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법 제126조는 유죄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인 피의자의 인격을 보호하고, 수사기밀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피의사실공표죄를 규정하고 있다. ‘검찰, 경찰 그 밖에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수행하는 자 또는 이를 감독하거나 보조하는 자가 그 직무를 수행하면서 알게 된 피의사실을 공소제기 전에 공표(公表)한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고 이선균 씨의 사례에서 드러난 것처럼 피의사실공표죄가 사실상 효력을 잃고 사문화됐다는 지적이 꾸준하게 제기되고 있다. 피의사실공표의 허용범위와 한계점을 명확히 규정하는 등 피의사실공표죄 개정이 필요한 것이다.

백민 민변 변호사는 더불어민주당 박주민·김승원·민병덕 의원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사법센터가 30일 공동주최한 ‘故이선균 수사 정보유출 재발 방지를 위한 피의사실공표죄 개정 입법토론회’에서, “우리나라 검찰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거의 독점하는 가운데 피의사실공표의 문제를 해소하지 못하고 오히려 부추겨왔다”며, “검찰이 직접수사를 하면서 피의사실을 공표하는 문제만이 아니라 경찰 등이 1차 수사를 하면서 피의사실공표를 하는 경우에도 눈 감는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래픽=채민선 기자>   ©중기이코노미

백 변호사는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는 사람들에 대해 여전히 수사기관에 의한 피의사실공표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인격권이 침해되는 사례, 그리고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범죄자로 낙인찍히는 사례 등이 많은 등 피의사실공표는 빈번하다고 했다.

검찰 내부 통계시스템에 의하면, 1995년 이후 2018년까지 피의사실공표죄로 총 566명이 입건됐으나 기소된 사례는 없었다. 또 2004년부터 2014년 사이 검찰조사 중 자살한 사람이 83명에 이르는데, 범죄 유형별로 보면 횡령·배임 23%, 뇌물범죄 21%, 성범죄 15%, 마약 10%, 기타 32%로 나타났다.

백 변호사는 1심 공소제기 전에 피의사실공표가 이뤄지는 경우, 수사기관 종사자는 처벌을 피하기 위해 그 내용이 피의사실이 아니라 ‘수사상황’이라거나 ‘단순한 의견표명’이라거나, 공표가 아니라 언론기자의 질문에 ‘소극적으로 확인’해준 것이라는 등 책임을 회피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형법 제126조는 원칙적 금지만을 규정하고 있어 위법한 공표와 허용될 수 있는 공표가 혼재돼 있으며, 각 수사기관들이 내부 공보규정을 만들거나 어떤 것을 어느 정도로 공표할지 ‘셀프 판단’하는 관행도 아무런 통제를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김승원·민병덕 의원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사법센터는 30일 ‘故이선균 수사 정보 유출 재발 방지를 위한 피의사실공표죄 개정 입법토론회’를 공동주최했다. <사진=박주민 의원실>

백 변호사는 피의사실공표죄를 실효화하기 위해 형법 제126조 피의사실공표죄를 보완해 공표가 금지되는 경우와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경우를 구별하고, 공표 절차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또, 법원의 피의사실공표 금지명령제도와 함께 피의사실공표시 공판기일 연기, 위법공표증거 배제 등을 도입한다면, 사법부를 통한 통제를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피의사실공표 금지를 위반한 자에 대한 형사처벌이나 징계가 가능하려면, 법무부나 공수처 등 제3의 공식기관의 역할도 필요하다고 했다. 

이와함께 백 변호사는 수사기관이 제공하는 정보를 받아 위법하게 보도한 언론사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책임을 도입할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다. 중기이코노미 채민선 기자

<저작권자 ⓒ 중기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