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아 만테냐, ‘성 세바스찬’.

안진국 미술비평가(‘불타는 유토피아’, ‘비평의 조건’ 저자)

중세가 되면서 신앙심을 북돋고 기독교의 성스러운 이미지를 알리는 데 효과적이었기에 화살 맞는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모습이 많이 그려졌다.

◇발광하는 육체=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화가들은 성 세바스티아누스가 주는 종교적인 이미지보다는 그의 육체에 주목하는 모습을 보인다. 만테냐의 그림을 보면 이점이 분명히 드러난다. 

그와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폴라이올로(Antonio del Pollaiuolo)가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처형 장면을 멀리서 보는 듯 그려 사건과 상황을 보여주려 했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다.

피에로 델 폴라이올로, ‘성 세바스찬’, 1475, oil on canvas, 291.5×202.6cm, Location National Gallery, London.

하지만 바로크 시대 화가 귀도 레니가 그린 그림에서 세바스티아누스는 오직 화살 하나를 맞고 몸을 비틀고 있다. 그는 별로 고통스러워 보이지도 않는다. 귀도 레니는 세바스티아누스를 뚜렷한 이목구비와 고운 피부, 아름다운 육체를 지닌 미소년으로 표현했다. 화살은 그림의 주인공이 세바스티아누스라는 사실만 알려주는 액세서리에 불과할 뿐이다. 

반나체인 상태에서 우수에 젖은 눈빛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는 모습은 엘 그레코가 그린 성 세바스티아누스를 떠오르게 한다. 엘 그레코가 그린 세바스티아누스 또한 남성 육체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그려져 있다.

만테냐와 귀도 레니, 엘 그레코가 그린 세바스티아누스는 모두 인물이 부각되도록 가까이에 있다. 이는 멀리서 사건을 보는 것처럼 그린 폴라이올로의 작품과는 확연히 다른 점이다. 그들이 사건보다 인물의 표현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은 왜 이렇게 그렸을까? 성 세바스티아누스를 그린 작품이 왜 이렇게 변했을까?

그 이유는 이렇게 그림으로써 사람들의 관음증을 채워주면서도 비난은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벗은 몸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성적 욕망을 채워준다. 특히 균형 잡힌 육체는 많은 사람의 소망인 동시에 시선을 자극하는 대상이다.

귀도 레니, ‘성 세바스찬’, 1619, Oil on canvas, 170×133cm(사진 왼쪽). 엘 그레코, ‘성 세바스찬’, 1612, Oil on canvas, Museo del Prado, Madrid, Spain(사진 오른쪽).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에도 타인의 벗은 몸을 엿보는 행위는 비난받을 행동이었다. 하지만 타인이 아닌 신화적인 인물은 그 비난을 피할 수 있는 대상이었다. 그래서 여성의 누드로 신화에 나오는 비너스가 자주 그려졌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화가들에게 반나체가 되어 손발이 묶여 있는 세바스티아누스는 육체를 보여주기에 대단히 좋은 대상이었다. 비난받지 않고 남성의 누드를 그리기에 더없이 좋은 인물이었던 것이다.

인간의 육체를 아름답고 탐미적으로 그리고자 했던 르네상스 시대와 그 이후의 화가들에게 군인이었던 세바스티아누스가 화살을 맞는 모습은 젊고 탄탄한 육체가 고통으로 몸을 비틀며 관능적으로 보이도록 그리기에 안성맞춤인 모습이었으리라.

순교자이며 성인으로서 세바스티아누스. 젊고 탄탄하고 관능적인 육체를 지닌 미소년.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둘은 탐미적인 육체를 그리고자 했던 화가들의 손길로 하나가 됐다. 이 때문에 성 세바스티아누스 순교의 의미가 퇴색됐을까? 많은 사람에게 이 장면을 주목하게 했으니 더 좋은 건가? 판단은 감상자의 몫이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안진국 미술비평가)

<저작권자 ⓒ 중기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관련기사 ㅣ ‘그의 육체’는 고통보다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 관련기사 ㅣ 과도한 보수와 복원이 이뤄진 작품은 진품일까
• 관련기사 ㅣ 정말 다 빈치 작품일까…왜 전문가 의견 엇갈릴까
• 관련기사 ㅣ AI가 창작하려면, ‘감상’하는 방법부터 배워야
• 관련기사 ㅣ AI(인공지능) 결과물을 창작으로 봐야 하는가
• 관련기사 ㅣ ‘조각’은 단단해야만 하는가…고정관념을 깨다
• 관련기사 ㅣ ‘유가증권 미술’은 새로운 미학·예술운동 인가
• 관련기사 ㅣ 암호화 미술, ‘금융화’ 유가증권 미술로 바뀌다
• 관련기사 ㅣ 소유보다 공유하고 확산하는 것이 가치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