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한 목소리로 저출생 대책과 일가정 양립 공약을 다가오는 총선 공약 중 첫 번째로 발표했다. 저출생 문제의 심각성이야 두말할 필요가 없고, 여야가 이를 두고 경쟁을 벌이는 것은 당연하며 바람직하다. 다만, 중요한 정책 한가지가 빠졌다. 정책의 실효성을 더하기 위해서는 일하고 돈을 벌면서도 아이를 볼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장시간 노동을 줄일 수 있는 대책이 눈에 띄지 않는다.

국민의힘이 지난 18일 발표한 ‘일·가족 모두 행복’은 일과 가정의 양립에 초점을 두고 있다. 같은 날 민주당은 ‘대한민국 생존을 위한 저출생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정책이 포괄하는 범위가 다르긴 하지만, 일과 가정·육아를 양립할 수 있도록 돕는 정책을 담고 있다는데 공통점이 있다. 

특히 육아휴직 관련 정책은 상당히 비슷하다. 국민의힘은 출산 시 부모 모두에게 1개월의 유급휴가를 의무화하겠다고 공약했다. 민주당은 육아휴직을 신청하기만 하면 자동으로 육아휴직에 들어가도록 하고, 육아휴직과 육아기 근로단축 이후 불이익에 처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바람직한 방향이다. 마침 원내 양대정당이 동시에 유사한 내용을 공약했으니 선거를 기다릴 것 없이 즉시 입법하는 방향으로 합의를 했으면 한다. 선거가 끝난 뒤 차일피일 미루거나 유야무야 할 의도가 아니라, 실제로 육아휴직 강화 등을 통해 부모를 도울 의지가 있다면 미룰 필요가 없는 일이다. 

아울러, 여야 모두에게 육아휴직이 끝난 이후 아이 돌봄에 대한 지원책도 주문하고 싶다. 급여나 수당 지급, 돌봄 서비스 제공 등에 대해서는 정치권과 정부가 모두 다양한 정책을 개발하고 있으니, 시간을 끌지 말고 즉시 실행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유독 한가지 빠진 부분이 바로 장시간 노동에 대한 대책이다. 부모가 번갈아가며 육아휴직을 사용하고 돌봄 서비스 등을 이용한다 하더라도, 휴직기간이 끝난 후가 문제다. 아이를 돌보는데 필요한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면 일과 육아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건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이에 따라 정부가 재택·원격근무, 시차·선택근무 컨설팅을 지원하는 등 유연근무 확산에 힘을 쏟고 있기는 하지만, 한계가 뚜렷하다. 

유연근무가 제대로 확산되지 않는 이유, 부모가 유연근무를 이용해 일과 육아의 두 마리 토끼를 잡지 못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무엇보다도 장시간 노동에 있다. 장시간 노동에 몰리다보니 부모가 유연근무제 등을 이용하더라도 아이를 돌볼 시간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2022년 기준으로 한국의 1인당 연간 근로시간은 1901시간에 달한다. OECD 평균(1752시간)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순위를 따져보면 OECD 전체의 5위에 해당하는데, 1~2위를 다투다 주 52시간제가 확산되면서 장시간 노동이 다소 줄어든 결과가 이정도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지난해 주 52시간제를 허무는 노동시간 개편을 추진한 바 있다. 지난해 603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 반대 여론이 우세하자 현행 주52시간제의 틀을 유지하기로 했지만, “일부 업종과 직종을 대상으로 노·사가 원하는 경우 연장근로 관리단위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보완방안을 노사와 함께 논의할 계획”이라면서 여전히 노동시간 개편의 불씨를 남겼다. 

일부 업종에 대해서라지만 얼마나 많은 업종이 포함될 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또, 일이 많은 주에는 주 52시간을 훌쩍 웃도는 야근을 하게 될 가능성이 있음에도, 일하는 총량은 주 52시간제를 유지하겠다고 하고 있다. 주 48시간이나 그 이하로 줄여도 모자랄 판인데, 이런 조치 없이 주간·야근 한도만 확대해주겠다니 도대체 아이는 언제 돌보란 얘기인지 알 수 없다. 

여야는 기왕 저출생 대책을 놓고 정책경쟁을 시작했으니, 장시간 노동에 대한 실질적 해소방안에 대해서도 합의를 도출했으면 한다. 또, 정부는 주 48시간제 등 노동시간 단축으로 노동시간 개편의 방향을 선회해야 한다. 장시간 노동을 놔두고서 심지어 야근 한도까지 확대해 버리겠다는, 가뜩이나 아이낳기 어려운 상황을 악화시킬 정책은 즉각 철회해야 한다. 중기이코노미 이창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