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시인 횔덜린은 시 쓰기가 곧 신의 번개를 받는 일과 같다고 썼다. 시인은 대지에 벌거벗은 머리로 선 채 뇌우를 받고 그것을 노래로 감싸 안는다. 천둥번개 같은 영감과 함께 시인은 지극히 시인이 된다. 그러나 시인에게 영감을 주는 번개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소프트 머슬:코드 표본’, 탄소섬유강화플라스틱(CFRP), 아연 각파이프, 각파이프 연결 조인트, 350×320×50cm, 2021.

흥미롭지만 동시에 냉소적인 말이다. 다만 여전히 곱씹어 볼 만한 말이기도 하다. 이것은 단순히 시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닐 테다.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모습을 떠올려 보자. 스마트폰으로 물건을 구입하고, 화폐를 송금하고, 신원을 보증하고, 지식을 얻을 때, 그 작은 기계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우리는 모른다. 단지 무언가가 발생하고 있다고 믿을 뿐이다. 과연 이 믿음은 온당한가.

작가 구자명의 작업을 가장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프로그래밍 언어를 시각화 혹은 물질화한 결과물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작가는 웹사이트를 구성하는 HTML 언어나 애플리케이션을 구성하는 프로그래밍 언어 등을 디컴파일해 시각적 형태를 갖도록 번안하고, CFRP(탄소섬유강화플라스틱)나 알루미늄과 같은 재료를 경유해 물질로 옮겨낸다(여기서 디컴파일이란 특정 프로그램의 소스 코드를 독해 가능한 언어로 변환하는 행위를 말한다).

키틀러가 말했듯, 컴퓨터는 은폐하는 장치다. 구자명은 이 은폐된 차원을 들추어낸 뒤 조형이라는 몸체를 준다. 인간과 기계 사이의 침묵에 손을 뻗어 더듬는다.

‘Amazong&Aliex’, 알루미늄, 183×124×111cm, 2022.

특히 구자명이 주목하는 것은 바이러스다. 일반적으로 세포는 DNA에 적혀 있는 유전정보를 RNA로 옮겨 단백질을 형성한다. 이 과정을 전사라고 한다. 전사는 생물의 대원칙이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어떤 바이러스들은 이 원칙을 거스른다. DNA를 RNA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RNA를 숙주 세포의 DNA로 옮겨 기생하는 것이다. 이 예외적 현상을 역전사라고 부른다.

숙주 세포에 기생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바이러스에게 역전사는 최선의 생존방식이다. 바이러스가 역전사를 통해 숙주 세포에 기생하듯, 구자명 또한 미학적 생산물인 조형언어를 통해 기술적 생산물인 프로그래밍 언어에 기생한다. 미생물을 연상시키는 구불구불한 조형은, 바이러스가 역전사를 이용해 숙주 세포에 달라붙듯, 기술과 예술이 이질적으로 달라붙은 결과일 것이다. 조금 복잡한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 같지만, 아무튼 흥미로운 생각이 아닐 수 없다.

구자명의 작업을 보고 있으면, 디지털 환경이 온전한 가상이 아니라 사실 물질적이라는 사실을 돌이켜보게 된다. 디지털은 언제나 물질을 요구한다. 예컨대 데이터 센터는 과열된 서버를 식히기 위해 매일 수백만 톤의 냉각수를 사용한다. 이처럼 막대한 사용량 때문에 세계적 가뭄을 가속한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컴퓨터와 스마트폰과 같은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단순히 가상이라고 여긴다면 이와 같은 이야기가 은닉되어 버린다. 그러니 시인과 시가 어떻게 분리되었는지, 번개가 어떻게 전류가 되었는지, 이 보이지 않는 영역을 바라보는 것은 중요하다.

키틀러에게 컴퓨터란 그냥 기계장치가 아니었다. 그것은 사유의 시간을 낱낱이 해체하는 장치이자 모든 차원이 철폐된 0차원을 도입한 장치였다. 구자명은 이 해체된 틈새에 바이러스처럼 침입한 뒤 은폐된 것을 모아 덩어리를 빚는다. 전류의 세계에서 번개의 세계를 헤아린다. (중기이코노미 객원=황재민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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