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한국의 개인정보 보호제도 등을 무역장벽으로 규정하면서, 디지털 통상압박이 현실화되고 있다. 같은 제도를 한국이 하면 부당한 규제이지만, 미국이 하면 안보를 위한 정당한 조치로 평가되는 비대칭적인 환경 조성마저 우려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최근 펴낸 ‘한미 디지털 통상 현안과 정책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지난 3월말 펴낸 무역장벽 보고서(NTE 보고서)에는 한국의 디지털 관련 제도가 다수 언급됐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상호관세를 산출한 근거로 비관세 장벽을 언급한 만큼, NTE 보고서에 거론된 이슈가 통상협상 주제로 대두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의 무역장벽 보고서는 한국이 개인정보 보호법을 강화하면서 개인정보 국외 이전 중지명령제도를 도입한 것이 국경 간 서비스 공급자에게 무역장벽으로 작용한다고 평가했다. 이 밖에 위치 기반 데이터, 온라인 플랫폼 규제, 망사용료, 국가핵심기술의 역외 클라우드 사용제한 등을 거론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보고서는 이를 분석한 결과, 미국이 “국경 간 데이터 이전 보장, 설비 현지화 요구 금지, 소스코드 공개 요구 금지, 플랫폼 및 기타 중개자의 책임 제한 조항 등을 포함한 디지털 규범을 한국에 강력히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실제로 트럼프 정부 1기는 USMCA(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 미일 디지털 무역협정을 통해 미국 빅테크 기업에 유리한 디지털 규범을 구축했다. USMCA에는 국경 간 데이터 이전 및 현지화 요구 금지, 소스코드 및 알고리즘 공개 요구 금지, 중개 플랫폼 사업자 면책 조항 등이 담겼다. 

트럼프 2기 역시 같은 정책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보고서는 “미래 핵심산업인 AI 분야에서 미국이 기술 리더십을 유지하려면 AI 학습에 필요한 대규모 데이터의 확보와 자유로운 활용이 필수이며, 알고리즘과 소스코드는 AI의 핵심 지재권으로서 이러한 기술의 보호 및 이전 제한이 매우 중요”하다며, 미국이 “국경 간 데이터 이동 보장, 현지화 요구 금지, 소스코드 및 알고리즘 보호 등을 포함한 디지털 규범을 양자 또는 다자 무역협정에 반영하고자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보고서는 한국의 개인정보나 비즈니스정보 등 데이터의 국경간 이전을 허용할 경우, 미국 플랫폼이 한국에서 데이터를 수집한 뒤 자사 AI 학습자원으로 사용해 미국 AI 모델 성능을 높이는 데 사용할 수 있다고 봤다. 

미국과의 디지털 무역협정 등의 체결로 서버 현지화 요구를 할 수 없게 될 경우, 빅테크의 국내 진입장벽이 완화돼 미국의 클라우드 사업자 진입이 강화될 수 있다. 

또한 한국은 EU와 유사하게 정보 주체 동의 중심 구조로 엄격한 개인정보 보호법을 유지하고 있는데, 미국은 연방 차원의 개인정보 보호법이 없다. 미국이 원하는 대로 개인정보를 포함한 정보 이전의 자유를 보장할 경우 개인정보 보호가 후퇴하는 것은 물론, EU와 규제수준을 동일하게 유지하는 “적정성 결정”을 유지하지 못할 경우 EU와의 데이터 교류는 더 힘들어질 수 있다. 

반대로 한국이 미국의 공공이나 의료 데이터를 클라우드로 수신해 분석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보고서는 “미국은 자국의 공공·민감 데이터는 자국 내 보안구역에서만 처리하는 원칙을 점점 더 강화”하고 있으며, 특히 학습용 데이터, 의료기록, 유전체 데이터, 에너지 소비·인프라 운영 정보 등은 “해외 기업이 접근하거나 클라우드로 이전하는 순간 국가안보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대로라면 “동일한 디지털 통제조치이더라도 미국이 하면 ‘안보’ 로 간주되는 등 규범의 비대칭적 적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디지털 통상압박에 대한 대응책으로, 보고서는 “데이터 이전·활용, 플랫폼 경쟁정책 등 주요 이슈에 대해 국내 디지털 및 온라인 플랫폼 시장의 경쟁환경을 고려해 우리 실정에 맞는 디지털 통상규범 원칙을 마련하고, 국내 제도 정비를 병행하며,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과 디지털 무역협정을 추진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했다. 

특히 “디지털 규제 변화에 따른 피해 기업이나 산업을 디지털 서비스 분야에 포함해 어느 영역에서 피해가 발생할 것인지 충분히 논의하고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규제 변화로 피해를 입을 기업이나 산업에 대한 구제방안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기이코노미 이창호 기자