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감상은 미술사의 흐름, 수많은 사조나 양식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뒤따를 때 작품 감상의 깊이와 폭이 넓어진다. 그러나 미술사에 등장하는 그림의 의미와 내용을 일일이 이해하기 어렵고, 관련 연구도서를 모두 읽는 것도 한계가 있다. 특히 현대미술은 내용과 형식에서 틀과 폭을 규정지을 수 없을 만큼 다변화되어 감상이 더욱 난해하다.

다이어그램의 핵심은 시침(時針)

그렇다면 미술 감상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미술 감상을 위한 간결한 감상 기준은 없을까? 이에 간략한 도형을 활용해 감상자가 어떤 유형의 작품을 좋아하는지, 작가와 작품이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에 따라 작품성격을 이해할수 있는 미술 감상 다이어그램(diagram)을 알아보자.

<그림1>시계 다이어그램   ©비자트

다이어그램 <그림1>은 미술사에서 등장하는 수많은 미술작품의 유형과 양식을 크게 4가지 이즘(ism)으로 구분해 시계로 표시한 것이다. 이즘(ism)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인상주의, 입체주의 할 때의 주의(主義)처럼 작품에 표현된 공통양식을 포함한 어떤 체계화된 이론이나 학설을 의미한다.[본 글에서 서술한 네 가지는 테리바렛(오하이오 주립대학 교수, 미술비평, 교육비평가)이 예술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제시한 범주다. 이는 광범위한 미술을 최대한 단순화시켜 비평적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범위로 차용해 필자가 시계 다이어그램에 도입한 것이다]

다이어그램의 핵심은 시침(時針)이다. 시침은 현재 감상자(혹은 작가)가 미술을 바라보는 시점 또는 미술작품이 해당하는 지점이다. 감상자의 감성주기는 사람마다 다르다. 하루에서 몇 달, 길게는 몇 년 혹은 평생에 걸쳐 지닐 수 있다.

예를 들면 2년 전에는 사실주의 경향의 풍경화를 좋아했지만, 지금은 추상주의 경향을 좋아할 수 있다. 누구는 평생 표현주의보다 사실주의의 경향의 작품을 선호할 수 있다. 또 다른 사람은 정교한 사실주의보다 화가의 내적감정이 드러나 감상자의 마음을 자극하는 표현주의 경향의 그림에 매료될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은 뚜렷하게 한 가지 감성만 지니지 않고 다른 감정을 동시에 지닐 수 있다. 따라서 미술 감상도 한 가지 경향에만 머물지 않고, 시간의 흐름처럼 감성의 시점이 움직일 수 있다. 다이어그램으로 설명하면, 시침이 12시 정각의 사실주의에서 1시 정도로 움직인 것과 같다. 이는 여전히 사실주의의 성격이 강하면서 부분적으로 도구주의 성격의 작품에 이끌리는 것을 의미한다. 즉 사실주의 경향이면서 동시에 도구주의 경향의 작품이나 화가를 좋아하는 것이다. 이같은 예는 다른 시간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예컨대 5시를 가리킨다면 표현주의의 경향에 도구주의의 경향을 지닌 작품이거나 화가의 선호자를 의미한다.

미술 감상 다이어그램은 감상자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시계 다이어그램은 화가에게도 적용된다. 어떤 화가가 20대의 사실주의 화풍에서 30대에는 표현주의, 40대는 도구주의, 50대는 형식주의를 지향하는 작품세계로 변할 수 있다. 그 변화 주기는 몇 달 간격으로 짧거나 몇 년 간격으로 길 수도 있다.

4가지 감상 시각의 개념과 작품

4가지 이즘(ism)은 어떤 작품을 말하며, 여기에 속하는 작가는 누가 있을까? 다이어그램에서 사실주의와 대조적 그림은 표현주의이고, 도구주의와 대조적 그림은 형식주의이다.

사실주의는 말 그대로 사실 표현에 목적을 둔 작품을 말한다. 쿠르베, 샤르댕, 밀레에서 척 클로스, 오드리 플랙, 제리오트, 리처드 에스테드, 톰 블렉웰, 찰스 벨 등 근현대작가까지 포함된다. 사물을 가장 닮게 옮겨 재현한 그림으로 현대미술에서 사진처럼 정교한 극사실주의 혹은 포토리얼리즘까지 큰 틀에서 사실주의이다.

표현주의는 인간의 내적 감성을 중시한 그림이다. 표현주의는 미술사에서 표현주의적이지 않았던 시대는 없다고 할만큼 가장 광범위하다. 접근시각에 따라 중세나 바로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화가와 작품을 표현주의에 포함할 수 있다. 널리 알려진 작품 ‘절규’의 화가인 에드바르 뭉크가 대표적이다. 이 밖에 에곤 실레, 에밀 놀데,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 가브리엘레 뮌터, 오스카 코코슈카 등 자발적인 감정 표현과 근원적 표현 의지에 강했던 화가와 작품들이 해당한다. 대중적 스타인 빈센트 반 고흐도 내용과 형식상 표현주의에 포함될 수 있다. 표현주의는 미술사에서 가장 넓게 적용할 수 있는 개념이다.

도구주의는 그림으로 인간을 교화시키거나 도덕적 삶을 지향하도록 이끌기 위한 목적이 분명한 작품이다. 인간 세상의 부조리를 비판하거나, 도덕적 불감증을 고발하는 주제의 그림, 또는 그러한 성향을 가진 화가와 작품이 해당한다. 들라크루아, 제리코, 고야, 디에고 리베라, 오노레 도미에, 케터 콜비츠, 수코, 도로시어 랭, 제이콥 리스 등의 작품을 꼽을수 있다. 피카소는 입체파 화가로 상징되지만, 전쟁의 참혹성을 고발한 ‘게르니카’ 작품은 도구주의적 성격이 짙다.

형식주의는 ‘예술을 위한 예술’ 이론이다. 형식주의는 작가의 내적표현에 의지한 감성 혹은 도덕, 종교, 정치 등 인간 활동과 무관한 예술로 ‘형식’을 예술을 판단하는 유일한 기준으로 내세운다. 한마디로, 이야기 전개(내러티브)가 있는 그림, 작품 의도나 작가 감성이 내재한 그림을 배제하고 형식만을 추구한 작품이다. 최소화한 형식만으로 작품을 표현하고자 한 도널드 저드, 로버트 모리스 등 미니멀리즘 작품이 여기에 속한다.

미술 감상은 낯선 풍경과 익숙한 풍경의 사이를 오가는 것이다. 미술 감상 다이어그램은 미술을 미술사적 또는 미학적으로 세분화해 연구하는 학문적 틀보다는 열린 구조의 통합적 시각으로 작품을 바라보고자 한 방법이다. 한마디로 미술 감상을 어떤 고정된 내용과 형식이 아닌 유연한 마인드로 접근하는 틀이다. 미술 감상이 낯선 사람에게는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고, 익숙한 사람에게는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는 방법이다.

미술 감상은 낯선 풍경을 만나 느꼈던 어색함이 친숙함으로 바뀌거나 익숙한 풍경이 어제와 다른 시각으로 다가오는 것과 같다. 미술 감상은 그렇게 낯선 풍경과 익숙한 풍경 사이를 오가는 것이다.[변종필 미술평론가(jpda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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