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역삼동 피죤 본사.   ©중기이코노미

지금으로부터 1년전인 2013년 1월, 생활주방용품 전문기업 피죤은 조원익 전 에스콰이아 대표를 사장으로 영입한다. 사주의 횡령 의혹에 직원폭행, 청부폭력 등 악재가 겹친 상황을 타파하고자 외부에서 구원투수를 수혈한 모양새였다. 

조 사장은 에스콰이아 대표를 맡기 전 피죤의 경쟁사인 LG생활건강에서 생활용품 마케팅부문장 등을 역임하기도 해 업계에 정통하다는 시장의 평가도 있었다. 적자에 허덕이던 에스콰이아를 흑자전환시켜 검증된 혁신전문가라는 점도 주목받았다.  

      

그러나 조 사장은 불과 9개월 만에 회사를 떠난다. “건강문제로 그만뒀다”는 게 피죤 측 설명이었다. 그러나 노조 측은 이 시기를 사주인 이윤재 회장의 경영일선 복귀 시점으로 지목하고 있다.

이 회장은 2011년 청부폭력 사태가 발생한 뒤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이후인 2011년 10월 대표이사직을 사임했고 장녀 이주연 부회장이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그러나 사내이사직을 유지한 이 회장이 지난 9월 본격적으로 경영일선에 복귀했다는 것이 노조측 주장이다.

실제로 조 전 사장이 회사를 떠난 9월 이윤재 회장은 직원 강연에서 “몸이 허락하는 한 나와서 부회장을 돕고 직원들 돕는 일을 하겠다”는 발언을 한 사실이 알려졌다. 피죤은 보도자료에서 “창업주인 본인의 노하우를 직원들에게 전수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그런 부분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겠다는 것이지, 자신이 경영일선에 관여하겠다는 뜻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이후 피죤은 12월 들어 영업소를 폐쇄하고 지방 영업사원 20명을 서울에 대기발령시켰으며, 이후 다시 대기발령자 중 10명을 부산지점에 대기발령시켰다. 2013년 11월 결성된 노조에 가입한 지방직원들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노조는 이같은 인사발령이 “영업 사원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노동조합 활동에 타격을 주기위해 급조된 조치”라며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회사측은 “노조에 가입한 노조원 대부분이 구조조정에 따른 지점폐쇄와 관련한 당사자이기 때문이지 노조를 탄압하기 위한 조치가 아니다”라며 “현재 당사는 실적이 악화되고 대형마트와 편의점 중심의 시장 및 유통환경 변화로 인해 이대로 회사의 조직을 끌고 갈 수 없어 영업 실적이 좋지 않은 지점들을 폐쇄조치한 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조치와 이윤재 회장과의 연관설도 부인했다. “현재 이윤재 회장은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간헐적으로 회사에 잠깐 들렀다가 나갈 뿐이며 모든 경영상 의사결정과 결재는 대표이사인 이주연 부회장이 하고 있으며, 이윤재 회장은 영업이나 관리 전반에 관여하는 바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윤재 회장은 회사의 대주주인 이정준씨와 대표이사인 이주연 부회장의 부친이다. 지난해 4월 공시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이정준씨외 특수관계인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2011년말까지는 이 회장이 최대주주였으나 지난해 감사보고서부터 대주주 이름이 바뀌었다. 하지만 특수관계인 100% 지분 보유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오너 일가가 회사를 100% 장악하고 있다는 의미다.

9개월이라는 조 전 사장의 재임기간은 피죤의 과거 다른 전문 경영인들에 비해서는 긴 편이기도 하다. 2007년 사장직을 맡은 김준영 전 사장은 임기가 7개월에 그쳤고, 다른 전문경영인들은3~4개월 만에 사장직에서 물러났다.

전문 경영인들의 짧은 임기는 직원들의 높은 이직률과 맞물려 피죤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간접적인 지표였다. 피죤이 결정적인 위기를 맞게 되는 이 회장의 ‘청부폭력’ 사건도 4개월여 만에 해고된 전문경영인을 상대로 벌어진 사건이었다.

이윤재 피죤 회장<사진=뉴시스>

 

무역회사 등에서 영업을 익힌 이 회장은 1978년 사업을 시작했다. 세제 시장도 충분히 커지기 이전에 섬유유연제를 들고 나와 저인망식 마케팅으로 시장을 선점한 것이다.

회사명을 영어이름인 ‘피죤’으로 지은 것은 당시에 이색적인 일이었다. 여기에 유명한 CF 문구 ‘빨래엔 피죤’의 성공사례는 국내 경영학에서 주목하는 사안이다. 아직 CI라는 개념이 알려지기도 전에 회사명과 브랜드명, CF까지 통일해 소비자에게 각인시켰다는 점 때문이다.

피죤의 성공 이후 다수의 대기업과 다국적기업들이 국내 시장에 진출했다. 하지만 피죤은 2000년대 중반까지도 시장점유율 50%를 상회하는 1등기업이었다.

이로 인해 이 회장은 자랑스런 고대인상(2000년), 한국무역학회 무역진흥상(2006년), 자랑스런 서울고인(2006년), 고대경제인대상(2008년)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처럼 성공한 경영인으로만 알려진 이 회장의 다른 모습이 드러난 것이 바로 2011년의 ‘청부폭력’ 사건이었다.

2011년 6월 전문경영인인 이은욱 전 사장이 취임한지 4개월만에 해임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전 사장은 유한킴벌리 부사장 출신으로 그해 2월 피죤 사장에 취임했다. 이 전 사장은 회사를 상대로 해임 무효소송을 제기했다.

검찰 조사결과에 따르면 그해 8월 피죤 측은 조직폭력배에게 해임무효소송을 취소하게 해달라고 부탁했고, 조직폭력배들이 이 전 사장을 폭행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전 사장과 함께 소송을 제기했던 다른 임원에게도 협박전화를 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 회장은 청부폭행을 지시하고 조직폭력배들의 도피자금을 제공한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아 2012년 초 징역 10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형을 살다 8개월만에 가석방됐다.

지난 2013년 11월에는 회사 돈 120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징역2년에 집형유예 3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납품업체와 계약 시 단가를 실제보다 부풀린 뒤 차액을 현금으로 돌려받는 등의 수법으로 회사 돈을 빼돌린 등의 혐의로 받은 재판이었다. 이 회장은 2009년 납세자의 날에 국세청장상을 받은 바 있다.

섬유유연제 시장 1위이던 피죤의 점유율은 현재 ‘2010년 매출의 절반 이하로 줄어든 상황’(피죤 보도자료)이다. LG생활건강의 거센 추격에 청부폭력 사건까지 겹치면서 경영에 큰 타격을 입은 것이다. 여기에 노조탄압 논란이 발생하면서 피죤은 또다시 논란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다.  

      

피죤 노조는 최근 발표한 ‘피죤 이윤재 회장님께 전달하는 호소문’에서 “한때 업계 1위를 유지하던 섬유유연제 시장에서의 추락은 사주일가의 사원경시 경영과 전횡을 제어하지 못한 내부 시스템의 부재에 기인한 위기였다”고 지적했다. 피죤이 ‘오너 리스크’를 극복하고 다시 섬유유연제 시장 1위 자리를 탈환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이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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