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총회 시즌이 다가오자, 기업들이 새롭게 선임할 사외이사들의 배경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직 공직자인 이른바 ‘전관’들의 비중이 높은 가운데, 특히 권력기관 출신들의 사외이사직 진출이 눈에 띄고 있다. 법적으로야 사외이사행에 문제가 없다지만, 개인의 양심에 모든 것을 맡겨야 하는지 의구심이 든다. 

최근 리더스인덱스가 자산순위 30대그룹 중 최근 신규 사외이사를 추천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신규 추천된 사외이사 103명 중 41명이 고위관료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에서도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 것이 검찰청 출신들이다. 전직 검사장이나 차장검사 등을 지낸 신규 사외이사가 8명으로 고위관료 출신 중에서도 19.5%를 차지했다. 이어서 판사 등 사법부 출신이 6명(14.6%), 국세청·산업부 출신이 각각 5명(12.2%), 금융위 출신 3명(7.3%) 등이 뒤를 이었다. 

이 조사는 신규 사외이사로 좁혀서 이뤄진 것으로, 기존 사외이사들까지 합칠 경우 고위관료 출신이 사외이사로 몸담은 사례는 더욱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고위관료 출신이라고 해서 사외이사에 몸담지 말란 법은 없다. 퇴직 공직자의 경우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로부터 취업심사를 받도록 하고 있는데, 퇴직전 5년간 일한 기관이나 업무와 관련이 없다면 취업이 가능하다. 위원회가 공개한 심사결과를 보면, 전직 검사 등이 민간기업의 사외이사로 취업할 때 승인판정을 받은 사례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안전장치가 있으니 문제될 것 없지 않느냐고 볼 수도 있지만, 전관 사외이사들의 역할을 보면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공정위의 2023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지배구조 현황 분석 자료에 따르면, 1년간 대기업 이사회 안건 7837건 중 원안대로 통과되지 않은 안건은 55건(0.70%)에 불과했다. 게다가 사외이사가 반대한 안건 수는 16건(0.2%)으로 더 적었다. 

이사회 상정안건 중 99.3%가 원안대로 통과되고, 사외이사들의 찬성 비율도 99.8%에 달한다는 수치에 대해 공정위는 “이사회 견제 기능도 여전히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평가했다. 사업부와 검찰 등 핵심 권력기관의 전관들을 사외이사로 ‘모셔놓고서’ 그저 거수기 역할만 기대할 기업은 없을 터다. 전관의 영향력을 기대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되는 대목이다. 

전직 공직자에 대해서는 취업심사 등 규정이 있지만, 주요 기관의 비상임위원에 대해서는 규정이 미비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시민단체인 경제개혁연대와 공시자료 등을 종합하면, 아모레퍼시픽의 주주총회에 조성진 서울대 교수를 사외이사 후보로 재선임하는 안건이 상정됐다. 문제는 조성진 교수가 현직 공정거래위원회 비상임위원이란 사실이다. 비상임위원 선임 전부터 맡아온 사외이사직을 계속 유지한 것이다. 이와 별도로 세아홀딩스의 사외이사직을 맡고 있다는 사실도 회사 홈페이지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위원이 규제 대상인 기업체의 사외이사를 겸직하는 것은 심각한 이해상충 문제를 야기하고 위원회 의결의 신뢰를 훼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표한다”고 했다. 위원의 제척이나 기피, 회피 등 규정도 신뢰를 담보하기엔 부족하다고 봤다. 

하지만 “조성진 공정거래위원회 비상임위원의 기업체 사외이사 겸직은 법적으로 문제는 없다”고 했다. 공정거래법을 보면, 상임위원과 달리 비상임위원의 경우 겸직을 제약하는 규정이 없다. 비상임위원을 두는 금융위원회나 증권선물위원회 역시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금융위원회 위원 및 증권선물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될 경우 곧바로 재직하던 사외이사직에서 사임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어, 공정거래위원회와 대비된다”고 경제개혁연대는 꼬집었다. 

아울러, 공정위 조직이 스스로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비상임위원에게도 상임위원에 준하는 수준의 겸직 등 금지의무를 부과하는 방안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공정위 등 핵심기관들의 비상임위원 역시 책임에 걸맞는 주의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합리적인 규정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중기이코노미 이창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