편안에 대한 반대 여론이 더 높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실제로 지난 3월 갤럽이 전국 만 18세 이상 100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정부의 개편안에 대해 ‘불규칙·장시간 노동, 삶의 질 저하 우려되어 반대’라는 응답이 56%로 과반수를 넘었다. ‘바쁠 때 몰아서 일하고 길게 쉴 수 있어 찬성’은 56%에 그쳤다. 이외에도 다수의 여론조사에서 정부의 개편안에 대한 반대 여론이 뚜렷이 감지되고 있다. 

반대여론을 의식해서인지, 회의 자리에서 이정식 장관은 포괄임금 오남용에 대한 기획감독이나 장시간 근로에 대한 감독 강화 등을 거론했다. 하지만 근로시간 개편 시 주 60시간씩 몰아서 일을 하는 것 자체가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12일 민주노총은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안 입법예고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했는데, 여기서 고용노동부 고시 중 한 대목을 인용했다. “발병 전 12주 동안 업무시간이 1주 평균 60시간(발병 전 4주 동안 1주 평균 64시간)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업무와 질병과의 관련성이 강하다고 평가한다”는 내용인데, 과로로 인한 업무상 질병의 인정기준 중 일부다. 실제로는 이보다 더 적은 근로시간으로도 산재가 인정될 수 있다. 

민주노총은 또 “미국의 한 연구에 따르면 연장근로를 하지 않는 노동자보다 연장근로를 하는 노동자에게 사고의 발생 위험이 61%가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에서는 하루 근무시간이 12시간을 초과하는 경우나 주당 노동시간이 60시간을 넘는 경우 사고 발생률이 37%까지 증가한다고 했으며 1주 노동시간이 64시간이 넘는 경우 사고 위험이 88%나 증가하기도 했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고용노동부가 근로시간 개편을 옹호하기 위해 산재 인정 기준 등 기존의 판단마저 부정하기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지난주에는 근로시간이 52시간을 넘긴 경우 과로사 산재인정률이 높아진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를 부정하고 나섰다. 고용노동부는 언론보도에 대한 설명자료에서 “뇌심 질병 인정을 위한 절대적 근로시간 기준은 현재 정립된 바 없다”고 밝혔다. 

이유로는 “뇌심 질병의 특성상 근로시간이 증가하면 발병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나, 근로시간 외에도 근무일정, 유해한 작업환경에의 노출, 육체적 강도, 정신적 긴장 등 다양한 요인을 복합적으로 고려해 업무관련성을 평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심지어 과로사를 유발하는 뇌심혈관 질환에 대해 근로시간이 증가하면 발병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하면서도, 기사에 인용한 통계는 현재 주 52시간제의 한도를 기준으로 요건을 달리 정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명을 내놓았다. 

장시간 근로와 과로사에 대한 과학과 통계에 기반한 우려에는 이해하기 힘든 해명만 내놓으면서, 근로시간 개편을 위해 국민과 소통하겠다니 정부의 진정성에 의문만 더 커진다. 소통을 원한다면 과로사와 장시간 근로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제대로된 소통을 해야 한다. 불편한 주제는 피해버리는 불통 행보로 근로시간 개편을 물어 붙이다가는, 직장인들의 저항만 초래할 뿐이다. 그리고, 주 69시간제라고 까지 불리는 근로시간 개편은 이쯤 되면 추진을 철회하는 것이 최선이다. 중기이코노미 이창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