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CD 양도합니다. 개당 3000원이고, 두 개 사면 5000원에 드려요. 3장부터는 에눌(에누리)도 가능합니다.”

아이돌 CD(Compact Disc)와 포카(포토카드)는 중고거래 사이트의 단골 거래품목이다. ‘아이돌에 관심 없는 사람들이 어쩌다 얻은 아이템을 파는 건가?’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이 제품들을 판매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해당 아이돌의 빅팬인 경우가 대다수다. 아이돌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각종 굿즈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표출하는 통로일 텐데, 그런 제품들이 쉴 새 없이 중고거래 사이트에 올라오는 이유는 뭘까. 바로 ‘굿즈’ 때문이다. 팬들은 원하는 아이돌의 굿즈를 얻기 위해 같은 CD를 사고, 버리고, 또 구입하고, 교환을 꾸준히 한다.

아이돌에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는 생전 처음 들어본 그룹과 멤버들이라도, 이미 팬덤이 확고한 아이돌도 여럿 있고, ‘신인인가?’라고 생각되는 아이돌 역시 동남아를 중심으로 한 해외에서는 수십만 명의 팬을 거느린 거대 아이콘으로 등극한 경우가 많다. 이처럼 K-팝(POP)은 대한민국 경제의 한 축이 됐고, 경제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아이돌 팬심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성장동력이 됐다.

이런 팬덤은 죽어가던 앨범시장을 살려내기까지 했다. 음악 감상시스템이 스트리밍 방식으로 변화한 지금, 아이돌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누가 요즘 CD를 들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CD 발매와 판매는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2000년대 중반에 이미 사양산업으로 접어든 음반시장이 아이돌의 인기와 더불어 다시 살아난 셈이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국내 음반판매량은 2019년 2509만장에서 2020년 4170만장, 2021년 5708만장, 2022년에는 7711만장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그 속내를 잘 들여다보면, 엔터테인먼트사들의 고도의 판매전략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소비자원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K-팝 팬덤 활동 소비자의 52.7%는 굿즈 수집을 위해 음반을 구매했고, 구매한 CD로 음악감상을 하는 소비자는 5.7%에 불과했다. 즉, 아이돌을 모델로 한 포토카드, 포스터 등과 같은 상품을 ‘획득’하기 위해 CD를 구입하는 것이다. CD를 구매하면 자연히 따라오는 굿즈가 ‘획득’이라고 표현할 만큼 경쟁이 치열한 이유는 엔터테인먼트사들이 CD 안에 들어있는 굿즈들을 ‘랜덤’으로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학교 1학년 자녀를 둔 이 모 씨는 “딸아이가 NCT를 좋아하는데, NCT 그룹 안에 개별 서브 그룹이 여러 개 있고, 솔로 활동을 하는 경우도 있어 그때마다 앨범 구매는 물론, 콘서트 티켓과 각종 굿즈를 구입하고 있다”라며, “내가 학교 다닐 때는 굿즈를 별매로 판매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에는 어떤 제품 안에 랜덤으로 끼워 판매하는 경우가 많아 아이들이 원하는 굿즈가 나올 때까지 CD를 구입하거나 굿즈를 친구들과 교환한다. 장삿속이 훤히 들여다보이지만, 요즘 좋은 부모가 되려면 자녀의 이런 취미활동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줘야 하므로 어쩔 수 없이 원하는 만큼 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씨는 “딸아이가 원하는 아이돌의 응원 목걸이를 구하기 위해 홍콩의 판매자와 직거래까지 했다. 30만원이라는 고가에 비해 퀄리티는 턱 없이 부족했지만, 그래도 구할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했다”라며, “콘서트 티켓 같은 경우는 구하기도 어려워 티켓 구매대행자를 따로 섭외해 80만원을 주고 일반석을 구할 때도 있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돌 CD를 구입한 후 포토카드만 확인하고 폐기하거나, 중고거래 사이트에 올리는 팬들이 많다. 팬들에게 과소비를 유도하는 엔터테인먼트사들도 문제지만, 더욱 큰 문제는 이런 행태가 환경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이미지=이미지투데이>

여기에 매번 다른 콘셉트와 디자인으로 발매하는 CD까지 구매하려면 부모의 허리는 휠 수밖에 없다. 이 씨에 따르면, 차이점이 전혀 없는 같은 내용의 CD인데, 디자인만 달리해서 2종 이상의 버전으로 출시하는 것이 요즘 아이돌 앨범의 기본이다. 게다가 한 음반당 많게는 총 78종의 포토카드를 제공하는데, 1개 음반에 랜덤으로 6종이 들어있어, 모든 종류의 포토카드를 수집하려면 최소 13장의 음반을 구매해야 한다. 문제는 모든 음반을 구매한다고 해서 원하는 포토카드가 있다는 보장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CD를 구입한 후 포토카드만 확인하고 폐기하거나, 중고거래 사이트에 올리는 팬들이 대다수다. 팬들에게 과소비를 유도하는 엔터테인먼트사들도 문제지만, 더욱 큰 문제는 이런 행태가 환경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실물음반은 화려한 디자인과 포장으로 팬들의 눈을 만족시켜야 하므로 과대포장이 될 수밖에 없고, 대부분 재활용이 어려운 재질로 만들어진다. 또한, 폴리염화비닐(PVC)로 포장돼 있기 때문에 불에 타면 강한 부식성 가스가 배출된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 관계자는 중기이코노미와의 통화에서, ‘팬심을 이용한 과도한 마케팅’을 줄여 불필요한 플라스틱 생산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실물음반에서 온라인음반으로 가는 추세에 역으로 음반 판매량이 많아지고 있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다. 이런 현상은 팬들에게 과소비를 조장하는 기획사 때문”이라며, “일례로, 아이돌 팬 사인회에 가기 위한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음반을 반드시 사야 하는데, 팬들 사이에는 100장 이상을 사야 한다는 말이 떠돌아다닐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항간에 떠도는 얘기를 전해 들은 팬들은 불안한 마음에 과도하게 음반을 구매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식으로 버려진 음반 폐기물만 매년 100톤 이상이라며, 정부가 음반기획사의 실물음반 과대포장과 생산에 대한 엄격한 규제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폐기물 관리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제품의 제조업자나 수입업자에게 그 폐기물 처리에 드는 비용을 부담하도록 하는 폐기물 부담금 제도가 있다. CD나 굿즈 등은 kg당 150원을 부과하고 있는데, 이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라며, “kg당 발생하는 부담금보다 음반 판매량으로 인한 이익이 더 많기 때문에 부담금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이 관계자는 “소비자에게 제품을 구매할 때 제품 안에 어떤 굿즈가 들어 있는지 알아야 할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 이를 위해 CD와 굿즈를 분리해 판매할 필요가 있다”며, “팬 사인회 역시 CD를 산 모든 사람에게 공정하고 공평한 선상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에는 이런 비판의 시각을 의식한 엔터테인먼트사에서 ‘스마트 앨범’을 출시하는 경우도 있다.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로 해석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역시 꼼수인 경우가 적지 않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 관계자는 “디지털 음반이 활성화가 된다면 실물음반보다는 환경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문제는 기획사들이 한 가수의 음반을 판매할 때 디지털 음반만 판매하는 것이 아니다. 똑같은 음반인데, 많게는 4~5개의 음반을 제작하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앞으로 친환경 소재로 된 음반과 굿즈가 필요하다”라며, “정부 역시 기획사의 음반 과대포장과 과다생산에 대한 엄격한 규제를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중기이코노미 김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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